광고에 관한 존 버거의 시각

존 버거가 지금의 인스타그램 세상을 봤다면 어땠을까?
2024-10-02

존 버거의 책을 좋아합니다. 존 버거(1926-2017)는 미술평론가이자 사진이론가이고 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이며 사회비평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제게는 다른 시각과 안목으로 사물과 현상을 보는 것을 글로 시연해 주는 스승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의 책 중에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라는 책을 가장 좋아하지만 시각과 안목에 관한 거라면 아무래도 책의 제목 그대로인 ‘Ways of Seeing’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어 제목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입니다. 1972년 BBC 방송에 시리즈로 방영되었던 미학 강연을 글로 엮어낸 책입니다. 아마 미술학도나 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대부분 이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 이전에는 미술사에서 배제되거나 덜 중요하게 생각했던 계급, 인종, 젠더의 문제와 작품의 소유와 연관된 정치 경제적 차원의 문제를 (그 당시로서는) 새롭게 제시해 줍니다.

기본적으로 존 버거 특유의 ‘떨어져서 보기(제가 칭한 그의 시각론입니다)’의 시각이 이 책에서도 가득 나옵니다. 책의 대부분은 유화를 다루지만 후반부에 사진과 광고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지금의 광고 영상과 이미지, 거시적으로 보자면 그것을 기반으로 한 대부분의 마케팅에 그의 시각을 대입해 보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책의 본문을 인용하여 안내하면서 지금의 마케팅과 시대를 돌아보려 합니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살게 하는 광고

“어떤 쾌락을 얻는 본래의 방식을 떠나서 정말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광고가 따뜻한 고장의 먼 바다에서 수영하는 즐거움을 더욱 확실히 나타내면 낼수록, 광고를 보는 구매자들은 자신이 그곳으로부터 수백마일 떨어져 있고, 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자기와는 아주 멀리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광고가 선전하는 물건이나 기회를 아직 즐겨 보지 못한 구매자에게 진짜로 제공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광고란 결코 쾌락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미래의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항상 구매자들에게, 그들이 팔고자 하는 상품이나 기회에 의해 자신이 매력적인 인물이 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그 이미지를 본 구매자들 자신이 마치 그렇게 된 것인 양 느끼게 하여 자신의 변한 모습을 부러워하게끔 한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그들을 남들의 선망의 대상인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가.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의 선망이다. 광고란 어떤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사회적인 관계에 대한 것이다. 광고가 약속한 것은 쾌락이 아니라 행복이다. 즉 다른 사람들에 의해 외부적으로 판단되는 행복이다. 선망받는 행복이 곧 매력(glamour)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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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살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성적인 매력을 지녔다는 것과 같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책 본문 중

우리가 소비지향주의 시대에 살면서 괴로운 많은 이유들을 하나로 축약하자면 저는 바로 현실의 배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가지면 ‘미래에’ 행복해질 나, 이것을 행하면 ‘가까운 미래에’ 달라질 나, 이것에 속하면 ‘미래에’ 위상이 달라질 나, 그리고 그것들을 못 하면 ‘미래에’ 더 불행해질 나. 광고라고 할 것도 없죠. 우리가 하루종일 보고 듣는 대부분의 것들은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현재를 망각하게 하죠. 존 버거는 광고는 “아직 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지만 장차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광고가 약속한 것은 쾌락이 아니라 행복이다.”

실제 프로젝트나 여러 글에서도 자주 언급했지만 제가 마케팅에서 늘 보여주길 바라는 것은 자극이나 욕구가 아니라 ‘행복’입니다. 소비자에게 이 물건이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제안하지 말고 행복을 보여주고 그 행복에 그 물건이 있는 것을 보여주자는 생각이죠. 물론 유명인을 써서 하는 광고에서는 인물을 보여주고 인물 그 자체를 욕망하고 그 인물이 하는 것을 탐하게 하는 광고들도 많습니다. 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죠. “매력적인 인물들의 힘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행복 속에 있다.” 결국 누군가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그 누군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 속에 충분히 자리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SNS에서 언뜻 본 누군가가 광고 속 유명인 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죠. 그 사람은 분명히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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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유화의 언어형식을 과거에나 지금이나 의존하고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책 본문 중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신감의 고독한 형태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경험을 나눠 갖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은 당신을 관심을 갖고 보지만 당신은 그들을 관심을 갖고 보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그렇다면 선망을 덜 받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지금의 SNS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설명으로 보입니다.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경험을 나눠 갖지 않음으로써’ 누군가는 누군가가 바라는 사람의 계열에 서게 되는 처연한 모순. 유명인들이 인스타그램에서 갖는 일관된 태도를 설명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래서 사람들은 또 선망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지만요. 자신감의 고독한 형태라면 선망의 대상은 그 고독함도 감수해야 할 일이겠지요.

