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대행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업무는 제안서 작성 업무다. 제안서를 작성할 때만큼은 외부의 개입이 최소화되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제안서 작성 업무를 반기지는 않는다. 제안서를 작성할 때는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디자인이다. 디자인에 대한 부담감으로 제안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동료들을 볼 때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디자인에 대해 막막해하는 직원들은 대체로 구미에 딱 맞는 탐플렛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상 그 어디에도 완벽한 탐플렛은 없다. 브랜드의 이미지와 부합하면서 구조적으로도 완벽한 탐플렛을 원한다면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편이 빠르다.
어도비 툴을 못 다루는데 어떻게 디자인을 해?
실제 작업 사례 1
물론 일러스트나 포토샵 같은 디자인 툴을 다룰 수 있다면 제안서를 디자인할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 툴을 다루지 못한다고 제안서 디자인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레이아웃과 색상 조합에 대한 레퍼런스만 충분히 수집해도 웬만한 탐플렛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 그것이 편집 디자인의 힘이다.
필자는 색감에 대한 타고난 센스가 전혀 없는 사람으로 학부 시절 PPT를 작성해야 할 일만 생기면 벌벌 떨었다. 아무리 내용이 훌륭하고 알차도 포장지가 별 볼 일 없으면 형편없는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서 유독 매거진의 레이아웃을 차용하는 일이 많았다. 타고난 색감이 없으니 무채색 위주의 색감을 활용하되 배치를 완벽하게 하면 쓸만한 디자인이 나오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기술적으로 화려하고 색감이 통통 튀지 않더라도 매력적인 문서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당시 완성했던 작업물들은 그야말로 미니멀했는데,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레이아웃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후에는 색채학 강의도 수강해 보고 여러 가지 레퍼런스들도 찾아보았지만, 아무리 색조합을 암기해도 감각 있는 사람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대안이 색조합 사이트다. 몇 년간 어도비 컬러 사이트를 즐겨찾기에 추가하고 어도비를 밥먹듯이 사용하다 보니 미니멀하지 않은 디자인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 작업 사례 2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필자가 여전히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컬러 사용을 최소화하고 여백을 주면 집중도와 전달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안서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회사 내부에서 제안서를 컨펌하다 보면 파워포인트 디자인에 대해 조언을 해주어야 할 일이 종종 있는데 그럴 때 아래와 같은 레퍼토리를 종종 써먹는다.
1) 동일한 회사의 제안서는 유사한 흐름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아 구조를 차용할 수 있으니 내부에서 잘 만든 제안서를 찾아봐라(내부에서 레퍼런스를 찾을 수 없다면 편집 디자인 레이아웃을 서칭 해보기를 추천!)
2) 제안서의 컬러를 정하기 어렵다면 브랜드 컬러와 톤을 맞추거나 색상조합사이트를 적극 활용해라
3) 한 페이지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페이지를 쪼개 도식화해라
4) 핵심 내용을 강조하고 싶다면 도형 위에 키워드를 배치하는 형태도 좋다
5) 전체 문서의 일관성을 고려해 페이지별 레이아웃을 정하자
디자인을 해본 경험이 전무하거나 전문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제안서 디자인에 대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제안서를 디자인할 때 꼭 디자인 툴이나 스킬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제안서 디자인의 포인트는 일관성과 구조, 컬러의 조합, 내용의 간결성에 있으므로 편집 디자인의 힘을 빌어 미니멀한 디자인을 구현하면 퀄리티 높은 제안서를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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