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팀장님이 안 계신다!

43
0

“안녕하세요 000팀 C입니다. 0/0일~0/0일까지 2주간 휴가로 부재입니다.

업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HYO님에게 문의해 주세요.

휴가 잘 다녀오겠습니다.”


팀장님이 장기휴가로 2주간 자리를 비웠다. 내가 1달 리프레시를 다녀오고 복귀한 지 2주 지나서 팀장님이 휴가를 떠나셨다. 이전에도 팀장님 대무를 종종 해와서 대무에는 익숙해졌다 생각했지만, 나와 팀장님의 휴가 전후로 조직개편이 있었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팀원들도 달라졌고, 팀의 역할도 달라졌고, 그만큼 업무들도 달라진 게 많았다.


사실 막연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워낙 자주 대무했으니까 그리 어렵지 않겠지. 뭐 C님 업무가 뭔지 대충 파악하고 있으니 대무하는데도 이슈 없겠지. 그 2주 동안 별 이슈 없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몰랐다. 이 생각은 나의 크나큰 실수였다는 것을.


이제 대무가 끝나고 본업(??)으로 돌아가기 전, 내가 팀장 대무를 하면서 정말 힘들었던 점들, 그리고 고민이 많았던 점을 골라서 일기처럼 써보려고 한다. 만약 다음에 또 대무를 하게 되면 이번처럼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


공식 조직장이 아니지만

2주 동안 내가 결정하고 매니징 해야 한다.


위에서 “그 2주 동안 별 이슈 없겠지”라고 생각한 나 자신의 멱살을 잡고 싶다…. 안타깝게도 팀장님 없다고 이슈 안 터지는 건 절대 아니다. 회사에서 이슈가 안 터지는 일은 거의 없다. 매일까진 아니더라도 장기화되어가는 이슈들, 그리고 그 이슈를 해결할 담당자 지정 등등. 나는 과제가 업무마다 엮여있어서 업무의 담당자를 불러야 할지, 과제의 담당자를 불러야 할지 헷갈리기도 했다.


이슈가 터지고 이 이슈가 일이 되면, 그 일의 결과물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역할은 조직장이 한다. 그 조직장이 없다면 대무가 결정을 해야 한다. 이 [결정]과 [판단]에 대한 무게감은 상상 이상이다. 내가 배너나 쿠폰에 대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 하면 유관부서에서 바로 OK 하기도 하지만, 왜 안되냐고 예전에 이렇게 결정 나지 않았냐고 내가 보지 않았던 시절의 히스토리를 언급한다. 이럴 때는 당연히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팀에서 팀장님만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항도 있다. 팀 매니징에 대한 것. 팀의 과제에 대한 것 등등. 이런 업무에 대해서는 나 혼자서 결정을 내리기 너무나도 어렵다. 물론 “지금 이렇게 얘기하고, 팀장님 복귀하시면 더 자세히 얘기해 봐요”라고 미룰 수 있는 것은 미루지만… 이럴 때마다 나 자신을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예전에 그렇게 자책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또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 힘든 것의 원인은 내가 어디까지나 [대무자] 일뿐 공식 직책을 가진 조직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호랑이 없는 자리에 여우가 감투 썼다고 나서는 꼴이 되지 않을까. 물론 여기서 여우는 자기가 완장을 찼다며 유세를 떨었겠지만, 나는 그저 팀장님이 하던 업무 히스토리도 모르는 갑자기 감투 쓴 곰 한 마리일 뿐인데. 특히나 중니어 이상의 경력을 가진 팀원이 많은 우리 조직에서는 더 그랬던 것 같다. 이 쟁쟁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내린 결정에서 다들 동의하지 않고 토를 달 것 같은 이 불안함. 이 불안함이 2주 동안 극심하게 늘어난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였다.


팀 운영이나 팀장님 업무를 모두 내가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관받은 업무 중 몇 가지는 다른 팀원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분은 나와 팀장님과 함께 관련 업무를 어느 정도 해 본 사람이라 망설이지 않고 내 부탁을 들어줬다. 어쩌면 일정 경력 이상의 디자이너가 꽤 있는 우리 팀의 특성일 수도 있겠다. 내가 모르는 업무에 대해서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빠르게 판단하고 해결해 줬다.


