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주] 넷플릭스 리드 헤이스팅스의 여정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닮았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연출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괴테의 파우스트일지 모르고, 오징어 게임은 현실에 펼쳐진 단테의 지옥이다. OTT는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를 창조했다. 누군가에는 멋진 신세계지만 누군가에게는 실낙원인 이곳. 이 경계의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 작품, 브랜드를 약 20주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매주 2편의 신작과 명작 추천은 별책부록이다. 부디 이 책이 플랫폼의 타율을 올리고, 제작사의 구종을 늘리고, 창작자의 구위를 높이는 작업이 되기를. 그리고 모든 시청자에게 시간의 자유가 함께 하기를.
*12부작 시즌 1을 종료합니다. 하반기에 시즌 2로 찾아뵙겠습니다.
- 프롤로그
- 갑자기 거칠게 분 일진광풍(一陣狂風)
- 팬데믹 앞에서도 위풍당당(威風堂堂)
- 맑고 밝은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꿈
- 풍전등화(風前燈火), 흔들리는 케이
- 가장 아름다운 화조풍월(花鳥風月)로
- 에필로그
프롤로그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재패니메이션, 마살라 무비.. 한 문화권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일군 영상 콘텐츠를 일컫는 용어들이다. 한국의 ‘K-콘텐츠(이하 케이)’는 90년대 중반부터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파되었고, 2010년대 이후 OTT 플랫폼을 만나 전 세계로 확산되며 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초기 ‘한류(韓流, Korean Wave)’라고 불리던 아시아에서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의 유행현상은 이제 한국의 음악, 영화, 드라마, 패션, 음식, 만화, 소설 등 대중문화 전반을 포함하는 ‘K-Culture’라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케이는 ‘K-POP’과 함께 케이컬처의 부흥을 일군 양대 축이었다.
케이는 이란성 쌍둥이다. 첫째의 이름은 드라마, 둘째의 이름은 영화다. 첫째는 텔레비전이라는 전파를 타고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둘째는 영화관이라는 무대에서 갈채를 받았다. 같은 듯 다른 길을 걷던 둘은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정거장을 지나 얼마 전, OTT라는 정류장에서 합류했다.
갑자기 거칠게 분 일진광풍(一陣狂風)
케이 열풍은 일순간에 불어닥쳤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그 신호탄이었다. 기생충은 2019년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한국 영화 100년 사의 금자탑이었고, 광풍의 시작이었다.
기생충 광풍이 휩쓸고 간 2020년 말,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들이 또 다른 광풍을 일으켰다. 2020년 일본 넷플릭스 시청시간 1위는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었고, 2위는 ‘이태원 클라쓰’였다. 그리고 ‘사이코지만 괜찮아’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등 TOP 10 절반이 한국 드라마였다.
일본 대중문화계는 2003년 ‘겨울연가’의 1차 한류붐, 2008년 ‘동방신기’의 2차붐, 2017년 ‘BTS’의 3차붐에 이어 2020년 한국 드라마 열풍을 4차 한류붐이라고 분석했다. 4차붐은 코로나 팬데믹 긴급사태 기간으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1차~3차와는 달랐다.
케이에게 코로나는 훈풍이었다.
케이에게 코로나는 기회였다.
팬데믹 앞에서도 위풍당당(威風堂堂)
코로나 팬데믹은 OTT의 큰 기회로 작용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레거시 미디어가 세계적인 전염병 사태에 맥을 추지 못하고 흔들리는 위기를 틈타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2019년 한국 넷플릭스는 김은희 작가와 함께 최초의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을 공개했다.
킹덤 이전까지 넷플릭스의 국내 인지도는 초라했다. 하지만 킹덤이 전 세계적인 대성공을 거두자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 넷플릭스 가입자는 폭증했고, 국내 대기업들도 앞다투어 OTT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다. 킹덤은 시즌2와 외전까지 제작되었다.
그렇게 OTT 전성시대가 열린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9월, 한 편의 드라마가 넷플릭스라는 바람을 타고 전 세계에 휘몰아친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이었다. 오징어 게임은 공개 17일 만에 역대 최초의 1억 가구 시청이라는 위풍당당한 대기록을 달성하며 세계적인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는다.
