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앞두고 앱을 켭니다. 목적지는 이미 정했는데, 정작 검색 결과 앞에서 손가락이 멈춥니다. 비슷한 사진, 비슷한 별점, 비슷한 가격의 숙소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여행 준비에서 우리가 가장 오래 붙들려 있는 지점은 어디로 갈지가 아니라, 무엇을 고를지입니다.

여기어때가 일본 숙박 예약 플랫폼 리럭스의 인수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달부터는 여기어때 앱에서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는 물론 소도시의 숙소까지 예약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확장 소식입니다.

그런데 눈에 걸리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어때가 국내에서 쌓아온 얼굴은 특가와 가성비였습니다. 반면 사들인 회사는 고급 호텔과 리조트, 료칸만 골라 보여주는 큐레이션 플랫폼입니다. 할인으로 몸집을 키워온 회사가 왜, 할인과 정반대편에 있는 회사를 골랐을까요.

🔎 여기어때는 왜 '진출' 대신 '인수'를 택했을까

국내 숙박 앱 시장은 사용자 수 순위가 좀처럼 크게 벌어지지 않는 성숙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패키지 시장은 전통 여행사에 이커머스까지 뛰어들며 출혈 경쟁 중입니다. 국내에서 한 뼘 더 나아가는 일이 점점 비싸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어때가 눈을 돌린 일본 숙박 시장은 업계에서 한국의 6배 규모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그 시장 안에 이미 380만 명의 회원과 현지 숙소와의 계약 관계를 갖춘 플랫폼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대표 럭셔리 숙박 플랫폼 리럭스입니다.

하필 지역이 일본인 이유도 분명합니다. 한국인이 가장 자주 찾는 해외 목적지이자, 일본인에게도 한국이 그렇습니다. 수요가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 드문 관계라, 플랫폼 하나로 양방향을 다 담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료칸이라는 상징까지 있습니다. 값을 매기기 어려운 경험을 파는 숙소라, 최저가 경쟁의 언어로는 애초에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죠.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방식입니다. 한국 앱을 번역해 일본에 내보내는 대신, 일본인이 이미 쓰고 있던 앱을 통째로 사들였습니다. 신뢰는 시간이 쌓아야 만들어지는데, 그 시간을 돈으로 산 셈입니다. 그동안 한국 플랫폼의 해외 도전이 번번이 얕게 끝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문을 두드리는 대신 이미 열려 있는 문을 산 쪽이, 이번에는 훨씬 빠르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프리미엄을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

이번 인수를 몸집 불리기라고 부르면 절반만 설명하는 셈입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중저가 중심에서 프리미엄 중심으로의 이동입니다.

국내 OTA 시장은 할인 쿠폰과 마케팅비를 쏟아부어야 겨우 사용자를 붙잡는 구조입니다. 반면 하이엔드 숙박 시장은 객단가가 높고 한번 신뢰를 얻은 고객이 오래 남습니다. 같은 예약 한 건이라도 남는 돈의 크기가 다릅니다.

다만 여기서 프리미엄을 비싼 숙소라는 뜻으로만 읽으면 절반만 본 겁니다. 하이엔드 시장에서 고객이 지불하는 것은 시설의 등급이 아니라 검증에 대한 값입니다. 누군가 먼저 확인해두었다는 사실, 그래서 내가 실패를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 프리미엄은 가격표가 아니라 신뢰의 설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거래는 몸집을 키우는 확장이 아니라, 버는 방식을 바꾸는 전환입니다. 저가 경쟁은 이기더라도 이익이 얇습니다. 링 밖으로 나가는 쪽이 때로는 더 남는 싸움입니다.

💡 최저가 다음의 경쟁은 덜어내기입니다

여기어때는 리럭스가 취급하는 일본 하이엔드 숙소를 자사 앱에 공급하고, 한국 여행 상품을 리럭스에 연동한다고 밝혔습니다.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를 한 구조 안에 함께 놓겠다는 뜻입니다. 한국인에게 일본 여행을 팔고, 일본인에게 한국 여행을 파는 양방향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그림입니다.

