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에 사용된 이미지는, 내가 아카이빙 해 놓은 모바일 서비스의 배너/팝업 이미지이다)
몇 년 전, 포트폴리오 작업을 위해 그동안의 디자인 작업물을 정리할 때였다. 이벤트 페이지도 많았지만 배너가 정말정말x10 많았다. 이벤트 페이지 1개당 배너가 10개 이상 작업되는 경우도 있었고, 단일 배너만 작업하더라도 하나의 기획전 또는 이벤트로 수많은 이벤트를 작업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마 마케팅 디자이너라면 나처럼 수많은 배너를 작업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 마케팅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정의할 때 이벤트 페이지에 비중을 많이 두긴 했지만, 그에 딸려오는 배너 역시 중요하다. 그리고 작업이 어렵지 않다 보니 처음으로 디자인 업무를 진행하는 디자이너들이라면, 가장 먼저 배너를 작업하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보는 디자이너라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아니 템플릿 다 있는 배너가 어디가 중요하다는 거야? 포트폴리오에 넣기도 애매한 작업이 왜 중요한 거야 등등… 그 마음 다 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눈물)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너무 하기 싫다!
왜 배너가 중요할까?
배너는 오프라인에서는 매장을 홍보하기 위해 매장 밖에 두는 Y자 배너를 말한다. 매장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 이 배너를 통해 이런 신제품이 출시되었다 등등을 지나가는 고객에게 알린다. Y자 배너이든, 또는 매장에 붙는 현수막이든 매장을 홍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배너다.

이는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네이버 같은 포털 웹사이트에서, 그 외의 모바일 플랫폼에서 [이런 상품이 나왔어요!] [우리 이런 할인을 행사예요 = 제발 많이 사주세요] 등을 홍보하는 구좌가 바로 배너 영역이다. 그럼 이 배너가 대체 왜 중요하냐?라고 한다면 간단하게 아래의 이유로 요악할 수 있다.
첫 번째, 스크롤 없이 보이는 첫 화면에서 제일 잘 보이는 영역이다.
두 번째, 해당 배너 구좌를 광고상품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회사 수익에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 사례 같은 경우 디자이너에게 어필하는 배너의 중요성 사유다. 배너를 자주 만들고 구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마케터와 디자이너다. 마케터들은 이미 이 배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잘 보이고 가장 첫 번째에 걸리는 배너의 클릭률(CTR)이 서비스 이용 또는 주문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데이터를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 시각에서는, 이 배너 영역이 메인 화면에서 제일 잘 보이는 영역이기 때문에 디자인 퀄리티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제일 먼저 보이는 화면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 영역을 신경 안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사례 같은 경우 사업 구조와도 관계가 있다. 자사 홍보를 위해서 배너를 게재하는 경우도 많지만, 해당 배너 자리를 [판매]해서 다른 서비스 또는 브랜드의 홍보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TV에서 인기 프로그램 중간 또는 앞뒤로 광고구좌를 판매하는 것, 또는 유튜브 영상 앞뒤 또는 중간광고 시스템(유튜브 광고 시스템 안내 링크)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사유로 배너 구좌를 얼마나 판매하냐에 따라 회사 수익이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대다수의 모바일 서비스는 배너 광고 영역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가 배너 작업을 기피하는 이유
위의 2가지처럼 배너가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하지만 모르는 경우가 많긴 하다) 디자이너가 배너 작업을 피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 대다수의 디자이너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디자인 템플릿이 정해져 있잖아요. 워낙 많은 양의 배너를 똑같은 디자인으로 작업하는 거는 공장 돌리기죠.”
“단순 작업이 많아서 [내가 이렇게 디자인했다]고 얘기하기 애매해요. 포폴에 넣을 수도 없어요.”
한마디로 [디자인 템플릿이 정해져 있는 단순 작업]이기 때문에 배너 작업을 꺼려한다. 보통의 배너에는 가이드가 있으며, 디자인에 신경 쓰는 서비스일수록 가이드가 꽤 엄격하다. 여러 명 또는 여러 브랜드 외부에서 제작하는 배너를 컨트롤하려면 가이드를 잘 만들어놔야 한다. 가이드가 있다는 것은 뭐다? 자유롭게 디자인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웬만하면 이 레이아웃을 깨기 어렵고, 쓰면 안 되는 이미지들도 많다. 폰트 종류와 크기도 정해져 있으며, 배너 간의 디자인 서열을 맞추기 위해서 [이 디자인을 쓰면 안돼요]도 정해진 경우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를 기획하고 만들어야 하는 배너 특성상 빠른 기획+빠른 디자인이 중요해서 오히려 가이드가 있는 편이 좋을 수 있다. 효율성에서는 좋을 수 있겠지만, 디자인이 정형화되어있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배너 디자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세울 게 없다는 것이 배너를 만드는 디자이너의 딜레마일 것이다.
