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1일, 대한항공은 신규 CI(Corporate Identity)를 발표하고 기존 태극마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 로고를 공개했다. 대한항공이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인 만큼 리브랜딩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브랜딩 전문가의 관점에서 대한항공 리브랜딩과 새로운 CI 디자인에 대한 견해를 공유하고자 한다.
01.
글로벌 10대 항공사의 새로운 비전 선언.
대한항공 리브랜딩은 디자인 리뉴얼 프로젝트가 아니다.

대한항공의 리브랜딩에 대한 대부분의 의견은 ‘CI 디자인’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리브랜딩은 기업의 미래 가치를 실현하는 전략적 접근이지 디자인 프로젝트가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개인의 취향은 수만 가지이지만 브랜드의 본질적 지향점은 단 하나뿐이다. 리브랜딩의 핵심 과업은 기업의 정체성과 미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다. 이후 합의된 지향점을 기준으로 모든 디자인 자산이 재배치된다.
대한항공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국내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여 2026년 글로벌 10위 권의 초대형 항공사로 거듭나게 될 통합 대한항공은 보다 강력한 기업 아이덴티티를 통해 글로벌 항공사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이 사용하는 디자인 상표권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있는 만큼 신규 CI 개발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번 리브랜딩은 통합 대한항공이 지향하는 미래 비전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표명하여 두 항공사를 하나의 가치 체계로 통합하는 과정이었다.


리브랜딩을 위해서는 기업의 방향성과 미래 전략이 확고하게 수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핵심 과업이 이뤄지지 않은 채 보이는 이미지 연출에만 집중한 CI 리뉴얼 프로젝트는 대중의 호평을 받아도 아무 의미가 없다. CI는 단순히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임직원들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하나 된 목표를 공유하게 만드는 강력한 상징이며,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기업 존재의 이유(Purpose)와 새로운 비전을 담은 신규 가치 체계를 ‘케이이웨이(KE Way)’로 정의했다. 대한항공 공식코드명으로 불리는 ‘케이이웨이(KE Way)’는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이자 고객이 경험하게 될 최상의 항공 경험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 이미지로만 인식되었던 대한항공은 이제 한국적 특색에서 벗어나 글로벌 항공사로서의 본질적인 경험에 집중하고, 단순한 이동을 넘어 글로벌 고객에게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을 목표로 삼았다. 새로운 CI 디자인은 이러한 변화와 목적에 충실한 결과였다.
02.
하나로 연결된 태극 심볼, 통합 대한항공의 새로운 상징
연결(Connecting)이라는 브랜드 에센스를 기반으로 더 높은 가치를 선사하는 글로벌 기업의 비전을 반영했다.


대한항공의 CI 디자인 역시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대중이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심볼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레드와 블루로 명확하게 분리되었던 두 개의 태극 조형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심볼은 이전에 비해 존재감이 약하다. 라인 심볼의 경우 동일한 크기에서 차지하는 면적 자체가 작을 뿐더러, 시선을 집중시키는 컬러 대비가 없어 CI 자체의 임팩트가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심볼의 면적을 크게 활용하거나, 두 개의 컬러를 활용하고 있는 타 항공사들의 CI는 보다 높은 식별성을 지니고 있다.
대한민국 국기의 ‘태극 문양’과 닮았던 기존 심볼은 ‘대한항공’이라는 기업명과 함께 쓰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라는 브랜드 인식을 만들었다. 과거 대한항공 CI에서 강조된 이미지는 항공사로서의 개성이 아닌 ‘대한(KOREA)’이라는 국가적 상징성이었다. 이제 대한항공은 기업의 본질을 항공 경험 자체로 새롭게 정의했다. 대한항공이 고객에게 선사하고자 하는 브랜드 경험은 대한민국이라는 한국적 특색이 아니라 글로벌 10대 항공사의 격에 맞는 최상의 항공 경험인 것이다. 결국 이번 리브랜딩은 단순한 디자인 변경이 아니라 국가적 항공사에서 프리미엄 글로벌 항공사로의 전환을 위한 기업 차원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통합 대한항공은 앞으로 사람과 사람, 세상과 세상을 하늘길로 연결하는 수송의 가치에 집중할 것”이라고 향후 대한항공이 나아갈 방향을 밝혔다. 새로운 미래 비전을 위한 CI로서 두 개로 분절된 음양의 태극 문양은 사실상 무의미한 장식이 되었다. 대한항공의 전략적 자산은 마땅히 ‘완벽한 연결‘과 고유한 가치 체계인 ‘케이이웨이(KE Way)’를 상징해야 했다. 하나의 라인으로 연결된 새로운 심볼 마크는 아시아나를 인수하며 하나로 통합된 대한항공의 미래 비전과 최상의 비행 경험을 선사하는 프리미엄 글로벌 항공사로서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태극 심볼 마크를 개선하는 것 만큼 ‘KOREAN AIR’라는 영문 로고의 개선도 중요한 과제였다. 모바일이나 디지털 환경에서의 활용성을 떠나 1960년대 개발도상국의 수준에 머물렀던 기존의 영문 로고는 글자의 속공간이나 하단 하단 마감 등이 대충 만들다가 만 것처럼 정돈되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독특한 로고라고 볼 수 있지만 이는 애초부터 완성도가 낮았던 1960년대의 한진그룹 CI 로고를 반영한 결과이다. 완성도가 높은 로고 디자인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개선할 부분을 찾기 어렵다. 반면 1984년부터 40년이 넘도록 쓰인 무겁고 올드한 ‘KOREAN AIR’는 분명 유니크한 특색이 돋보였지만, 언제 뜯고 고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복고적이라는 평이 많았다. 이런 상태에서 대한항공이 지향하는 미래 비전과 프리미엄 서비스, 글로벌 10대 항공사라는 메시지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새로운 가치 체계를 담기에 완성도가 낮았고 큰 폭의 개선이 필요했다.
1984년부터 사용되었던 ‘KOREAN AIR’의 서체는 그 자체만으로 시대에 뒤처진 기업이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글로벌 고객들에게 영문 로고의 퀄리티는 곧장 기업의 평판으로 연결된다. 세계적인 수준의 외국 에이전시조차 한글로 된 로고 디자인을 하면 초등학생이 낙서한 것처럼 우스운 글꼴이 나올 때가 있는데, 한국 에이전시나 기업들이 항상 지적을 받는 부분 역시 영문 로고의 낮은 완성도이다. 한국인의 눈에는 괜찮아 보이는 글꼴도 글로벌 고객에게는 어색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글로벌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한항공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영어를 비롯한 13개국의 언어를 지원하는 고유 서체를 개발해야 했다. 이를 위해 외국어의 균형감이나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글로벌 에이전시에 의뢰하는 것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글로벌 항공사의 격에 어울리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로고와 대한항공만의 고유한 서체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03.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이었을까?
미니멀리즘의 한계와 맥락적 완결성이 부족한 디자인 자산들

