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와 데이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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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 딜레마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디자인에서 데이터와 크리에이티브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볼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최근 들어 [데이터]의 중요성이 엄청나게 커졌다. 명확한 숫자, 확실히 눈에 보이는 목표 달성 또는 실패. 빠르게 트렌드가 바뀌어서 결과를 보고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판단해야 하는 이 업계에서, 데이터는 업무 진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이 데이터의 중요성은 디자인에서도 대두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데이터와 가장 가깝게 일하는 디자이너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데이터를 다루는 별도 부서가 있기도 하고, 이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설계가 체계화 되어있으며, 사용자의 의견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앱 개선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리서치 전문 부서도 있다. 사용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 또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데이터는 이제 필수 요소가 되었다.

이 흐름은 마케팅 디자인에서도 점점 보이고 있다. 마케팅 디자인의 주 목적이 되는 마케팅 활동에도 목표 수치가 있다. 주문 수, 쿠폰 발급 및 다운로드 수, 신규 고객 유입, CTR(노출 횟수 대비 클릭율. 주로 배너에서 많이 사용하는 지표), CVR(배너 또는 페이지 유입 대비 전환율) 등… 생각보다 많은 용어를 가지고 데이터를 보고 있다. 사업 부문과 밀접하게 일하며 주문 및 판매에 기여하는 마케팅 활동 특성상 이 수치들을 상승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근데 이 데이터가 우선되는 상황이 디자인까지 영향을 미치면 애매한 상황이 발생한다. 더 나은 데이터를 위해 디자인에 변화를 줄 때, 디자이너의 눈으로 봤을 때 퀄리티 높은 디자인이 아니라 퀄리티가 좋지 않더라도 데이터가 잘 나오는 디자인을 선택하게 되는 상황 말이다.

디자인이 아무리 좋아도

좋은 데이터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디자이너가 있다면, 본인 회사에서 디자인을 결정할 때 데이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크리에이티브(여기서 크리에이티브는 디자인에 필요한 미적 감각으로 정의하겠다)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묻고 싶다.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질 때에 사람들은 좀 더 수익을 부를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는 데이터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이다. 여기서 디자이너로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 바로 좋은 디자인이 좋은 데이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가설에 맞는 케이스를 눈으로 보기도 했다. 디자이너가 영혼을 갈아 만든 A페이지가 있었다. 최종 시안이 나오기 전까지 수많은 시안들이 스쳐지나갔고, 정말 누가 봐도 전체 페이지 컨셉이나 비주얼 퀄리티가 좋았다. 그러나 이 페이지는 이후에 라이브된 B페이지보다 데이터 수치가 좋지 않았다. 비교군이었던 B페이지는 A보다 디자인 퀄리티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저 항상 작업하는 평이한 수준의 디자인이었는데 훨씬 공수가 더 들어간 페이지보다 데이터가 더 잘 나온 것이다.

이래도 되나 싶은 배너들이 라이브되는 알리 익스프레스, 테무 앱

가끔 여러 앱을 보다가 “이렇게 디자인 해도 괜찮은걸까” 싶을 정도로 디자인 퀄리티가 (내 기준으로) 떨어지는 앱들도 보인다. 물론 디자이너가 없는 상태에서 만든 앱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분명 거대 기업인데 누가 봐도 디자인이 요상한 것들이 많다. 제일 의문이 드는 것이 바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같은 서비스인데 (중국발 서비스이지만, 이것도 그나마 한국에 맞춰서 디자인을 바꾼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디자인은 별로….) 이상하게 이 앱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다. 심지어 우리나라 커머스 서비스를 위협할 정도로 사용자 수가 높다.

물론 사용자 수, CTR, CVR 등의 데이터 수치가 무조건 디자인의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없다. 위에 예시로 들었던 알리나 테무같은 경우에는 타 커머스에 비해서 저렴한 가격, 더 큰 할인 혜택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커머스 서비스에서는 쿠폰이나 할인 금액같은 혜택의 크기에 사용자가 크게 반응한다. 또는 재미있고 매끄러운 사용자 참여형 이벤트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어떤 서비스에서는 1주일 이상 제공하는 혜택보다 게릴라성 기간 한정 혜택에 사용자가 더 반응하기도 한다. 마케팅 관련 데이터를 끌어올리는 요소는 디자인이 아닌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마케팅 디자인이 실제 데이터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영향이 있다고 하면 얼마나 눈에 띄게 디자인했는지, 정보를 알아보기 쉽게 어떻게 디자인했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라이브되기도 하고, 고객 분기 또는 지역분기로 사람마다 다르게 라이브되는 배너의 영향도 꽤 있다. 그래서 마케팅 디자인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에 어려운 점이 많다. 무조건 [이 디자인이 데이터에 절대적으로 영향이 있다!]라고 하는 말은 타당한 근거가 있지 않는 한 물음표를 던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가 좋지 않게 나온다 하면 기획 담당자는 디자이너에게 달려온다. 배너가 눈에 띄는 것 같지 않으니 더 화려한 색으로 넣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제휴사의 요청으로 로고를 강조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정해진 예산과 기간 특성상 이벤트 기획을 크게 바꿀 수 없으니, 비교적 수정과 반영이 빠른 디자인에서 변화를 주려고 하는게 크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회사나 마케터, 디자이너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에이티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이쯤 되면 [요즘 디자인에는 예쁘고 좋은 디자인이 필요 없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데이터보다 예쁜 디자인이 낫다는 거냐] 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얘기하는 크리에이티브는 [그냥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의도와 목적에 맞는 적절한 디자인]라고 말하고 싶다.

