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질문은 답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답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먼저 찾아냅니다. AI가 답을 내놓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능력은 결국 그 길을 정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잘하는 사람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새로운 관점의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생각을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은 사고가 단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다양한 경험이 축적된 다층적인 인지 구조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의 관점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감성과 논리, 예술과 과학, 성공과 실패의 기억을 동시에 끌어와 사고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궁금한 것이 많아지고 질문도 깊어집니다."

-92쪽, <사고외주> 중에서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질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챗GPT 등장 이전에도 질문이 중요하다는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적의 길을 찾고, 정해진 길로 가야 만 빠르게 도착할 수 있기에 돌아가고, 시간이 걸리는 질문은 피하게 되고 꺼려지는 일이다. 질문을 하는 사람이나 질문을 받는 사람도 그렇다.

그렇게 꺼려하던 질문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들도 인기를 받고 있다. 나는 언제부터 질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 봤다.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질문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교실에서는 입을 열리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밥벌이를 위해서는 질문을 해야 만 했다. 글을 쓰려면 내가 원하는 질문을 해야 하고 답을 들어야 만 했기 때문이다. 즉,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밥벌이를 할 수 없다.

처음에는 수첩에 몇 가지 해야 할 질문을 적어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 중 다음 질문을 찾아보게 되었다. 인터뷰이의 대답을 들어야 하는데, 내가 해야 할 질문만 생각이 났다. '다음 질문이 뭐지'하면서 그것 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좀 길게 답할 것으로 예상한 질문의 답은 짧았다. 내용이 풍성하지 못했다. 인터뷰이가 답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말속에서 더 물어야 할 것들을 추가로 질문하지 않고 내가 할 질문만 했다.

좋은 질문은 경청에서 나온다.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내가 묻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은 길에서 벗어난 질문이다. 교실에서의 좋은 질문은 어떤 것일까. 회사 회의 중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떠해야 할까. 가족 간에 주고받아야 할 질문의 성격은 또 어떠해야 할까. 질문의 성격은 곧, 한 사람의 인격이다.

질문하는 사람은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를 늘 고민하는 사람이다.

당연한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 '반기'를 드는 사람이다. 좋은 질문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발전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다.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과 질문의 기회를 미는 게 아니라, 내가 해야 한다. 그게 인공지능 시대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다.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홍진기 교수가 최근에 쓴 <사고외주>는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사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생각하는 인간이 질문이 만든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만들어만 달라'라고 한다면 인간 가치를 갖지 못한다.

앞으로는 어떤 세상이 될지 많은 사람들이 예측을 내놓는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유튜브 속 많은 영상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구분하며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뭔가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분위기다.

인공지능 시대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갈 일이 아니다. 생각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 인공지능에게 인간 사고를 맡기는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내놓은 답을 나의 것으로 다시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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