향수로 신뢰하고, 불안으로 소비하게 하다

본질적으로 광고는 무언가에 대한 향수다. 그것은 과거를 미래에 팔아야만 한다. 광고는 광고 자체가 요구하는 기준을 스스로 채울 수 없다. 게다가 광고가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모두 복고적이고 전통적인 것에 근거를 둔다. 광고가 단순히 당대의 언어만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확신과 신용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팔 방법은 없습니다. 미지의 물건을 팔기 위해선 그것을 설명해야 하고, 그 설명을 들어줄 수 있는 시간과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구축되고 나서야 드디어 ‘미래’를 팔 수 있는 것이죠. 존 버거가 이야기하는 ‘과거를 미래에 판다’는 뜻은 바로 알고 있는 것을 판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것도 그냥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향수로 남을 만큼 강인한 과거여야 하죠. 특별히 근래에 뉴트로니 복고니 이름을 갖다 붙여 트렌드로 명시했지만 사실 모든 시대에 레트로와 복고는 마케팅의 주요 프레임이었습니다. 단, 과거의 것만 가져와서는 안 되죠. 향수는 확신과 신용을 위해 사용될 뿐입니다. 뉴진스가 30년 전 뉴잭스윙을 그대로만 들고 나왔다면 이런 흥행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향수에 어떤 향을 더할 것인가가 차이를 만드는 것이겠죠. 복고만 차용해서 간단하게 장사한다고 누군가를 쉽게 판단할 계제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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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그대로라면 ‘보는 방식들’이 되겠습니다. 존 버거는 ways 복수형을 씀으로써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모든 광고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돈이 전부이고, 돈을 벌어야 불안감이 사라진다. 광고는 “만일 당신이 아무것도 갖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될 수 없다”라는 두려움을 유발시키고 이를 이용한다.

글러머라는 것은, 한 개인이 사회에 대해 갖게 되는 선망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진 공통의 정서가 됨으로써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소비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존 버거의 저 말은 더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앞에서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소비의 가장 큰 동기는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보다도 불행할 것이라는 불안이 더 앞섭니다. 대부분의 선망은 거기에 닿고 싶은 것보다 여기에 머물고 싶지 않은 심리가 큽니다. 마케팅의 기저에 깔린 메커니즘입니다. 기업과 자본가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존 버거는 이 책에서 유화를 ‘사유재산에 대한 찬양’으로까지 불렀는데요. 그는 유화가 지속된 것은 ‘당신이 소유한 것들이 곧 당신이라는 원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본가들이 그렇게 화가로 하여금 유화를 그리게 했고 유화에는 그들이 소유하고자 하던 것들을 담았으니까요. 바로 지금의 자본주의 시대가 그것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죠. 이 시스템에서 당신이 가진 게 바로 당신이라는 저주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메르세데스를 바라지 않으면 당신도 바라지 않게 된다.”

손안에 든 스마트폰은 모두가 거의 모두의 삶을 공유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럼 더 많은 욕망의 스펙트럼이 펼쳐졌어야 했을 텐데요. 반대로 욕망의 형태는 더 좁혀졌습니다. 과거에는 어느 작은 집단에만 중요한 것이 있고 또 다른 집단에게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뛰어난 디지털 기술로 인해, 누군가에게 선망이 되는 것이 모두의 선망으로 옮아가기 너무나 쉬워졌습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모두가 메르세데스를 바라지 않고 모두가 근육질의 몸을 바라지 않으면 당신도 바라지 않게 됩니다. 존 버거가 말한 ‘공통의 정서’라는 건 당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순식간에 현혹되는 미증유의 전염력을 가지고 있죠. 심지어 실제로 보지도, 만져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한 것에도 디지털 세뇌는 작동합니다.

