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행에서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도쿄 마라톤에 출전하고 싶다", "싱가포르 F1 야간 레이스를 직접 보고 싶다". 도쿄타워도, 마리나베이도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이 목적지보다 먼저 떠오른다면, 우리는 이미 여행의 패러다임이 바뀐 세계 안에 있습니다

국내 최대 여행사 하나투어가 최근 심상치 않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러닝 스타트업 클투(Cltour)의 2대 주주가 됐고, 글로벌 액티비티 플랫폼 와그(WAUG)의 지분을 최대 15%까지 확대하기로 했으며, 럭셔리 자동차 테마 여행사 피피티투어(PPT Tour)에도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셋은 이미 하나의 사업으로 묶여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왜 1등 여행사는 스스로 모든 걸 만들지 않고, 작지만 뾰족한 전문 기업들을 자기 품으로 불러 모으는 걸까요?

🔎 한 번 데인 손이 더 영리해졌다

하나투어가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확장한 건 아닙니다.

2010년대 하나투어는 SM면세점을 세우고, 센터마크 호텔을 직접 운영하고, 투어&액티비티 플랫폼 '모하지'를 론칭했습니다. 모두 하나투어의 이름을 달고 직접 운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덩치는 커졌지만 수익은 나오지 않았고, 코로나19가 그 구조의 균열을 한꺼번에 터뜨렸습니다. 2020년 IMM PE가 최대 주주로 들어오면서 하나투어는 긴 슬림화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확장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직접 짓지 않습니다. 이미 잘하는 사람들의 지분을 삽니다. 클투가 대회를 운영하고, 와그가 글로벌 유통을 담당하고, 하나투어는 상품 기획과 마케팅을 맡는 '오크밸리 힐스 나이트 레이스' 3사 공동 사업이 그 구조의 첫 번째 시험대입니다. 실패의 경험이 전략을 바꿨습니다. 하나투어는 지금 '소유의 언어'에서 '연결의 언어'로 갈아타고 있습니다.

🧭 여행자는 이미 달라졌다

전략의 변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여행자의 변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과거 여행은 '수집'의 행위였습니다. 에펠탑 앞 인증샷, 유명 명소 체크리스트. 이 시대의 여행자는 철저히 '관찰자'였습니다. 지금의 여행자는 다릅니다. 도쿄 마라톤 완주 메달을 목에 거는 것, 알프스에서 포르쉐 스티어링 휠을 잡는 것. 이들은 여행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싶어합니다. '플레이어'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변화의 이면에는 두 가지 감각이 교차합니다. 

하나는 '달라지고 싶다'는 감각: 모두가 찍는 사진으론 더 이상 나를 표현할 수 없는 시대, 취향이 담긴 경험이 새로운 자기 표현 수단이 됐습니다. 

다른 하나는 '깊이 들어가고 싶다'는 감각: 클투의 러너들은 단지 뛰고 싶은 게 아닙니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낯선 도시를 함께 달리는 연결감을 원합니다.

하나투어는 이 두 감각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들이 살아 숨 쉬는 전문 플랫폼에 지분을 샀습니다.

💡 'SIT 생태계 빌더' 하나투어가 설계하는 새로운 지도

이쯤에서 하나투어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시 펼쳐보면 패턴이 선명해집니다.

클투: '달리는 이유로 떠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글로벌 스포츠 관광 시장은 2032년 약 29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거대 시장입니다.

와그(WAUG) : '어디를 가느냐'가 결정된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채워주는 레이어. 전 세계 230개 도시 3만여 개 액티비티를 구글 'Things to do'와 연동해 유통합니다.

피피티투어: F1 그랑프리와 럭셔리 드라이빙을 결합한 프리미엄 여행 기획사. 하나투어의 하이엔드 브랜드 '제우스월드'와 결합해 싱가포르 그랑프리 미슐랭 만찬 패키지 같은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셋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하나입니다. '취향이 곧 목적지가 되는 여행', SIT(Special Interest Tourism)입니다.

스스로 모든 영역을 개척하는 대신, 각 분야의 '뾰족한 기획자'들을 자신의 인프라와 연결하는 것. 이것이 'SIT 생태계 빌더' 전략의 핵심입니다. 하나투어는 운동장을 소유하는 대신, 운동장들을 연결하는 허브가 되려 합니다.

📈 가격 경쟁의 탈출구, 그리고 진짜 목적지

SIT 전략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비교 불가능성입니다.

일반 패키지는 1만 원 차이에도 예약처가 바뀝니다. 하지만 "도쿄 마라톤 완주 + 현지 러너 커뮤니티 연결 + 사전 훈련 프로그램"이 한 묶음이 된 클투의 런트립은, 다른 곳에서 똑같이 살 수 없습니다. 취향이 깊이 반영된 상품은 가격이 아닌 가치로 선택받습니다. 이 구조 안에서 하나투어는 저가 경쟁의 늪을 빠져나와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이동할 발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략에는 또 하나의 숨겨진 목적지가 있습니다. 바로 '글로벌 바운드'입니다. 이미 다국적 유저를 보유한 와그를 품에 안음으로써, 한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자를 직접 연결하는 인바운드 시장에도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4월 출시 예정인 인바운드 전용 플랫폼 'Hop&Hop'은 그 전략의 첫 번째 공개 선언입니다. 한류가 전 세계 여행자의 방한 욕망에 불을 지피고 있는 지금, 그 열기를 실제 예약과 경험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먼저 장악하려는 셈입니다.

낯선 도시를 달리는 러너는 코스를 채우러 간 게 아닙니다. 낯선 도로에서 스티어링 휠을 잡는 사람은 단지 자동차를 타러 간 게 아닙니다. 그들은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투어가 베팅한 것은 결국 '누군가의 뜨거운 취향이 만든 경험'이 알고리즘보다 더 강력하다는 믿음입니다.

물론 과제도 남습니다. 지분 투자는 경영권이 아닙니다. 클투와 와그가 성장할수록, 하나투어 없이도 독립적으로 움직이려는 원심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허브가 되려는 쪽과 허브에 묶이지 않으려는 쪽 사이의 긴장은, 생태계가 커질수록 오히려 커지는 법입니다. 스타트업의 뾰족한 감각이 대형 플랫폼의 논리 안에서 무뎌지지 않으려면, 하나투어는 '자본을 쥔 주주'가 아니라 '함께 시장을 키우는 파트너'로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생태계는 잘 짜인 설계도만으론 완성되지 않으니까요. 결국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 안으로 모여들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게 아닐까요?


이미지 출처

썸네일: 하나투어

본문: Unsplash, 하나투어, WAUG, 클투, 피피티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