서은아 작가님의 [응원하는 마음] 책에서 작가님은 첫 팀장에게는 [팀장이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누구나 팀장을 다는 순간 완벽한 팀장이 될 수는 없다. 공식적으로 팀장 직책을 달았다 해도 팀원들보다 업무를 모를 수 있고, 전문 지식을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이 [팀장 역할 대무]를 맡는 기간 동안 여러 곳에서 많이 물어봤다. 업무에 대한 것은 나보다 더 잘 아는 팀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팀장 대무가 저렇게 줏대 없이 팀원 말에 휘둘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나는 공식 직책자가 아니라 팀장 대무이며, 팀장을 맡은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대무자가 공식 직책자보다 더 잘한다는 법은 없다. 다만 지금 이 [대무]라는 역할을 미래의 내가 리더가 되었을 때의 밑바탕이 될 경험으로 생각하고 수행할 뿐이다. 물어볼 것은 물어보고, 때로는 나보다 더 잘하는 팀원에게 물어봐도 괜찮다.



매니징도, 내 본래 업무도 함께 해야 한다


대무의 가장 큰 단점. 대무 업무도, 내 본래 업무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마다 팀장님이 하는 업무는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팀장님 같은 경우 팀 매니징 업무 비중이 가장 컸다. 유관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 외부 업체와의 계약 관련 업무, 팀에 떨어진 과제 매니징 등등. 팀장의 업무를 적어봤을 때 생각보다 크게 힘들어 보이지 않지만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업무다. 이전 글에서도 몇 번 언급을 했겠지만, 팀장님이 실무를 안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조직장의 대무를 맡은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직장의 업무에 나의 업무까지 함께 수행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대무자의 하루는 보통 정상근무시간에는 조직장 대무 업무를 진행하고, 그 이후에 야근하면서 내 업무를 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2명분의 일을 하려니 매일이 야근의 연속이다. 이전 팀에서의 대무 시절에도 그랬고, 다른 팀의 대무자도 그랬고, 이번의 나도 그랬다. (대무자들 모두 파이팅….)


내가 대무자인 것은 우리 팀 사람들이나 팀장님과 일하는 유관부서 사람들만 알 뿐, 그 외의 사람들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나의 사정을 절대 봐주지 않는다. 특히 일정에 쫓겨서 과제 마감일정을 잡는 회사는 더더욱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대무가 밀린 와중에 오늘까지 디자인 시안을 전달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속으로 광광 울기도 했다. 대무에서도 이슈가 터지고 내 본래 업무에서도 이슈가 터지면…. 그때는 정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마케팅 디자인 조직 같은 경우, 팀으로 들어오는 요청 업무가 보통 1주 간격으로 들어온다. 이때 나에게 할당되는 일 없이 팀원들에게 업무를 배정할 수밖에 없다. 이미 장기 과제를 들고 있다면 이 부분은 내가 그대로 들고 가야 하겠지만, 1주 단위의 정기 업무는 다른 팀원들에게 부탁해야 내가 대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대무를 하는 동안에는 본래 맡고 있던 업무가 아니라면 잠시 실무 욕심을 내려놓자. 조직장 대무를 맡는다면 팀을 위해서라도 대무에 좀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팀 업무 말고 회계/결재 대무


회사 생활에서는 팀 업무 말고도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이 회사 생활에 필요판 재무/인사 관련 결재다. 팀 대 팀으로 진행되는 회계/결재 업무는 보통 팀장님이 도맡아서 진행한다. 팀 대 팀으로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회계/결재 관련 업무는 보통 월말에 몰아서 진행된다. 그 월말에 내가 대무를 맡아버렸으니, 나는 그렇게 의도치 않은 회계/결재 업무 폭격을 속절없이 맞고 말았다.


첫 번째 결재 폭격은 다름 아닌 대결자(결재 대무하는 사람) 지정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운영비 산정, 연차 신청 등에는 당연히 팀장 결재가 필요하다. 대무 기간 동안, 연차 신청을 하려는 팀원들이 누구를 결재로 올리면 되는지 물어봤을 때 뭔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예전에 알던 결재 방식과는 다르게 대결자를 미리 지정해야 대무자에게 결재요청이 올라오는 방식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때 급하게 슬랙의 서포트 채널에서 담당자들을 찾아 헤매느라 진땀을 뺀 기억이 있었다.