크리에이티브는 목적 달성과 문제 해결을 위한 디자이너의 주무기다. 이벤트가 잘 되게 하기 위한, 이 브랜드를 잘 보여주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애초에 디자이너가 기획서를 볼 때에 “어떻게 디자인해야 이벤트가 잘될까”를 생각하고 디자인으로 풀어내야 한다. 어떻게 타이틀을 만들어야 사용자가 혜택을 더 잘 볼 수 있는지, 아래로 스크롤할 때 이 페이지가 어색하지 않게 매끄럽게 보이려면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등은 크리에이티브를 알아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마케팅 디자이너가 이벤트 페이지를 만들다 보면 당연히 예쁘고 화려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이 디자인이 예쁘기만 하고 이벤트의 의도와 목적을 전혀 담지 못한다면 있으나마나 하는 디자인이 되어버린다. 크리에이티브가 좋은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업이나 마케팅 배경지식을 어느정도 아는 것이 좋다. 이 배경지식을 알아놔야 의도와 목적을 빠르게 파악하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디자인을 해야할 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파악하는 과정에서 데이터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각 서비스별 디자인에는 다 의도가 있다. 만약 앱 서비스가 추구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고급미라면, 그 이미지에 맞춰서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해서 디자인해야 한다. 만약 할말만 하고 나머지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절제된 방향을 추구한다면 그만큼 간결한 디자인을 해야할 것이다. 좋은 디자인은 [있어보이든 없어보이든 그 의도와 잘 맞아 떨어져서 좋은 결과를 부른 디자인]이다. 오히려 나쁜 디자인은 [예쁘기만 하고 의도와 맞지 않은 디자인] [그냥 전혀 신경쓰지 않은 디자인]일 것이다.

마케팅 디자이너가

크리에이티브와 데이터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까?

솔직히 둘 중 하나만 반드시 선택할 수는 없을것이다. 데이터는 사업 및 비즈니스를 대변하고, 크리에이티브는 디자이너로서의 감각과 실력을 대변한다. 매출을 견인하는 마케팅 업계에서 디자인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마케팅 디자인의 최종 목표는 [이벤트 성공], [매출 상승]이기 때문에 데이터를 따라갈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디자인을 아예 내려놓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 상황은 디자이너에게 정말 좋지 않은 태도다. 의도적인 못생김(?)은 괜찮지만 아예 디자인을 포기하는 것은 앞으로의 디자이너 생활에도 좋지 않다.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아예 데이터를 제대로 보지 않고 내 디자인만 고집한다면 마케팅 분야에서 성장하기 어렵다. 결국 이 마케팅 디자인에서 크리에이티브와 데이터 둘 중 하나 선택하는것 보다는, 두가지의 균형을 잃지 않되 상황에 맞게 비율을 조정하는게 좋다.

개인적인 경험상, 크리에이티브와 데이터 중 하나만 보게 되면 어느 의미이든 좋은 디자인이 될 수 없다. 데이터만 따르게 되면 앱의 브랜드 기조에 맞는 디자인을 따르지 않아서 디자인이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크리에이티브만 따르게 되면 의도와 목적에 맞지 않는 쓸모없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 두 가지를 적절하게 응용하고 따르면서 디자인해서 균형을 찾는 것이 요즘 마케팅 디자이너 그리고 모든 디자이너들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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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
글쓴이

HYO

마케터와 제일 가까이서, 제일 오래 함께 일한 디자이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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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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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 소재 효율을 보면 어그로성 짙은 컬러와 폰트로 균형미 없이 할인 혜택만 강조한 소재들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현실인가 싶기도 하고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디자인과 어그로성 디자인에 중간 지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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