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hort story should be written with one theme, and all sentences within it should be consistent with that theme.”
짧은 이야기는 한 가지의 테마로 작성되어야 하며, 그 안의 모든 문장들이 그 테마와 일맥상통해야 한다.
-Edgar Allan Poe, 미국 문학의 거장, 시인이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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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도 높은 브랜딩을 위한 근본적인 접근법
03.
브랜딩의 완성도는 개연성에 있다.
브랜드의 주제 의식을 매력적인 서사로
설득력 있게 전하고 있는가?
어느 유명한 소설가가 문학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 말한 것이 기억난다. 소설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문장의 개연성이다. 얼핏 작품의 이야기들이 소설가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쓰이는 것 같아 보여도, 소설의 문장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구성과 일관된 맥락을 통해 개연성을 획득한다.
첫 문장이 쓰인 순간, 다음에 쓰이는 문장들은 모두 하나의 맥락을 근거하여 쓰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지닌 특징인 셈이다. 소설을 구성하는 데 사용된 모든 문장들은 오직 하나의 소실점, 하나의 주제를 향해 전개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모든 문장들이 하나의 주제를 극적으로 전하는 작품이 될 수 있다.
© HANDSOME
브랜딩의 완성도 역시 개연성에서 비롯된다. 최근 진행했던 한섬 오즈세컨의 리브랜딩 프로젝트 또한 개연성 높은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1997년 쿠튀르 감성의 디자이너 브랜드로 시작된 오즈세컨은 국내 여성복 최초로 파리 봉마르셰(Le Bon Marché) 백화점에 입점했고, 국내 패션 브랜드 최초로 글로벌 SPA브랜드인 유니클로와 콜라보레이션을 전개하는 등 유니크한 개성으로 사랑받았다.
그 당시의 오즈세컨을 떠올리면 디테일한 스케치 형식의 왕관 심볼과 그림처럼 묘사된 손글씨 로고를 연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던함을 추구하던 트렌드에 편승하면서 브랜드는 고유의 개성을 상실했고, 과거의 브랜드 자산들 역시 빛을 잃어버렸다. 결국 최근에 이르러는 백화점에 입점한 올드한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오브제라는 브랜드의 세컨드 브랜드라는 별다른 의미 없이 붙여진 오즈세컨의 네임은 고객은 물론 한섬 구성원들에게도 브랜드에 대한 부정 인식을 강화하는 요인이었다. 브랜드를 연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 네임이 부정적 이미지로 연결된다는 사실은 시급한 개선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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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의 목표는 명확했다. 브랜드의 지향점을 다시 설정하고, 브랜드 네임과 슬로건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것을 로고와 심볼을 비롯하여 의류 브랜드 전개에 필요한 다양한 디자인 자산으로 구현하는 것. 목표는 심플했지만 과정은 그렇지 않았다. 한섬의 내부 구성원들에게 브랜드 전개에 구심점이 될, 지속 가능한 브랜드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타겟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브랜드 가치 정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브랜드가 지금까지 전개했던 컬렉션 대비 매출액과 정성, 정량적 고객 조사, 내부 임직원 인터뷰 등 다양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데이터에 근거한 인사이트를 도출했다. 도출된 인사이트를 브랜드 에센스로 축약하는 과정에서도 브랜드 사업부, 전략기획, 마케팅 등 다양한 부서와의 협의가 필요했다.
한섬은 이미 타임, 마인, 시스템 등 다수의 성공적인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기업에서 전개하고 있는 브랜드 포트폴리오 내에서의 간섭효과를 최소화하면서도 기업 전반의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브랜딩 전략을 고민해야 했다. 무엇보다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지 검증이 필요했다. 브랜드의 구심점과 방향성을 정의하기 위한 노력은 무려 3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문학으로 보면 이제 겨우 소설의 주제를 선정한 셈이다.
새로운 주제 의식(방향성)을 토대로 브랜드 네임 재정의, 슬로건, 디자인 개발이 하나의 맥락 안에서 전개되었다.
04.
고유한 주제의식과 브랜드 페르소나.
매력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주인공을 만드는 일.
