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리드 오답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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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 전까지 올해 큰 업무 중 하나라고 예상했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직개편이 되고 롤(Role)이 바뀌면서 나와 이 업무를 함께한 여러 명이 이 프로젝트를 그만두고 떠나게 되었다. 거의 초기 단계에서 손을 떼서 아쉽지만, 이 업무를 하는 동안 나는 프로젝트를 리드하면서 많이 헤맸고 그만큼 많은 경험을 했다. 이 글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리드)하는 동안, 내가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떤 후회를 하는지. 그리고 이를 딛고 어떻게 성장할지 기록하는 글이다. 그동안 여러 번 크고 작은 업무들을 리드하거나, 또는 다른 분이 리드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고 배운 점도 많은데, 역시 실전에서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특히나 이 프로젝트는 완전히 처음 시도해 보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최종 결과물도 어떤 형태인지 모르는 [안갯속의 프로젝트]라서 리드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 보였다. 이전의 TF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갈팡질팡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실무자가 아닌 실무 리드 즉 대장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적어보려 한다. 나만의 프로젝트 리드 오답노트. 본래 오답노트는 내 실수, 내가 틀림을 인정하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쓰는 것이다. 이 글을 마치고 발행할 때, 나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리드로서 어떻게 스스로를 평가할까?

 


1. 앞이 안 보이는 프로젝트에서 실무 대장,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이번에 진행한 프로젝트는 선례가 없는, 한 마디로 어떻게 진행해서 어떤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프로젝트였다. 킥오프 미팅 때, 구글밋 화면 속에서 모든 실무자가 당황해하는 얼굴이 보였다. 미팅이 끝나고 나서 함께 참여한 각 부서 팀장님들은 실무자들이 [누군가 리드 역할을 해줘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한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내가 리드를 맡게 되었다.


프로젝트 진행 시 내 역할은 약간 애매했다. 팀장님들은 실무 대장이라 했지만 흔히 말하는 [중간관리자]였다. 내가 온전히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큰 방향을 정하는 팀장님, 즉 실질적인 리드가 있었다. 나는 그 아래에서 [방향에 맞춰서 실무 과제를 지정하고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글로 써 보니 내 역할이 나름 그럴싸해 보이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예상하지도 못하게 방향이 갑자기 바뀌어서 실무 과제들을 갑자기 멈추거나 다른 과제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한마디로 실무 대장 역시 위의 리드들이 정하는 프로젝트 방향에 끌려다니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위의 팀장님, 그리고 실무자들 사이에 낀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프로젝트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고 흘러가는지 빠르게 캐치하고, 이에 맞게 실무자들이 업무를 잘할 수 있게 지시하는 것이다. 실무자들은 말 그대로 실무 과제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큰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이게 맞는 걸까?” 하고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팀장님들이 방향에 대해 얘기를 해도 각 실무자별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나는 위클리로 진행하는 미팅 마무리 즈음에 결론을 한 번 더 정리하거나, 실무자와의 별도 미팅을 가져서 과제 진행 상황이나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회의록을 적어놓은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항상 익숙한 프로젝트만 들어오지 않는다. 모두가 처음 해보는 프로젝트도 허다하고, 그만큼 업무를 하면서 헤맬 일이 많다. 이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실무자)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업무를 할 수 있게끔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물론 메인 리드, 또는 나처럼 중간관리자도 이 방향이 맞는 건지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실무자들보다는 덜 헤매야 한다. 실무자들은 어려운 과제를 할수록 관리자의 지시를 따르니까.



2. 잘못된 방향은 빠르게 납득하고 바로잡기

위에서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프로젝트 리드 또는 관리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항상 정답을 찾을 수 없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한다면 내가 지정한 방향이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익숙한 프로젝트도, 처음 해 본 프로젝트에서 항상 맞는 방향만 딱딱 골라서 잘 찾는 사람은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짜 일에 있어서 천재일 것이다. 그만큼 보통 사람 보통 리드라면 가끔 틀린 방향을 지정할 때도 있다.


이럴 때 리드는 자신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빠르게 납득한 후 맞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여기서 업무를 진행하는 사람들의 경력이 드러날 텐데, 보통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자신이 실수했다고 자책한다. 그리고 그 자책이 길게 이어져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한다. 어지간히 멘털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경력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일한 경험이 쌓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실수를 바로 납득하고 더 나은 방안을 찾는다. 그들 역시 주니어 시절의 자책하는 순간을 거쳐서 [실수 후 자책하는 시간]을 줄여나갔기 때문이다.


내가 관리자가 되면 나의 잘못, 나의 실수에 후회하고 자책하는 시간도 결국 업무 시간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자책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프로젝트 마감일은 정해져 있다. 실무자들은 “그래서 다음 과제는 어떻게 진행할까요?”라는 눈으로 나만 바라보고 있다. 빠르게 방향을 다시 잡고 일을 진행하려면 자책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중간관리자라면 프로젝트에 포함된 상위 관리자에게 이 방향이 맞는지 재차 확인하고, 실무자들에게도 이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묻는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리고 누구나 방향을 잘못짚을 수 있다. 그러니까 자책은 너무 오래 하지 말고, 빨리 다음 스텝(next step)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자.



3. 실무 대장은 실무에 참여해야 할까?

사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일 크게 고민한 부분이었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온전한 리드가 아니라 [실무 리드]다. 사실 내가 실무자들의 대장이라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실무를 해야 하는 걸까? 리딩을 해야 하는 걸까?


