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쿡은 빅토리아 시대에 패키지여행과 여행자 수표를 처음 선보이며 현대 최초의 여행사 입니다.
2025년, 우리는 이제 여행을 선택하는 과정에서조차 AI가 개입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플랫폼은 이용자의 검색 패턴과 예약 이력을 바탕으로 여정을 제안하고, 소비자는 ‘누구나 가는 여행’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맞는 장면’을 고르기 시작했죠. 여행은 더 이상 체류와 이동의 조합이 아니라, 취향과 감정, 계절과 관계를 유동적으로 재조합하는 감각의 경험으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질문을 다시 꺼내보게 됩니다.
여행자의 감각이 이토록 근본적으로 바뀐 시대에, 전통적인 여행사는 어떤 언어로 고객에게 말을 걸어야 할까요?
그 실마리는 관광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그 이름에서 출발합니다. 단 한 칸의 기차를 빌려 대중여행이라는 개념을 처음 실현했고, 여행자 수표와 패키지 여행, 글로벌 네트워크의 기초를 설계했던 존재, 바로 ‘현대 여행산업의 시작점’이라 불렸던 토마스 쿡(Thomas Cook)입니다.
놀랍게도 이 브랜드는 코로나19로 여행 산업이 정지되기 전, 이미 2019년에 파산을 선언하고 조용히 무대에서 퇴장했습니다.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되기도 전이었죠. 그렇다면 무엇이 이 위대한 브랜드를 가장 먼저 시장에서 떠나게 만든 걸까요?
✈️ 팬데믹보다 먼저 무너진 이름, 토마스 쿡
많은 이들이 토마스 쿡의 파산을 ‘코로나19의 직격탄’으로 기억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팬데믹은 그저 속도를 앞당겼을 뿐입니다. 감각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고, 플랫폼은 고객의 맥락과 취향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여행의 구조를 재편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토마스 쿡은 여전히 ‘정해진 구성’을 판매하고 있었고, 기술을 구조가 아닌 기능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한때 경쟁력이었던 견고한 구조가 오히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조의 역설’에 갇혔던 것입니다.
🏗️ 규모가 신뢰였던 시대의 종말
토마스 쿡은 항공사, 호텔, 리조트를 직접 보유하며 여행의 전 과정을 통합하는 수직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한때 신뢰의 상징이자 독보적인 경쟁력이었죠.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는 오히려 위기로 작용했습니다.
-
유연하지 못한 구조: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축소하거나 전환할 수 없는 시스템은, 결국 시장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정해진 체질’이 되었습니다.
-
고객과의 단절: 정해진 일정, 집단 이동, 고정된 옵션. 한때 익숙했던 이 구성은 이제 ‘내가 선택한 여행’이 아닌 ‘누군가 짜준 루트’로 인식되며 오늘날의 여행객들에게 피로감을 주었습니다.
고객은 자신에게 맞는 여정을 스스로 구성하고 싶어 했고, 플랫폼은 그 주도권을 사용자에게 돌려주며 여정을 감정의 흐름에 맞게 재설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마스 쿡은 끝내 그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습니다. 과거의 공식 안에 머물며, 고객이 바꾼 언어로 말하지 못한 채 사라져 간 것입니다.
🔁 플랫폼으로 다시 태어난 토마스 쿡
2019년 파산 이후, 토마스 쿡은 중국 푸싱(Fosun) 그룹에 인수되어 OTA 플랫폼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더 이상 항공과 호텔을 보유하지 않고, 모바일 기반 예약 시스템과 큐레이션된 여행 상품을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여행을 설계해주는 회사’에서 ‘여행자가 설계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본질이 바뀐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 수많은 게임체인저들이 등장했습니다. 고객의 감각을 데이터로 읽고, 감정의 흐름에 따라 여행을 설계해주는 브랜드들이 시장을 재편하고 있었습니다. 토마스 쿡이 다시 태어났을 때, 이미 여행은 단순한 판매가 아니라 ‘경험의 기획’으로 넘어가 있었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플랫폼들이 여행의 문법 자체를 바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 한국 종합여행사는 어디쯤 와 있는가?
토마스 쿡의 이야기는 결코 먼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국내 종합여행사들의 상황을 돌아보게 합니다. 많은 종합여행사들이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핵심 구조는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변화는 시도하지만, 본질은 그대로: 플랫폼 개편, 젊은 세대 겨냥 기획전 등을 내놓지만, 여전히 감정과 맥락이 빠진 설계, 고객이 주도권을 가질 수 없는 UX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OTA, 플랫폼과의 간극: 여행 플랫폼은 개인화된 큐레이션과 콘텐츠 중심으로 ‘여행 설계권’을 고객에게 되돌려주고 있습니다. 고객은 이미 움직이고 있지만, 그 움직임이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수요가 아니라 구조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플랫폼들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단순한 항공권, 숙박 예약을 넘어 에어비앤비처럼 ‘로컬 호스트’가 직접 기획한 독특한 체험 상품을 제공하는 모델이 등장하면서, 여행자는 다시 한번 ‘정형화된 상품’이 아닌 ‘개인의 취향과 감정’에 맞는 경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플랫폼은 더 이상 단순한 중개자가 아니라, 고객의 감각과 로컬의 이야기가 만나는 접점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하는 과제에 놓였습니다.
기술의 유무가 아니라, 감각의 유무
모든 것이 디지털로 대체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은 본질적으로 ‘현장’의 경험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그리고 감정의 결을 품은 이야기입니다. 아날로그적 감각과 현장 기반의 서비스는 여전히 유효한 자산이죠.
결국 중요한 건 기술의 유무가 아니라, ‘무엇을 중심에 두고 설계했는가’입니다.
“기계가 효율을 만든다면, 사람은 감정의 흐름을 설계합니다.”
토마스 쿡은 팬데믹 때문이 아니라, 변화한 감각을 끝내 읽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여행자는 ‘어디로 가는가’보다 ‘어떻게 설계되는가’를 먼저 보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것은 이동이 아니라 경험이고, 정보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입니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상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언어 자체를 다시 써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과거의 언어가 “출발일에 맞춘 일정표 제공”이었다면, 이제는 “기분에 맞는 루트를 제안하는 감정형 설계”가 되어야 합니다. 고객의 감각이 바뀌었고, 그 감각에 말을 거는 방식 역시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여행을 ‘정해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설계하는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