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라면 몰라도 욕망이라면 살 의향이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사는 우리는요, 필요한 게 아니라 원하는 걸 사더군요.
필요한 게 없으면 불편하지만 원하는 걸 못 가지면 불행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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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11이 필요해서 사나요?

저는 차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만 포르쉐는 저도 알지요. 여러분도 알 겁니다. 주위에서 은퇴를 꿈꾸거나 나이 50이 넘으면 포르쉐를 타는 시니어들을 많이 봤습니다. 마지막 직장의 60이 된 사장님도 포르쉐 박스터를 모셨죠. 한편 그런 분들은 60대가 되면 할리 데이비슨도 한 대씩들 구입한다고 합니다. 주말이면 양평 가는 국도로 굉음을 내고 지나가는 할리에는 어김 없이 노년의 신사들이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40대에는 펜더 빈티지 기타를 구매한다고 합니다. 이게 중년의 위기를 겪는 남성들이 흔히 밟는 절차라고 하더군요.

“돈 걱정을 안 해본 사람에게도 911은 꿈을 사는 거다.”

박스까남 유튜브에서 포르쉐 911을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돈 걱정을 안 해본 사람에게도 911은 꿈을 사는 거다. …돈 없는 사람들은 꿈이라도 꿔라. 911은 꿈이다. …남성 호르몬 저하와 중년 우울증엔 직방이야. 갱년기로 의사 처방 받으면 911을 좀 싸게 해주고 그런 거 없나? 이건 약이야.”
시쳇말 가득하지만 911의 핵심 가치를 잘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연흡기에 후륜 구동, 전통 스포츠성과 웅장한 배기음이나 몇 마력, 이런 건 잘 모르겠지만 꿈이고 약이라는 말은 공감이 갑니다. 더 빠른 스포츠카가 없나요? 더 멋진 기술과 디자인이 들어간 굴러갈 건 없나요? 각 부분에서 포르쉐보다 나은 대안이 (아마도?)있을 겁니다. 하지만 포르쉐 911을 사는 사람은 성능을 사는 게 아니라 약을 사는 겁니다. 그러니 대안이 없지요. 다른 약을 복용해서는 치유할 수 없는 걸요.

포르쉐911
테스토스테론 신봉자는 아니지만, “내 꿈이 발전하는 속도보다 911의 발전 속도가 더 빠르다”는 말은 혹할 뻔 했지 뭐예요. (via 박스까남 유튜브)

그저 40대가 되면 기타를 쳐봐야지, 50대가 되면 스포츠카를 타야지, 60대가 되면 바이크를 타야지가 아닙니다. 명확하게 펜더고, 포르쉐고, 할리입니다. 펜더나 포르쉐나 할리 데이비슨은 모두 전통의 브랜드죠. 어려서부터 본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 롤모델은 어김없이 이 제품들을 타거나 사용했습니다. 바라고 얻겠다고 마음 먹은 적은 없지만 켜켜히 누적되어 온 꿈인 겁니다. 그러다 어느날 공허한 인생의 순간과 마주할 때 그 오래된 꿈에서 불씨를 찾아보고 싶은 걸지도요. 딱히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인생을 다시 밝혀줄 희망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는, 기억에 프로그래밍된 근거가 있으니까요.

소비자 니즈는 유형의 산물일 뿐

저도 브랜드 전략이나 마케팅 전략을 짤 때 기본적으로 해당 업의 Market Perspective를 확인합니다. 하지만 그건 거시적으로만 확인할 뿐 그걸 보고 사업 방향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어떤 요식업을 어떻게 풀어갈 지, 어떤 관계형 O2O 서비스 분야를 개발할지를 시장 관점으로만 해석하고 컨설팅 하지 않습니다. 경영자가 그렇게 사업 방향을 결정해서도 안 되고요. 그 거시적 그림으로부터 미시적 관점 즉, 사람들 하나하나의 중요한 가치들을 발견해낼 수 있는 단서를 찾을 뿐입니다.

“니즈를 바탕으로 상품 개발이나 마케팅에 쉽게 뛰어든다면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전략 단계에서 많이들 집중하는 건 사용자 니즈(needs)일텐데요. 니즈를 바탕으로 상품 개발이나 특히나 마케팅에 쉽게 뛰어든다면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대게 니즈는 최근 시장의 결과를 통해서 추론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아래와 같이 함정 가득한 논리에 다다르게 되죠.

‘해당 타깃은 가벼운 소재의 아웃도어 의류를 원한다.’, ‘해당 대상층은 제로 칼로리의 탄산수를 원한다.’, ‘신규 소비자들은 환경친화적인 전기차 구매를 선호한다.’, ‘해당 부류는 건강한 먹거리를 추구한다.’

시장에서 최근 증명된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타깃’이 원하고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유추해내는 것이죠. 사람들이 ‘원한다’는 저 니즈의 실체는 즉, 진짜 욕망은 무엇일까요?

좋은 디자인의 흥행 제품들이 가벼운 소재를 선택한 것일 수도요. 해당 타깃은 가벼운 소재가 아니라 디자인이 더 중요했고, 그게 등산을 처음 접하는 진입층이 산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서 어떤 위상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제로 칼로리로 마시고 싶은 것이 적극적인 체중 감량 때문인지, 죄책감은상쇄시키지만 기존과 같은 탄산수를 마시고 싶은 욕망의 마지노선인지 알아야 합니다.

전기차 구매에 우호적인 신규 고객층은 어쩌면 전기차의 쿨함을 사고 싶은 건 아닐까요? 내연 기관 차를 흉내낸 전기차와 전기차의 장점을 극대화한 전기차 두 개의 부류는 이 타깃에게 완전히 다른 반응을 낳게 될 겁니다.