브랜드의 고유함을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에서 슬로건을 개발하게 되었다. 슬로건은 그저 듣기 좋은 문구가 아니다. 브랜드 슬로건은 주제의식을 함축한 문장이다. 브랜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향후 브랜드의 확장성을 제한하지는 않는 슬로건이 필요했다. 단어의 어감이나 의미 또한 중요했다. 브랜드의 차별성과 고유성을 모두 반영하면서도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하는 단어를 선별했다. 이후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고려하여, 대중에게 쉽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했다. 영어를 활용할 경우, 어려운 단어의 경우 어감적으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감성을 전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의미 전달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의 경우, 의미 전달이 용이하지만 너무 익숙한 탓에 신선한 느낌을 주기 어렵고, 신규 브랜드임에도 오히려 진부한 인식을 줄 수 있다.
다양한 시도 끝에 선택된 슬로건은 브랜드 네임을 확장하여 브랜드 주제 의식을 강화하는 방식이었다. 오즈세컨(O’2nd)의 Origin Another라는 버벌 아이덴티티는 그렇게 탄생했다. 나만의 고유한 개성과 미의식을 지닌 이들이 새로운 특별함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함축하는 워딩이었다. 이는 오즈세컨이라는 작품에서 지속되는 주제의식이자 브랜드 페르소나로서, 자신만의 특별함을 발견하는 자유로운 태도를 의미한다.
브랜드 페르소나 개발을 통해 브랜드 전개의 방향성을 재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다음으로 고민했던 부분은 브랜드 페르소나를 매력적인 인물로 구현하는 일이다. 이는 소설 작품의 주인공 선정과 같이 중요한 과업이었다. 훌륭한 작품들은 종종 주인공의 언행이나 성격으로 기억되곤 한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 역시 매력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한다. 주인공에게 고유한 주관과 특별한 개성이 없다면 매력적인 서사는 없을 것이다. 그저 작품에 스치듯 잠시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비현실적인 이야기일지라도 매력적인 개성을 지닌 주인공만으로 서사의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인물의 매력도는 작품 전개에 큰 영향력을 지닌다.
추상적 개념인 브랜드 가치와 개성을 보다 완성도 높은 브랜드 디자인 자산으로 구현하기 위해 브랜드 페르소나를 세심하게 정의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브랜드 페르소나가 지닌 오즈세컨다움, 즉 오즈세컨이라는 브랜드 전개를 주도하는 주인공에 대해 묘사하자면 이렇다.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사랑하는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로서,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이며, 매일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고급스럽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어 하는 인물. 오즈세컨의 고급스러움은 올드 머니 룩의 상징인 더 로우(The Row), 로로 피아나(Loro Piana)의 세련되고 차분한 고급스러움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고급스러움이다. 어찌 보면 오즈세컨 브랜딩의 핵심은 그 고급스러움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일이었다. 일상에서 쉽게 누릴 수 있는 편안하며, 섬세한 감성을 지닌 고급스러움. 다소 상반되는 요소들이 하나의 브랜드를 정의하고 있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오즈세컨의 남다른 개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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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이 마무리되었을 무렵, 디자인에 대한 설계도는 완성되었음을 느꼈다. 버벌 아이덴티티를 정의하고 이를 개성화하는 과정에서 이미 브랜드의 심상이 설계된 것이다. 이제 오즈세컨의 페르소나를 높은 일체감을 지닌 디자인 자산으로 구현하는 작업이 남았을 뿐이다.
이미 설계된 답을 개연성 높은 표현으로 완성하는 일. 그것이 브랜드 디자인의 핵심이다. 주제의식에서 벗어난 표현은 비문이 되고 이질감을 만든다. 브랜드가 지닌 주제를 전하는데 방해 요인이 되는 것이다. 설령 아무리 멋지고 이목을 사로잡는 디자인 자산이라고 해도 맥락에 완벽히 맞지 않는 표현은 브랜딩의 완성도를 저해한다. 감도 높은 브랜드 디자인이란 결국 디자인 그 자체라기 보다는 주제를 전하는 브랜드 페르소나의 완벽한 구현인 셈이다.
물론 훌륭한 주제를 정하고, 매력적인 인물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빼어난 문체와 구성으로 표현까지 완벽히 해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과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 삶에 영감을 주는 훌륭한 문학이 그렇듯, 브랜드 역시 그런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상향으로서 브랜드가 지닌 역할이라고 본다.
신광수의 더 많은 생각이 궁금하다면?
브랜드의 페르소나를 매력적인 인물로 만든다..! 와닿는 문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