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은 아고다에서 검색하고, 항공권은 스카이스캐너로 비교해요.”
누군가의 여행 준비 루틴처럼 들리는 이 말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플랫폼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특정 플랫폼이 ‘카테고리 자체’가 되어버린 현상. 이제 여행자는 목적지를 정하기 전에 플랫폼의 창을 먼저 엽니다. 그 창이 곧 여정의 시작이 되니까요.
사실 저 역시 지인들이 항공권이나 호텔을 물어오면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합니다. “아고다나 스카이스캐너 먼저 보세요.” 어느새 플랫폼이 여행 준비의 기본값이 되어버린 이 풍경,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선택은 이미 검색창 이전에 끝난다
여행자들은 점점 검색의 고수가 되어갑니다. 거기에 AI 서비스의 등장으로 소비자는 점점 여행 플랫폼 안에서만 검색을 합니다.
호텔을 예약할 때 ‘아고다’를 켜는 순간, 경쟁은 끝납니다. 항공권을 찾기 위해 ‘스카이스캐너’를 여는 순간, 수많은 여행사와 항공사의 존재감은 2차 정보로 밀려납니다.
게다가 이제는 아고다에서 호텔을 선택하면, 적절한 항공 일정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스카이스캐너 역시 호텔 정보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나의 플랫폼이 다른 카테고리까지 넘나들며 여행 설계 전반을 장악하는 시대. 소비자는 이제 플랫폼 안에서만 머무르며 선택을 마칩니다.
이처럼 특정 플랫폼이 특정 카테고리를 대표하게 된 지금, 소비자는 더 이상 개별 여행 상품 공급자의 경쟁력을 일일이 비교하지 않습니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편리함, 리뷰 수, 가격 비교 기능이 곧 ‘신뢰의 총합’이 되기 때문입니다.
🏷️ 플랫폼이 카테고리가 되는 순간
스카이스캐너는 이제 ‘항공권 검색’의 동의어처럼 쓰입니다. 아고다는 ‘호텔 예약’의 기본값이 되었고요.
이는 플랫폼에게 강력한 힘을 줍니다. 소비자의 첫 검색과 클릭이 이미 특정 플랫폼을 전제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경쟁은 끝나고, 나머지 브랜드들은 플랫폼 내부에서 제한적으로 경쟁할 기회를 얻을 뿐입니다.
플랫폼은 결국 ‘검색’의 권력을 쥔 셈입니다. 사용자의 첫 선택지를 선점하는 자가 신뢰와 전환율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클릭률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 그래서 브랜드는 점점 플랫폼에 종속되고, 소비자도 모르게 플랫폼 안에 갇히게 됩니다.
🧩 여행사가 플랫폼에 기대는 이유
전통 여행사가 플랫폼에 기대게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플랫폼은 소비자의 관심을 모으고, 전환을 일으키며, 반복 구매를 유도하는 모든 접점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여행사는 가격 비교 구조 속에서 브랜드를 잃고, 수수료 압박을 받으며, 플랫폼의 정책에 따라 생존을 고민해야 합니다. 플랫폼은 수천 개 여행사의 전문성을 흡수하며 ‘최저가 전쟁’의 심판자이자 설계자가 되었고요.
이런 상황에서 여행사는 가격 경쟁력을 넘는 ‘무언가’를 보여주기 전까진, 플랫폼이라는 무대 위에서 끝없는 생존 경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럼에도 브랜드는 남아야 한다면
이제 여행사는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 고객의 ‘여행 설계자’로 역할을 확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플랫폼이 검색과 예약을 제공한다면, 여행사는 경험의 설계와 맥락을 제공합니다.
✔️ 특정 지역, 특정 테마에 특화된 전문성
✔️ 개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큐레이션
✔️ 일대일 소통, 위기 대응, 맞춤 컨시어지 서비스
플랫폼은 ‘편리함’의 끝을 추구하고, 여행사는 ‘관계’와 ‘이해’로 승부해야 합니다. 결국 여행은 숫자가 아니라 기억으로 남는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이 방식은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경험 설계자’라는 역할이 과연 플랫폼 중심의 가격 경쟁 구도에서 수익성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요? 수백 개의 여행사가 같은 전략을 취하고 있는 이 경쟁적인 환경 속에서, 어떤 브랜드가 기억될 수 있을까요?
📍생존 전략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예를 들어, 정형화된 여행 상품의 루트 속에서도 기획자와 손님 간 소통이 잘 이뤄졌다면, ‘숙소의 방타입을 업그레이드해주거나 동일 가격에 더 나은 숙소를 제안하거나, 현지의 좋은 관광지나 이벤트를 추천해주는’ 결정은 시스템이 할 수 없는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관계와 공감에서 비롯된 순간적인 배려. 그것이 진짜 여행 브랜드의 존재 이유일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여행사 스스로 던져야 할 숙제이자, 플랫폼 시대에 브랜드가 존속하기 위한 전략적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수많은 여행사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고 있다면, 결국 차이는 ‘누가 더 잘 전달했는가’, ‘누가 더 오래 기억되는가’에서 갈립니다.
✔️ 고객에게 ‘나’를 인지시키는 방식은 여전히 콘텐츠에 달려 있습니다.
단순한 상품 정보가 아닌, 경험의 맥락과 감정을 전하는 콘텐츠는 브랜드가 ‘기억되는 이유’를 만듭니다.
✔️ 구조적으로는 수익을 높이는 구조 재설계가 필요합니다.
플랫폼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체 채널에서 예약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고객 여정 설계, CRM 강화, 기업 충성도를 높이는 리텐션 전략이 중요합니다.
✔️ 브랜드는 결국 신뢰입니다.
플랫폼에 묻힌다 해도, 위기 상황이나 문의 대응에서 차별화된 대응을 한다면, 고객은 기억합니다. 그리고 돌아옵니다.
결국 ‘여행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단지 역할의 변화가 아니라, 그만큼 브랜드가 버틸 수 있는 체력과 진심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가격이 아닌 관계로, 클릭이 아닌 기억으로, 소비자의 마음속에 오래 남기 위한 싸움은 겉보기보다 훨씬 더 지구전입니다. 생존은 단기 매출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이해와 공감 위에서 완성되는 일이니까요.
🧳플랫폼이 지배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플랫폼은 분명 여행을 더 빠르고 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 뒤에는 단일화된 선택, 정형화된 경험, 그리고 브랜드의 희미한 흔적이 남았습니다.
여행사가 플랫폼에 기대면서도 브랜드를 유지하려면, 선택받기 위한 설계가 아니라 이해받기 위한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소비자 또한 플랫폼이 만든 첫 화면에서 멈추지 않고, 진짜 나에게 맞는 여행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다음 여행의 시작’은 목적지가 아니라, 나의 선택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존재에서 시작됩니다.
그 존재가 여행사든, 플랫폼이든 그들이 보여주는 ‘이해의 방식’이 진짜 여행을 결정짓는 출발점이 될 테니까요.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