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멸종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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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시간에, 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오피스’또는 ‘워크플레이스’ 또는 ‘사무실’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주어진 과업을 해내는 “회사” 또는 “기업”. Corporate이니 우리나라 말로는 “기업”이 맞겠다 아무튼, 기업 구성원들이 오피스에 모여서 업무를 한 것은 산업 혁명 즈음부터라고 한다. 18세기 후반부터이니, 늦게 잡아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200년 넘게 이런 형태로 사람들은 기업에서 일을 해 온 것이다. 

2024년인 지금, 200년 동안 유지해 온 이런 형태의 기업, 즉 정해진 곳에 모여서 계약에 의해 정해진 업무를 한다는 것이 과연 지금도 유효한 형태일지 반문해 본다. 

19세기에는 아마도 (그리고 20세기까지도) 모여서 일정 시간 동안 같은 태스크로 분업해서 업무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이었을 것이다. 차를 가공해서 유통하는 회사라면, 모여서 이번 달에 어디서 수확한 차를 어얼마나 가공할지 계획하는 사람, 그 차를 담을 용기를 만들고 제작하는 사람, 차 판매량을 예측하고 재고관리를 하는 사람 등등이 모여서 일을 하면, 맡은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그전 사람이 해줘야 하는 일 (가령, 차 용기를 만들려면 차 가공 담당자가 어떤 차를 만들 것인지를 알려줘야 그에 맞춘 용기를 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용기 제작자가 어떤 용기를 만들지를 결정해야 판매 담당자는 그 용기 사이즈와 디자인에 따라 판매량과 유통 방법을 정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한 일을 그다음 사람에게 언제 어떻게 전달해 줄지를 논의하는 데에 용이했을 것이다. 

(이렇게 업무들이 연결되어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을 밸류 체인 value chain이라고 한다. 혹시 경제학 박사님이 반박 시 그분 말씀이 맞음) 

그런데 이 밸류 체인이라는 것이 사실, 산업혁명이나 1차, 2차, 3차 지식 산업 때까지는 유효했던 것 같다. 자동차를 만드는 것도, 컴튜터를 만드는 것도, 치약을 만드는 것도, 호텔의 서비스 매뉴얼을 짜는 것도, 일의 “순서” 그리고 그 일들의 “담당자”가 명확해야 성과가 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특이점이 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4차 산업 혁명이라는 것이 현실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일 수도 있고, 어쩌면 코로나라는 세계적 팬데믹이 내재되어 있던 특이점을 발현시킨 것일 수도 있고, OKR 이 KPI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일 수도 있고, 개개인의 뚜렷한 역할이나 KPI 보다는 융합하면서 일하는 것을 지향하는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들이 되면서 자본주의를 이끄는 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부터일 수도 있겠다. (역시, 경제학이나 인문학 박사님들이 반박 시 그분들 말씀이 전적으로 맞음) 

네 일 내 일 따지지 않고, 조직의 비전과 공동의 성공, 그리고 공동의 성장을 위해 ‘융합’하여 일한다는 것. 그리고 딱딱한 큐비클에서 넥타이 매지 않고 빈백에서 눕듯이 앉아서 자유롭게 토의하며 일한다는 것. 참으로 이상적으로 들린다. 그리고 그런 ‘모델’을 employer branding에 활용하는 기업들이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생겨나면서 젊은 인재들을 많이 끌어들이기도 했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기업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유수의 기업들이 직원 복지를 위해 채택하고 있는 직원 도움 프로그램 – EAP (Employee Assistance Program)는 언제부터인가 심리 상담이 가장 많은 포션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 중 약하게나마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겪어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네 일 내 일 따지지 않다 보니, 모든 일이 내 일이 되어 나만 호구가 된 것 같고. 

조직의 비전과 공동의 성공, 성장을 위해 융합하여 일하다 보니, 일은 내가 하는데 비전만 외치는 옆동료나 윗사람만 더 성공 (승진)하고. 

자유롭게 토의하며 일하다 보니, 나는 자유롭게 내 의견을 개진했을 뿐인데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진다는 피드백으로 회사에서 낙인이 찍히고. 

와중에 실리콘 밸리의 많은 기업들은 불경기와 AI의 등장으로 인원감축까지 하고 있으니, ‘경계 없는 업무’ 중 살아남을 일자리에는 수면 아래에서 불을 켜고 내부 경쟁을 해야 하는 판국이다. 

그런가 하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정통 기업들은 정해진 업무 역할과 KPI, 밸류 체인을 위한 프로세스에서 벗어나야 젊은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혁신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늬뿐인 혁신 (패밀리 데이, 캐주얼 복장, 사내 카페테리아, 핫 데스크 등)만 시전 하느라 여념이 없고. 

미약한 생각이지만, 이제 하루 8시간 정해진 장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에서 소속을 갖고 주어진 태스크를 일하는 ‘기업 오피스’는 쇠퇴기에 이른 것 아닐까? 

이제는 개인이 각자의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그걸 필요로 하는 조직에 공급 (하루 8시간으로 보험을 보장받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서비스 제공자로서) 함으로써 재화를 얻어가는, 그래서 1인 멀티 잡 시대가 더 빨리 다가오지 않을까? 

이제 슬슬 은퇴 압박이 현실이 되어 가는 x세대로서, 나부터 일단 좀 심각하게 살 길을 강구해 봐야겠다. 

 산업 혁명때의 오피스.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임.

 

흔한 동북아시아의 사무실. 솔까 산업혁명 때보다 숨막혀 보임.

테크 회사들 홈피에 주로 올라 온 모습. 드러 누워 일하는 저 분 뒤엔, 저 분이 못 마땅해 째려 보는 동료나 상사가 있을 수 있음

savvy의 브런치: https://brunch.co.kr/@sunahbaek

SAV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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