마케팅은 자본주의의 필요악인가

“광고는 소비를 민주주의의 대체물로 만들어냈다. 무엇을 먹을까? 무슨 옷을 입을까? 무슨 차를 탈까 하는 선택은 의미있는 정치적 선택을 대치하고 있다. 광고는 사회 내부의 비민주적인 모든 것들을 은폐하거나 보상해 주는 일을 돕는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의 또 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은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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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슬럼가를 보여주는 뉴스 기사 바로 아래의 광고가 보여주는 극명한 대비는 광고의 속성으로 인해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를 위아래 모두에 암시하게 된다고 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책 본문 중

공중파 방송 세 개 있을 때의 정보력과 지금의 정보력 중 어느 것이 더 광대하고 정확할지 어쩌면 당연하게 후자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만 반대로 지금 여러분 손에 쥐어진 미디어는 여러분을 공중파 방송 세 개 있던 시절 보다도 더 편협한 시각을 갖는 사람으로 만들지도 모릅니다. 모든 종류의 피드들은 당신을 학습하고, 당신이 구미에 당길 것을 끊임없이 제공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그 스크롤을 멈추지 않고, 그래야 광고를 보여줄 수 있고, 그래야 자본주의가 작동하니까요.

흔히들 어떤 연예 스캔들이 터지면 요즘은 또 어떤 정치적 이슈를 가리기 위한 일인지 의구심을 갖곤 합니다. 대부분 음모이론인 경우가 많지만 어쨌거나 자극적인 이슈와 거기에 연루된 마케팅에 엮이면서 더 많은 중요한 일들은 놓치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신이 외면하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당신이 접하는 미디어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피드는 당신을 학습하고, 구미에 당기는 것만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광고는 획득할 수 있는 능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인간의 기능이나 필요성은 이 능력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모든 희망이 한데 모이고, 동질화되고, 단순화된다. 그렇게 모인 희망들은 정체불명이긴 하지만 강력하고, 물건을 살 때마다 반복되면서 마력적인 약속이 된다. 자본주의 문화 안에서 그와는 다른 종류의 희망이나 만족감 또는 쾌락은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기대 될 수 없다.
광고는 이 문화의 생명이고-광고 없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동시에 광고는 이 문화의 꿈이다.
자본주의는 다수의 관심을 가능한 한 좁은 범위 안에 가두어 놓음으로써 그 생명을 이어 나간다.”

존버거

존 버거의 사유는 우리에게 사물과 현상의 ‘시각’을 확대해주는데 좋은 디딤돌이 됩니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그의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말들은 날카롭게 폐부를 찌릅니다. 위의 논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더 많은 것을 놓치고 살도록, 더 협소된 욕망을 꿈꾸도록 변해갑니다. 이 자본주의의 안 좋은 끝을 예견하는, 그것도 곧 도래할 거라 확신하는 경제학자나 철학자들도 많지요.

저는 브랜딩과 마케팅 일을 합니다. 기업이 무언가를 잘 팔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사람이죠. 작금의 미디어와 소비자본주의의 한가운데에서 그것들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위안일지 모르지만 저는 ‘내가 파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가치다’라고 늘 생각합니다. 당연히 제가 돕는 기업도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가치를 팔 수 있도록 도우려 합니다.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기업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모두 필요한 일입니다. 제품과 브랜드의 (물성 가치 이상의) 가치를 소비자의 가치(돈 또는 시간)와 교환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죠. 자본주의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누구에게라도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면, 위에서 존 버거가 말한 자본주의의 병폐인 현재를 배제하고, 욕망을 단순화하고, 행복보다 불행이 볼모인 마케팅의 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행할 수 있지 않을까 꿈꿉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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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시각을 통해 소비 트렌드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책 꼭 한번 읽고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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