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마케팅

자, 여러분이 생수 브랜드의 마케터라고 생각해보세요. 광고 기획 하나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얼마나 깨끗한 물인지 증명하는 데이터 보여주기? 청량한 이미지의 광고 모델 섭외? 아름다운 자연을 담았다는 감성 카피 쓰기?

리퀴드 데스 마케팅
출처 = 리퀴드 데스 공식 홈페이지

리퀴드 데스(Liquid Death)는 산에서 곱게 떠온 물을 요란한 해골 무늬가 그려진 알루미늄 캔에 담아 팔았습니다. 카피는 “네 갈증을 죽여버려.(Murder Your Thirst.)” 그러고도 2018년 창업 이후 2024년 기업가치 14억 달러를 찍고, 소셜 팔로워는 1,400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대체 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1️⃣ 스마트한 아이디어는 이미 남이 하고 있다

리퀴드 데스의 창업자 마이크 세사리오의 철학은 이렇습니다. “스마트한 아이디어는 이미 남이 하고 있다. 그러니 가장 바보 같은 아이디어를 실현해 보자.”

리퀴드 데스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냥 물입니다. / 출처 = 리퀴드 데스 공식 홈페이지

실제로 생수 브랜드는 삼다수부터 에비앙에 이르기까지 모두 청정, 순수, 자연을 모티브로 삼고 광고합니다. 그런데 리퀴드 데스는 오히려 과격한 에너지 드링크나 맥주의 문법을 생수에 끌고 왔습니다.

아무리 봐도 맥주캔 같은 패키지 디자인에, 향료가 첨가된 스파클링 워터 라인업에는 “닥터 데스(Doctor Death)”, “킬러 콜라(Killer Cola)”, “스트로베리 테러(Strawberry Terror)”, “그레이브 프룻(Grave Fruit)”처럼 험악한 어감과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이런 주제에 내용물은 맑은 생수라는 아이러니함이 브랜드를 강렬하게 인식하게 만들며, 리퀴드 데스는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카테고리의 공식을 깨뜨린 겁니다.

카테고리의 공식이 곧 경쟁의 함정입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면, 반대 방향이 비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2️⃣ 광고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리퀴드 데스의 커머셜 역시 하나같이 비범합니다. 임산부가 바에서 캔을 벌컥벌컥 마시거나, 의사가 수술 중에 캔을 들이키는데 “안심하세요. 물입니다.” 같은 카피가 나옵니다.

또 한 남자가 “아이스티? 그런 건 우리 할머니나 마시는 거지”라고 했는데 백발의 할머니 데스메탈 밴드가 스크리밍을 하고 과격하게 노는 모습이 나오면서 “할머니의 에너지 드링크”라는 카피가 나오는 등, 광고라기보단 그냥 한 편의 코미디입니다.

리퀴드 데스 유튜브 커머셜
‘할머니의 에너지 드링크’=아이스티란 기발한 아이디어. / 출처 = 리퀴드 데스 공식 유튜브

리퀴드 데스의 광고는 실제로 마케팅 전문 인력이 아니라 코미디 작가가 만든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제품의 기능을 늘어놓고 포장하는 것보다는 광고 영상 그 자체를 재미있게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는 공유되고 화제를 일으키는 미디어 채널로 기능합니다.

Z세대는 광고처럼 보이는 광고를 가장 먼저 건너뜁니다.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광고를 만들 게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보고 싶어지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리퀴드 데스는 그 답을 코미디에서 찾은 거죠.

3️⃣ 관계없을수록 화제가 되는 콜라보

리퀴드 데스의 협업 파트너 목록은 더욱 가관(?)입니다.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 전설적인 스케이트보더 토니 호크, SF 영화 레벨 문 시리즈, e.l.f. 코스메틱 등 생수와는 별 상관도 없습니다.

토니 호크 블러드 보드 광고
토니 호크의 피로 만들어진 스케이트보드는 이베이에서 3000달러가 넘는 고가에 팔렸다고.. / 출처 = 리퀴드 데스 공식 홈페이지

협업 내용도 황당한데, 토니 호크의 혈액을 채취한 페인트로 칠한 한정판 스케이트보드를 팔질 않나, e.l.f. 코스메틱과 협업해서 헤비메탈 컨셉의 한정판 메이크업 세트를 내기도 했습니다.

리퀴드 데스 콜라보
e.l.f. 코스메틱과 협업해 만든 ‘Corpse Paint’ / 출처 = 리퀴드 데스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바로 이 공통점이 없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리퀴드 데스의 협업 대상은 ‘어울리는 브랜드’가 아니라 ‘이야깃거리가 되는 브랜드’입니다. 실제로 또 어떤 똘끼 어린 짓을 하는지 궁금해서 매번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가 하면, 콜라보 상품들은 매번 품절되고 SNS 등지에서 수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협업의 목적이 ‘시너지’가 아니라 ‘서프라이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조합 자체가 콘텐츠가 되고, 사람들은 그다음이 궁금해서 브랜드를 계속 팔로우하게 됩니다.

결론: 바보같은 아이디어는 바보가 아니다

리퀴드 데스의 성공은 제품 혁신이 아닙니다. 파는 것은 그냥 물이고, 좋은 물이라고는 하지만 맛이나 성분이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말하는 법’이 완전히 다르죠.

리퀴드 데스 메이크업 콜라보
출처 = 리퀴드 데스 공식 홈페이지

카테고리의 문법을 무시하고, 광고 대신 콘텐츠를 만들고, 어울리지 않는 브랜드와 손을 잡는 것.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물 브랜드’가 아닌 B급 유머와 밈이 가득한 ‘문화 브랜드’가 됐습니다. 그리고 문화가 된 브랜드는 사람들이 알아서 퍼뜨려줍니다.

마케터라면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볼 만합니다. 우리 브랜드의 광고는, 지금 카테고리의 공식을 얼마나 따르고 있나요? 리퀴드 데스는 그 질문에 가장 바보 같은 방식으로 답했고, 14억 달러짜리 정답이 됐습니다.

오늘의 소마코 콕 📌

✔️ 생수 브랜드인 리퀴드 데스는 깨끗함과 순수를 강조하는 카테고리의 공식을 의도적으로 깨뜨림으로써 ‘맥주나 에너지 드링크만큼 신나는 생수’라는 유일무이한 포지션을 차지했습니다.
✔️ 광고처럼 보이는 광고는 스킵당하는 시대입니다. 리퀴드 데스는 사람들이 스스로 보고 싶어지는, ‘제미있는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 협업의 목적이 ‘시너지’가 아니라 ‘서프라이즈’가 될 수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조합 자체가 콘텐츠가 됩니다.

EDITOR
원더제비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반짝이는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