그 외에도 팀장님이 내용 확인 후 결정해야 하는 결재 업무가 2주 동안 나를 괴롭혔다. 팀장님도 모르셨던 것 같은데, 단순 신청 업무라고 생각했던 이 결재 업무가 생각보다 많은 유관부서가 엮여있어서 2주 내내 회의와 결정을 무한 반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유관부서의 결정 요청 러시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른 디자인팀의 조직장 분들에게 도움 요청을 해서 어찌어찌 도움을 받긴 했지만, 이 업무를 근 1년간 팀장님이 맡아서 진행해 왔기 때문에 팀장님들이 메인으로 도와주시진 못했다. (이 부분에서는 팀장님들도 정말 미안해하셨고 이해해 주셨다. 두 팀장님들은 이 업무가 얼마나 머리 아프고 힘든지 잘 알기 때문인 듯하다)


2주간의 대무를 맡으면서 나의 전문영역 이외의 부분으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 회계/결재 대무였는데, 내 업무가 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 나와 팀장님의 불찰일 것이다. 그래서 이다음에 대무를 맡는다면 무조건 이 대결자 지정과 그 외의 결재 업무 대무부터 물어볼 것이다. (아니 그냥 대무할 때 다신 맡고 싶지 않다. 수포자 디자이너에게는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이렇게 폭풍 같은 2주 조금 넘는 대무 기간이 끝났다. 이제 팀장님이 복귀하시면 나는 이 업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팀장님에게 인수인계하는 시간도 있겠지만….(그래서 내일 출근하고 오전이 두려움) 이다음에는 나는 본래 내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무하느라 내가 놓치는 본 업무 내용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이제는 놓치지 말고 꼼꼼하게 챙겨야지.


모든 시니어가 조직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니어들은 조직장이 부재중일 때 언제든 대무를 맡을 수 있다. 아마 대다수의 팀장님들이 휴가 기간 동안 가장 경력이 많은 팀원에게 자신의 대무를 맡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조직장이 아니더라도 이 갑작스러운 대무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어찌 되었든 비공식적이라도 내가 팀장의 업무를 수행할 가능성은 언제나 높다.


그래서 나는 이 대무 기간을 [내가 조직장으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테스트하는 기간] [팀장 체험판]이라고 생각하고 지내려고 한다. 팀장 대무를 하면서 실제로 팀장이 되었을 때 어떤 업무들이 쳐들어올지, 어떤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이를 위해서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를 경험할 수 있다. 정말 내가 싫더라도 시니어라면 한 번쯤 겪어봐야 하는,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팀장 대무인 것 같다. 이 대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어라, 내가 은근 리더 역할을 잘하잖아?” 하고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시니어 여러분…. 갑자기 팀장 대무를 맡는다 하면 내가 못한다고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주변에 도움 받을 수 있으면 꼭 도움요청하시고, 이 기간 동안 팀장 체험한다고 생각하고 슬기롭게 보내봅시다! 팀장 대무하는 시니어 분들 모두 파이팅!

HYO의 더 많은 글이 궁금하다면? 👉 https://brunch.co.kr/@designerhyo/




HYO
글쓴이

HYO

마케터와 제일 가까이서, 제일 오래 함께 일한 디자이너입니다.

큐레이션된 정보를 전달드립니다. 

합격보상금 20만원

글로벌 소셜 채널 운영 (계약직)

펑타이그레이터차이나(피티코리아)

2025-06-22

합격보상금 100만원

퍼포먼스마케터 (2년 이상)

베리타스커넥트

2025-06-23

합격보상금 100만원

미국주식 & ETF 컨텐츠 마케터

이자

2025-09-05

합격보상금 100만원

Marketing Team Leader

더건강한

상시

합격보상금 100만원

Global B2B Marketing Manager

엔젤스윙

상시

합격보상금 100만원

마케터 (5년 이상)

어시스트핏

상시

출처: 원티드

답글 남기기

브런치프로필 - hyo jin Kwon

HYO

다른 아티클 보기

시니어 마케팅 디자이너가 본 토스 심플리시티

기간제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

프로젝트 리드 오답노트

아직 구독 전이신가요?
구독하고 더 많은 콘텐츠를 확인해보세요.

이름/회사명

마케터에게 제안하기

마케팅, 강연, 출판, 프로젝트 제안을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