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New York) 타임스스퀘어(Times Square)를 처음 찾는 이들에게 거대한 LED 스크린과 네온사인은 과도한 상업주의의 상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공간을 가득 채운 빛은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말 거래 시장이던 과거부터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기까지, 타임스스퀘어 광고 미디어의 진화는 도시계획과 법, 그리고 지역 정체성을 지키려는 전략이 만든 산물이다.

현재 타임스스퀘어 일대는 원래 롱에이커 스퀘어(Longacre Square)로 불렸다. 당시 이곳은 마차와 말 거래가 활발했던 상업지구였다. 전환점은 1904년 찾아왔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소유주 아돌프 옥스(Adolf Ochs)가 신문 본사를 42번가 신축 빌딩으로 이전하자, 뉴욕시는 지역 명칭을 타임스퀘어로 변경했다.

같은 해 미국 옥외광고 업계에도 상징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광고 선구자 오제이 구드(O.J. Gude)는 광장의 독특한 나비넥타이 형태 구조가 탁월한 시야 축을 만든다고 판단했다. 그는 대형 조명 광고판인 스펙타큘러(spectacular)를 선보였고, 이는 타임스스퀘어를 빛의 거리로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

1928년에는 정적인 간판 시대를 넘어 실시간 정보 전달 시대로 진입했다. 원 타임스스퀘어(One Times Square) 외벽에는 길이 380피트 규모의 뉴스 지퍼(News Zipper)가 설치돼 주요 뉴스를 실시간으로 송출했다.

새해 전야 볼드롭(Ball Drop) 행사도 이 시기에 상징성을 갖게 됐다. 1906년 뉴욕시가 불꽃놀이를 금지하자, 1907년 처음으로 건물 상단에서 새해 공을 떨어뜨리는 행사가 시작됐다. 현재 이 볼은 5000개 이상의 크리스털과 첨단 LED 기술이 결합된 구조물로 진화했으며,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지켜보는 행사로 성장했다.

오늘날 가족 친화적 관광지 이미지와 달리, 1980년대 타임스스퀘어는 범죄와 성인 유흥업소가 밀집한 지역이었다. 변화는 1986년 에드 코치(Ed Koch) 뉴욕시장 재임 시절 시작됐다. 시 당국은 성인 업소를 정비하고 지역을 재생하기 위한 도시계획 규제를 도입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규제가 광고판을 단순히 허용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의무화했다는 점이다. 대형 전광판과 조명 간판이 타임스스퀘어 고유의 역사적 분위기를 유지할 뿐 아니라 거리 조도를 높여 범죄 예방 효과까지 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1년 개정된 도시계획 규정 역시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브로드웨이(Broadway)와 7번가 인접 신축 건물은 일정 비율 이상의 조명 간판을 설치해야 한다. 일부 구간에서는 도로 접면 1피트당 50제곱피트 규모의 간판 면적 확보가 요구된다. 이 때문에 메리어트 마퀴스(Marriott Marquis), 쓰리 타임스스퀘어(Three Times Square) 등 현대 건물들은 1만~2만5000제곱피트에 달하는 초대형 스크린을 갖추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전통적인 이미지 옥외광고 매체가 고해상도 LED 스크린으로 빠르게 대체됐다. 과거 상징물이던 컵누들(Cup of Noodles) 증기 연출 간판 등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대신 광장 전체 스크린을 동시에 연동하는 디지털 시대가 열렸다.

대표 사례가 미드나이트 모먼트(Midnight Moment)다. 매일 자정, 타임스스퀘어 대형 스크린들이 동시에 예술 작품이나 공익 메시지를 송출하는 프로젝트로, 상업 광고 공간이 공공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현재 원 타임스스퀘어는 약 5억5000만 달러를 투입한 대규모 리노베이션이 진행 중이다. 향후 21세기형 방문자 센터와 박물관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지난 75년간 내부 공간은 상당 기간 비어 있었지만, 외벽 광고 구조물만으로도 뉴욕의 상징 역할을 해왔다.

타임스스퀘어의 광고판은 단순한 상업 매체가 아니다. 이는 법으로 보호받는 도시 정체성이자 역사 보존 장치다. 맨해튼(Manhattan)의 가장 밝은 공간을 지키기 위해, 타임스스퀘어는 오늘도 스크린의 빛으로 도시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