해당 대상들에게 유기농 식품에 허용되는 가격의 허용치는 어디까지일까요? 유기농과 비유기농 사이에 대안은 없을까요? 그게 가격 장벽이라면 구독과 같은 다른 배송 방식으로 가격에 도전하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고심해야할 부분은 유통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hikerworkshop
소규모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약진하고 있습니다. BPL(Back Packing Light)용품을 미니멀라이프 철학으로 제언하는 ‘하이커워크숍’

니즈에 따라오는 또 다른 미끼로 ‘트렌드’라는 위험한 개념이 있습니다. 이 트렌드라는 개념에는 빈약하나마 니즈에 존재했던 ‘특정 대상’이라는 조건조차 희미해지죠. 누군가가 아니라 트렌드는 요컨대, ‘세상이 그렇다’는 겁니다. 세상이 그러한데는 이유가 있지요. 당연하지만 그 이유의 전후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제 “MZ가 아니라 액티브 시니어가 트렌드다”라고 해서 내년부터 시니어 대상의 신규 상품을 개발할 건 아니죠? 그게 트렌드가 되는데에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럴싸한 답이 아니라 내 브랜드와 연루된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지 못 하면 연말이면 서점에 깔리는 그 흔한 트렌드도 비즈니스에는 독이 될 겁니다.

“트렌드라는 개념에는 니즈에 존재했던 ‘특정 대상’이라는 조건조차 희미해지죠.”

요즘은 데이터가 풍부해서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 근거를 확립하기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데이터에서 욕망을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데이터는 ‘꽤나 시사하는 바가 많은 숫자’ 정도로 몰락할 수 있습니다. 니즈나 트렌드, 빅데이터 이것들에서 우리는 유형의 가치뿐 아니라 무형의 가치를 집요하게 규명해야 하는 것이죠.

needs 말고 unmet needs

니즈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소비자는 어떨 때는 자신의 욕망을 니즈(필요) 뒤에 숨기곤 합니다. 신규 소비자가 전기차의 쿨함을 찬양했지만 사실 경제성에 대한 욕망이 더 강했다면 전기충전소 인프라 구축에 어떻게 기여하느냐가 전기차 브랜드의 기준이 될 수도 있겠죠. 

둘째, 편향된 소비자 층의 니즈, 즉 유행이나 군중심리가 그 앞에 존재하면 소비자는 그 니즈의 대명제에 편승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유행에 나를 묻고 복잡다단한 취향을 유행으로 해석해버리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일종의 가짜 니즈인거죠. 멀리까지 여행 왔으니까 기꺼이 셀럽이 소개한 식당에서 한 시간 반 줄을 서서 먹는 게 대단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것을 원하니까요(또는 원하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줄을 서 있는 사람 중 많은 수는 멀리까지 여행 와서 검증되지 않은 맛 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아서 보편타당하게 신뢰할 수 있는 음식 관련 셀럽의 소개 식당을 선택한 것이라면요? 맛이라면 자신 있었는데 유명인이 방문한 옆집 식당 사장님이라면 옆 식당에 대적하기 위해 방송 탄다며 생생정보통 같은데 애먼 돈 쓰실 게 아닙니다. 유명인의 행태 답습 욕망이 아닌 로컬 미식 경험의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움직이는 어플은 뭔지, 대중적인 미식가들이 신뢰하는 미식 리더들이 선호하는 형태나 문화는 뭔지 알아보고 시도하는 게 더 현명한 일일 겁니다.

셋째, 원하는 것보다 필요한 것을 살 것 같지만 자본주의에 사는 우리는요, 원하는 걸 사더군요. 필요한 게 없으면 불편하지만 원하는 걸 못 가지면 불행해하니까요.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쉽게 정의하려고 합니다. 쉽게 정의해야 충족하기도 쉬우니까요.”

그래서 needs 대신 unmet needs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unmet needs는 그러니까 아직 충족되지 않은 일종의 욕망입니다. 플라톤에서 프로이트,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밝혀왔듯이 기본 욕구 외에 인간은 자신의 욕망에 그리 밝지 못 합니다. 그리고 쉽게 정의해버리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쉽게 정의해야 충족하기도 쉬우니까요. 사는 사람은 쉽게 해석해도 됩니다. 하지만 파는 사람은 똑같이 쉽게 해석해서는 안 되지요. ‘그냥 되게 매운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라고 소비자는 생각해도 됩니다만 판매자는 매운 걸 먹던 학창시절이 떠올리게 식기를 갖추는 게 필요할지, 중고등학교가 많은 골목집 중 가장 매운 집 맛을 지향하든지, 사람들이 매운 건 함께 먹는 걸 또는 그 반대를 즐긴다는 패턴을 파악하든지 해야 합니다. 뾰족한 수로 성공한 사업이 결국 트렌드가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겁니다.

The-Wall

군중심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 다 똑같이 움직이는 사람들도 제각각 다른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via Pink Floyd – Another Brick in the Wall)

상품은 매개일 뿐입니다. 가치를 담은 매개요. 우리는 어떤 가치를 구현하고 싶은가? 소비자는 어떤 가치를 얻고 싶어 하는가? 를 규명하지 못 하면 상품을 팔 방법은 한정됩니다. 교환할 가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거래를 하겠습니까? 파는 사람이 자신이 파는 게 다이아몬드인지 모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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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경
글쓴이

김해경

당연한 것에 이유를 찾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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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214
    · 2024-11-20 at 10:05

    저에게 이 글이 왜 위안이 되는겁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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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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