오징어 게임은 지금도 세계 1위다.
맑고 밝은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꿈
케이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오징어게임의 열풍은 이재규 감독의 ‘지금 우리 학교는’는 시리즈와 박은빈 배우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리즈로 옮겨 불었고, 2022년 12월 김은숙 작가의 ‘더 글로리’ 시리즈가 공개되면서 케이 열풍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구가한다.
마침내 코로나 엔데믹이 선언된다.
모두가 몰락하던 극장이 살아나고, 무너지던 방송시장도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영화관은 회복이 더뎠고, 방송국은 적자 탈출을 위해 드라마 편성을 줄이기 시작했다. 밝은 전망으로 선제작된 수백 편의 작품들은 모두 창고에 잠들어 있다.
케이의 위기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OTT 플랫폼은 케이를 대체할 스포츠와 예능으로 눈을 돌렸고, ‘솔로지옥’ ‘환승연애’ ‘피지컬 100’ 등이 가성비를 입증하며 케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와 경쟁하던 케이는 이제 야구 중계, 연애 관찰 예능과 경쟁하게 됐다.
케이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길을 잃었다.
풍전등화(風前燈火), 흔들리는 케이
케이의 진짜 위기는 ‘돈’의 가뭄이다. 충무로 자본에서 대기업 자본으로 다시 금융 자본에서 글로벌 OTT 자본으로 돈줄을 옮겨 타던 케이였다. 이제 케이의 생존은 어느 곳에서 자금을 수혈해야 하는지에 달려 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케이의 동아줄은 찾기 힘들다.
케이는 바람 앞에서 길을 잃었다.
케이가 여러 자본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관객의 티켓과 시청자의 본방사수 덕분이었다. 하지만 OTT 자본은 케이의 야생성을 길들였다. 천만 관객도 시청률 50%의 전설도 더 이상 필요 없는 일이 되었다. 수익은 대행업 수준이 되었고, 지적재산권마저 포기했다.
케이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불과 5년 전, 전 세계 영화와 드라마 시장을 호령하던 영광은 실낱같은 희망으로 깜빡이고 있다. 모두가 케이의 맏형인 봉준호 감독과 황동혁 감독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다. 봉황의 ‘오징어 게임2’와 ‘미키 17’은 케이의 새 희망이 될까?
가장 아름다운 화조풍월(花鳥風月)로
케이는 바람 같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죽지 않는다. 바람은 소리가 있다. 보이지 않지만 굉음처럼 울고 웃는다. 바람의 목소리는 막을 수 없다. 바람은 성격이 없다. 땀을 식혀주는 산들바람도, 지축을 뒤흔드는 태풍도, 우주의 태양풍도 모두 바람이다.
케이의 주인은 누구일까? 돈을 내는 투자자? 기획하고 만드는 제작자? 상상하고 옮기는 창작자? 조립하고 기록하는 기술자? 아니면 케이를 봐주는 관객과 시청자? 모두가 주인일 수도 또는 나그네일 수도. 반백년 전, 누군가 간절히 꿈꿨던 높은 문화의 힘이 ‘K’이기를.
다시 케이의 바람이 불기를.
나는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바라는 것은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백범 김구 ‘나의 소원’ 中
시즌2로 마침내 돌아와 평안하기를.
에필로그
지난 14주간 ‘OTT 오딧세이’를 애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시즌1을 종료하고, 하반기 시즌2로 찾아뵙겠습니다. 연재기간 동안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 웹진’, 한국경제매거진 ‘세이지클럽’, 위시켓 ‘요즘 IT’, 웹스미디어 ‘디지털 인사이트’ 등의 미디어에 기고의 기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즌1은 출판계약이 되어 곧 에어북으로 공개됩니다. 에어북은 얼룩소를 통해 출판되며, ‘OTT 원조편’과 ‘OTT 도전자편’ 2편으로 나뉘어 출간 예정입니다. 모두에게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기획자의 식탁(가칭)’이라는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응원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
부디 이 책이 플랫폼의 타율을 올리고, 제작사의 구종을 늘리고, 창작자의 구위를 높이는 작업이 되기를. 그리고 모든 시청자에게 시간의 자유가 함께 하기를. OTT 오딧세이 ‘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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