정석대로라면, 리드를 맡았다면 리드 역할에 집중하기 위해 실무에서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 근데 난 실무 대장인데….? 그럼 실무도 해야 하는 걸까? 팀장님과 1 on 1 이 이야기를 때 했을 때, 팀장님(내가 속한 조직의 팀장님.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은 실무와 리드를 병행하되 실무에 너무 비중을 두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셨다. 현재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정하는 리드는 팀장님 2분이나 계시니, 나는 실무에 더 참여해도 된다는 판단일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TF 성격이 강해서, 실무자별로 각 조직에서 하고 있던 업무들과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 주 업무가 조직 업무가 되며, 프로젝트 업무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에 온전히 인볼브(involve)된 사람은 나 혼자였기 때문에 나는 이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 내렸다.


– 위클리 내용과 프로젝트 방향에 맞춰서 실무자들의 다음 과제들을 지정해서 안내하기
– 실무자들이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그 분량만큼 내가 가져가서 실무 하기


나는 그동안 여러 번 리드의 역할을 경험하면서 실무에 대한 욕심을 많이 내려놓은 편이라 이 역할을 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물론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올라오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 처음 리드를 하는 사람들은 실무를 내려놓기 어려워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맡은 실무 대장,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으면서 실무의 비중을 줄여나가는 연습을 해보면 좋다. 그리고 이를 경험하면서 내가 실무에 아직 욕심이 있는지, 아니면 이제 리드의 비중을 늘려도 되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역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 브런치 글(리더는 디자인 실무를 안 하나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designerhyo/63



4. 잡무는 내가 다 할게, 팀원들은 실무에 집중해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프로젝트는 TF 성격을 띄고 있어서 실무자들의 본래 업무에 비해 순위가 떨어진다. 그래서 실무자들이 프로젝트 과제 이외의 잡무(???)를 맡기 힘들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회의록 작성, 자료 정리해서 전달하기 등등등.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중요한 업무들이지만 위클리가 끝나고 나서 바로 다음 업무들 진행하기 바쁜 실무자들에게는 이런 일도 버거울 수 있다.


그래서 실무자들이 너무 많은 일을 맡고 있을 때, 이런 잡무를 리드가 맡는 것이다. 리드의 역할은 이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게 하는 것이니까.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려면 방향이 잘 잡혀야 하며, 이렇게 과제를 진행하고 방향을 정하게 된 경위나 히스토리가 남아있어야 나중에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회의록은 나중에 딴 소리(?)가 나올 경우 “이렇게 얘기했었어요”라는 좋은 증거가 되기도 한다)


사실을 얘기하자면, 나는 실무 대장을 하면서 이 프로젝트 일원 중 유일하게 이 프로젝트에만 집중하는 사람이라… 내가 실무 비중을 줄여서 잡무를 찾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잡무]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라 다들 “다음 과제를 뭘 해야 하지?”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등을 정리하기 어려워했다. 잡무는 이렇게 [다음 과제 정하기] [우리가 위클리에서 정리한 내용대로 방향 한번 정리 후 공유하기]도 포함했다.


실무자의 입장에서 보면 [실무]가 프로젝트에서 제일 중요해 보인다. 근데 실무 리드를 해보니 실무 외에도 중요한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생각했던, 사소하다고 생각한 업무들이었을 뿐. 그래서 이 사소하다고 생각한 [잡무]들을 실무 대장인 내가 맡아서 프로젝트 진행 현황을 정리해 나갔다. 잡무는 리드가 다 할 테니, 실무자들은 실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렇게 2-3개월 정도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조직개편과 함께 잠정적 중단되었다. 이번 조직 개편이 진행되면서 각자의 조직 변화, 특히 조직별 역할이 꽤 많이 달라져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원들의 역할도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 역시 짧은 프로젝트 리드 역할을 끝내고, 저장만 되어 있던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위의 도입부에서 [나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리드로서 스스로 어떻게 평가할까?]라고 적었는데, 본격적으로 진행하기도 전에 프로젝트를 그만둬서 온전히 평가는 어렵지만 [실무자들 서포트는 잘했지만, 디렉터로서는 적극성이 더 필요하다]라고 평가하겠다. 나는 일하면서 정리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방향을 잡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실무자들이 해오는 과제를 정리하고 위키에 작성해서 남들이 봐도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하는지 이해되게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적극성이다. 워낙 내향인이라서 밀어붙이는 것을 어려워한다. 좋은 말로 하면 [남의 의견을 잘 듣고 수용한다]고, 나쁜 말로 하면 [남의 의견에 잘 휘둘린다]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실무 대장을 해서 망정이지, 진짜로 프로젝트 리드를 했다면 이 부분은 치명적일 수 있다. 그리고 자주 휘둘리면 실무자들이 “저 사람이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 건가?”라고 생각해서 신뢰도가 떨어진다. 남의 의견을 잘 듣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때로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밀어붙이는 태도도 보이는 것이 좋다. 물론 이런 결정을 하는 데에서 감정적인 부분은 당연히 배제해야 한다.


이 글에 나온 4가지는 내가 이전에 썼던 글들과 내용이 많이 겹친다. 왜냐하면 그 글들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썼던 글이니까. 1년 정도 진행하는 것을 생각하고 진행한 프로젝트여서 언제 이 글을 올릴 수 있을까? 하면서 일기를 쓰듯이 썼던 글인데. 이렇게 갑자기 프로젝트가 중단된 덕(?)에 이 글이 빛을 볼 수 있었다. 했던 말 또 하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리더/디렉터로서 얻은 것들도 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이 글로 마무리한다는 차원에서 글을 발행한다.

HYO의 더 많은 글이 궁금하다면? 👉 https://brunch.co.kr/@designer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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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원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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