사실 여기어때에게 큐레이션은 낯선 개념이 아닙니다. 국내에는 이미 상위 1% 숙소만 추려 보여주는 '블랙'이라는 프리미엄 라인업이 있습니다. 전문 큐레이터가 현장까지 검증해 고른 숙소만 올리는 방식으로, 몇 년째 거래액을 키워온 서비스입니다. 리럭스 인수를 큐레이션의 발견이 아니라 이미 검증한 공식의 수출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숙박 플랫폼의 재고는 결국 비슷해집니다. 같은 호텔이 여러 앱에 동시에 걸리고, 가격 비교는 누구나 합니다. 모두가 같은 목록을 같은 가격에 갖게 되면 남는 차이는 단 하나, 무엇을 골라 보여주느냐입니다.

큐레이션은 보여주는 기술이 아니라 지우는 기술입니다. 여기어때가 블랙으로 국내에서 증명한 것도, 리럭스가 일본에서 오래 팔아온 것도 결국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기 실려 있는 곳이라면 적어도 실패하지는 않는다는 확신입니다.

우리가 여행에서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비싼 값이 아닙니다. 기대를 안고 문을 열었을 때 무너지는 하룻밤입니다. 더 많이 보여주는 경쟁은 이미 한계에 닿았고, 이제는 덜어내기 경쟁이 시작되는 자리라고 봐도 좋을 듯합니다. 여기어때가 리럭스를 통해 사들인 것은 380만 회원 수가 아니라, 그 회원들이 리럭스의 선택을 믿어온 시간입니다. 국내에서 블랙으로 걸린 시간을, 일본에서는 인수로 단축한 셈입니다.

📈 계단인가, 도약인가

물론 이 그림은 아직 계획서에 가깝습니다.

회원 수가 곧 거래액이 되지는 않습니다. 리럭스가 일본에서 쌓은 신뢰가 한국 상품에도 그대로 작동할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달 중순 예정된 앱 개편과 연내 숙소 연동 목표가 첫 시험대가 될 것이고, 여기어때 앱 안에서 일본 숙박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정직한 지표가 될 겁니다.

더 어려운 쪽은 시스템 연동이 아니라 정체성입니다. 특가 브랜드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야 살고, 프리미엄 브랜드는 많은 것을 걸러내야 삽니다. 하나는 문을 넓히는 일이고 하나는 문을 좁히는 일인데, 여기어때는 이제 두 문을 동시에 관리해야 합니다.

목록을 빠르게 늘리라는 압력 앞에서 골라내는 기준을 지킬 수 있는지, 저는 그 지점이 이번 인수의 진짜 승부처라고 생각합니다. 리럭스를 여기어때답게 만들면 인수의 이유가 사라지고, 여기어때를 리럭스답게 만들면 기존 고객이 낯설어집니다.

다시, 검색창 앞에서

싸게 파는 회사에서 잘 골라주는 회사로. 이 한 줄을 바꾸기 위해 여기어때는 해외 기업 한 곳을 통째로 지불했습니다. 덩치를 키운 것이 아니라, 쌓는 순서를 건너뛴 것입니다.

다만 건너뛴 순서는 언젠가 청구서로 돌아옵니다. 시간을 아낀 만큼, 그 시간에 배웠어야 할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채워 넣어야 하니까요. 골라주는 회사가 되려면 무엇을 지울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고, 그 기준은 사들일 수 없는 유일한 자산입니다.

다음 여행에서 여기어때 앱을 열었을 때, 첫 화면에 무엇이 올라와 있을까요. 숙소를 잘 골랐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 선택의 값어치도 함께 정해질 겁니다.

이미지 ⓒ여기어때컴퍼니, Rel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