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포츠 중계 화면을 보면 다양한 방법으로 광고가 송출되고 있다. 경기장 펜스를 따라 돌아가는 LED 광고도 있고, 실제 경기장에는 없지만 중계 화면에만 그래픽으로 덧입혀지는 가상광고도 있다. 일반적인 이런 방식을 벗어나 올해 칸 라이언즈 옥외 부문 그랑프리상을 받은 메르카도 리브레의 ‘Field Barcode’ 사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 사례가 특별한 점은 광고를 보고, 기억하고, 나중에 검색해서 찾아 들어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경기를 보다가 바로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게 했다는 점과, 새로운 매체를 더하지 않고 이미 있던 경기장 잔디를 매체로 바꿨다는 점이다.

1. 이름을 사면 보통 하는 일

Spotify Camp Nou

네이밍 라이츠는 경기장 같은 시설에 기업이나 브랜드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이다. 2022년 스포티파이가 FC 바르셀로나와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1957년부터 써온 홈구장 캄프 누에 처음으로 기업 이름이 붙어 ‘스포티파이 캄프 누’가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권리를 사면 잘 드러나는 곳에 잘 드러나게 메시지를 담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기장 입구와 외벽에 이름을 걸고, 중계 캐스터가 그 이름을 부르게 한다.

메르카도 리브레도 2024년 상파울루 파카엠부 경기장의 네이밍 라이츠를 확보했다. 경기장 이름은 ‘메르카도 리브레 아레나 파카엠부’가 됐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이야기다.

2. 더하지 않고, 조금 고친다

그런데 이 사례는 잘 보이지 않게 보이는데도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고, 기존 자원의 기능을 해치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경기장 잔디를 광고판으로 바꿨다는 점이 다르다. 새로운 것을 더하기보다 이미 있는 것을 최소한으로 수정해서 우리가 원하는 기능을 보태는 시도를 한 것이다.

Mercado Libre

무대는 재개장한 파카엠부에서 열린 코린치안스와 보카 주니어스의 경기였다. 2012년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을 재현한 이 경기에서, 대행사 GUT 상파울루는 잔디를 밝은 줄과 어두운 줄로 번갈아 깎아 폭 104m의 바코드를 만들었다. 선수들은 평소처럼 그 위에서 뛰었다. 잔디는 경기면이라는 원래 기능을 잃지 않고, 하나의 일을 더 맡았다.

3. 잔디의 속성을 읽다

앰비언트 미디어를 활용함에 중요한 것은 환경 속 사물 자체의 기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해당 자원의 속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잔디 깎기의 속성을 잘 생각해보면 깎는 방향, 길이, 주기를 검토해볼 수 있다. 실제로 잔디는 깎는 방향만 바꿔도 기존 잔디의 기능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시각적인 명암 차이를 구현할 수 있다. 같은 잔디라도 눕는 방향에 따라 빛을 다르게 반사하기 때문이다. 경기장 잔디의 줄무늬가 바로 이 원리로 만들어진다.

stock 1791788129222 u799lp

잔디 자체가 미디어가 되게 하는 시도는 매체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매체를 발견한다는 관점에서 정말 창의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건물 외벽에 메시지를 띄우기 위해 사무실 창문의 불을 켜고 끄는 것을 이용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게다가 잔디는 피할 수 없는 매체다. 사람들은 펜스 광고에서는 시선을 돌릴 수 있지만, 공을 따라가는 시선은 반드시 잔디를 지나간다. 필연적으로 시선이 머무는 곳에 메시지를 배치한 것이다.

4. 이름만 산 게 아니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산 것은 이름인데, 잔디를 바꿀 권리까지 있었을까. 실제 계약 내용을 보면 답이 보인다. 메르카도 리브레가 경기장 운영사와 맺은 계약은 최장 30년, 10억 헤알이 넘을 수 있는 규모로, 단지 간판에 이름을 거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에서의 브랜드 노출과 미디어 공간까지 포함한 파트너십이었다. 잔디 패턴까지 계약서에 적혀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행 과정에 법무팀이 참여하고 잔디 관리 인력과 함께 작업했다는 점에서 운영사와 협의된 범위 안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즉 이름을 거는 권리를 쓰면서 그 공간을 매체로 운영하는 것까지 한 것이다. 단순히 자신들이 매입한 권리 안에 포함된 미디어 공간까지 활용할 생각을 한 것이다. 돈을 내고 산 노출을,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매체처럼 쓴 셈이다. 만약 계약서에 명문화된 것만을 생각했다면 이 잔디를 매체로 운영해볼 생각조차도 못했을 수도 있다.

5. 설명 대신 기호

우리 일상생활에서 바코드와 QR코드는 널리 사용되는 매체 중의 하나임을 생각하면 굳이 별도의 안내 없이도 사용자들은 자연스럽게 스캔해보고 싶게 된다. 디자인에서는 이런 성질을 어포던스라고 부른다. 사물의 생김새가 “이렇게 쓰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문에 달린 손잡이를 보면 당기고, 납작한 판이 붙어 있으면 민다. 쿠폰에 그어진 점선을 보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 선을 따라 자른다.

stock 1791788322337 2tajyg

우리가 웹사이트를 만들 때에도 열심히 설명한 다음에는 고객의 동작을 유도하는 CTA 버튼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다. 이 연결고리를 보다 강하게 매어두는 역할을 어포던스가 한다. 버튼이 눌릴 것처럼 보여야 사람들이 누르듯, 잔디 위의 바코드는 찍힐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었다. 게다가 바코드는 상품과 계산, 구매를 떠올리게 하는 기호다. 이커머스 브랜드에 이보다 잘 맞는 기호를 찾기는 어렵다.

다만 실제로는 전용 웹앱으로 스캔해야 하는 추가 장치가 있었다고 하니 이 부분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6. 숫자가 말해주는 것

바코드가 실제로 읽히게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다. 중계 화면은 경기장 전체를 한 번에 비추지 않고 카메라 각도도 계속 바뀐다. 그래서 거의 모든 중계 각도에서, 일부만 화면에 잡혀도 스캔되도록 설계했다. TV든 디즈니+든 유튜브든, 시청자는 화면 속 잔디를 비추면 25% 할인 쿠폰을 받았다.

기술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만큼 바로 쉽게 작동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브랜드 발표 기준 쿠폰 5만 3천 건 이상 사용, 매출 150만 유로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는 보고를 감안하면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것임에 틀림없다. 기술의 부족함을 짚어내기보다는 그들이 이러한 방향의 아이디어를 실행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어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7. 이미 있는 것에 두 번째 일을

우리 모두 축구장의 잔디에 바코드를 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자 이미 가진 것은 있다. 매장이라면 바닥과 계산대, 영수증, 쇼핑백이 있다. 제조업이라면 납품 박스와 설명서, 배송 차량이 있다. 서비스 기업이라면 대기 화면, 알림 메시지, 고객센터 연결음이 있다. 이것들은 이미 고객의 눈과 귀를 지나가고 있지만, 대부분 한 가지 일만 하고 있다.

가장 좋은 자원은 이미 있는 자원이다. 그리고 이미 있는 자원을 조금만 수정해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