미니멀리즘의 한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대한항공
브랜딩에서 단순함은 최선이 아니다.라는 글에서 말했듯 단순함만으로 브랜드의 고유함을 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태극 문양을 미니멀하게 재해석하여 역동성과 우아함을 동시에 전달하고자 했다는 대한항공의 심볼은 의도와 달리 힘이 약하다. 심볼의 역동성은 강한 대비에서 나온다. 이를테면 레드 컬러와 블루 컬러의 대비, 혹은 두꺼운 획과 얇은 획의 대비가 대표적이다. 하나의 라인 내부에 태극을 담아낸 심볼은 구조적으로 강한 대비를 만들기 어렵다. 내부 공간에 태극 형태를 먼저 확보한 상태에서는 라인의 두께감을 조정하는데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얇은 선과 여백으로 태극을 은은하게 표현한 신규 심볼은 기존 심볼의 강한 존재감과 역동성 대신 우아함과 세련미를 강조한다.
이는 하나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데, 바로 상모놀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라인 심볼과 라인 내부 빈 공간의 태극 문양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분명 심볼의 빈 공간에서 태극 문양이 명확하게 보이지만, 정작 컬러가 적용된 형태는 상모 끈으로 묘사된 라인이기에 심볼의 형태가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하나로 연결된 라인 심볼의 비중과 내부 빈 공간의 존재감이 비등한 탓에 인지 측면에서 혼란이 야기된다.

이런 혼란은 심볼을 3D 그래픽으로 표현한 태극 문양 모티브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해결된다. 3D 패턴에서는 컬러의 대비와 명암 표현을 통한 입체감이 더해져 심볼과 유사한 형태임에도 보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이는 미니멀리즘의 한계이며 동시에 브랜드 자산 간의 맥락적 완결성 부족이다. 토스의 리브랜딩 사례에서 보았듯 3D와 2D 디자인 사이의 간극은 좁히기 어려울 만큼 다른 인상을 형성한다. 2022년 토스가 새로운 3D 심볼과 함께 2D 버전의 심볼을 선보였다가 도저히 동일한 기업의 심볼로 인식되기 어렵다는 대중의 지적을 받고 해당 심볼을 삭제한 것도 브랜드 자산 간의 괴리감을 줄이는 과정이었다. 브랜드를 위한 디자인 자산은 모두 일관된 브랜드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 맥락에서 어긋난 디자인 자산은 영화에 등장하는 한 배우가 매 장면마다 다른 목소리로 연기하는 것과 같은 혼란을 야기하며 브랜딩의 완성도를 저해한다.

대한항공은 음과 양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 전통적인 태극 문양 대신 하나의 라인으로 연결된 세련된 심볼을 통해 ‘연결’이라는 핵심 가치를 강조했다. 이는 한국적 특색이 강한 국가적 항공사를 넘어 글로벌 최상급 항공사로서의 프리미엄한 이미지와 높은 미래 가치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런데 정작 2D 패턴에서는 전통의 한국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한국의 풍경을 묘사한 수묵화와 같은 음영 패턴과 여러 조형들로 구성된 조각보 패턴이 그것이다. 이 역시 대한항공 리브랜딩에서 맥락적 완결성을 저해하는 디자인으로 볼 수 있다.
로고에서는 한국적 이미지를 덜어내어 글로벌 항공사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그래픽 요소에서는 한국 전통의 요소들을 강조했다. 미래 지향적인 심볼에서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의 가치를 전하지만 2D 패턴에서는 수십개의 세로줄로 분절된 라인과 조형들이 전통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완성도가 높은 브랜딩이란 훌륭한 문학 작품과 같다. 하나의 주제 의식이 정해진 순간, 작품 속에 사용된 모든 문장들은 오직 단 하나의 주제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아무리 감동적인 문장도 맥락에 맞지 않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대한항공 기업가치의 50배가 넘는 글로벌 기업의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내가 느꼈던 것은 브랜드 가치 체계와 커뮤니케이션 전략, 포지셔닝, 디자인 시스템, 키메시지와 키비주얼 등 다양한 브랜드 자산을 단 1도의 어긋남 없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집결시키는 역량이 곧 브랜드의 경쟁력이자 가치라는 사실이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고유한 주제 의식에 근거한 디자인만이 브랜드 가치를 위한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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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리브랜딩 관련하여 본 콘텐츠 중 가장 명료하고 알게 된 것이 많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