그리고 번외편(?)으로, 배너 영역이 작은 것도 있다. 하나의 페이지 또는 마이크로 사이트를 만드는 이벤트 페이지와는 다르게 배너는 영역이 작다. 대체로 배너들은 세로 영역이 짧은 가로형이 많고, 그나마 영역이 크다고 할 수 있는 팝업 영역이나 인앱메시지 배너도 크기가 작은 축에 속한다. 이 작은 영역에서 디자인을 꾸역꾸역 넣거나 가이드대로 디자인만 계속 [쳐내다 보면] 현타가 올 수밖에 없다.
배너 작업의 모순,
그리고 모순을 이용한 기회
배너는 여러모로 모순의 구좌다. 저 쪼끄맣고 디자인 다 정해져 있는 단순작업 영역이, 단지 화면에서 제일 잘 보이는 영역이고 가장 먼저 클릭하는 대문 영역이라는 이유로 중요하다고 보다니.(분노)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게 배너 디자인이다.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동안 배너를 몇 백개… 아니 몇 천 개 정도 만들었을 텐데 이 배너들이 내 커리어에 실제로 도움이 될지, 포폴에 어떻게 넣을지 고민할 때가 있었다. 이 배너 작업을 어떻게 내 중요한 커리어로 만들까? 어떻게 포트폴리오에 넣어야 이 배너 작업을 내세울 수 있을까?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제시하자면, 배너 관련 작업할 때 [효율성]과 [운영] 키워드를 중심으로 일을 해보라고 하고 싶다. 배너를 만들기도 하겠지만 배너를 운영하기 위한 시스템과 가이드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배너는 그 작은 영역에서 하루에 수십 개의 제작과 라이브가 진행되는 구좌라서, 실제 디자인 작업 연결시킨다면 어쩔 수 없이 단순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배너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고 나의 의도를 심으려면 배너를 제작하는 데에 중심이 되는 [배너 가이드]를 만드는 일을 하면 된다.
왜 이 레이아웃으로 잡았는지, 로고를 왜 여기에 넣어야 하는지, 왜 이 이미지를 넣어야 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이 배너가 들어가는 화면과 잘 어울릴지 등등. 이런 생각을 토대로 가이드를 만들고, 가이드로 배너를 운영해 보면서 고쳐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양을 제작해야 하는 배너 영역에서는 가이드의 중요성이 다른 곳에 비해 더 높아진다. 그렇기에 배너 작업의 근본이 되는 가이드 제작 및 운영 업무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배너의 단순작업을 빠르게 쳐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더더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AI가 대두되면서 [사람보다 인공지능 또는 프로그램이 업무를 더 빨리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업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내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이 AI나 관련 툴을 이용해서 이전보다 더 짧은 시간 동안 더 많은 배너를 칠 수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배너의 단순작업을 [효율화]하는 것이다. 특히나 이런 효율화 작업은 적용 전과 후의 데이터가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성과로 보여줄 수 있다.
배너는 디자이너에게는 참 애매한 구좌다. 만들어야 하는 구좌는 맞지만, 정작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모두가 기피하고 싶은 배너 작업이겠지만 피할 수 없는 작업이다. (회사에서 하라고 한다면 더더욱 피할 수 없다) 단순 작업이라 포폴에 넣기도 애매하고. 참 모순이 많은 영역이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 이 피할 수 없는 단순 업무를 어떻게 하면 내 커리어 중 하나로 만들까 한다면 그 방법은 바로 [단순작업의 중심]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주변 디자이너들 말대로 배너를 만드는 것을 [배너 공장 가동한다]라고도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는데, 이 공장이 돌아가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든다고 보면 된다.
항상 외부에서 얘기할 때 [마케팅 디자인의 미래는 효율성이다]라고 얘기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효율성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배너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내가 배너 작업이 주 작업이라 여기서 어떻게 디자인을 배울지, 포폴에 넣을 수 있는 업무로 만들지 고민이라면 배너의 가이드나 시스템을 만들어서 좀 더 코어(core)에 가까운 업무를 해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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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숲을 봐야하는데 쉽지 않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