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국 블로거나 글에서 자주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Entitlement. 특권 의식. 또 그분께 물어보았다. “자신이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 태도나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빅테크 붐이 산업의 판도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사무실, 대우, 일의 형태 등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고, 코로나를 지나며 더욱 가중되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다. 과거에는 FAANG (Facebook, Amazon, Apple, Netflix, Google)이었고 지금은 MAAMA (Meta, Amazon, Alphabet, Microsoft, Alphabet)으로 대변되는 빅테크 회사들은, 그 이전 굴뚝 산업이나 기간산업, 나름 트렌디하고 힙함의 첨병이었던 FMCG (다국적 소비재 기업들)에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2000-201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의 인재들을 끌어들였다.
신입 연봉 6 digit부터 시작(즉, 20여 년 전에 대졸 초임 연봉이 1억이 넘었던 것이다), 근무 시간 정해져 있지 않음, 웬만한 사립대학 카페테리아보다 훨씬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갖춘 (게다 DEI를 위해 할랄 푸드, 비건, 베지테리안 메뉴 등은 기본) 카페테리아, 직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둔다고 말만 해왔던 구시대 회사들 대신 쿨하게 회사 내에 열어 놓은 최첨단 기구의 짐 (24시간 사용 가능), 어디서 얼마나 일하든 성과만 내면 상관하지 않는 성과 보상 체계, 구시대 회사들에선 평생 회사 다녀도 얼굴 한번 보기 힘든 CEO (아니 창업자) 들이 매주, 또는 매월 전 직원을 모아 놓고 회사의 경영 상황에 대해 투명하게 공유하고 모든 질문에 응답하는 올핸즈.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접”을 받는 데 익숙해진 젊은 인재들.
인재들은 그런데, 대부분 어릴 때부터 인재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이기 마련이다. 학업이든, 어느 한 분야에서의 비상함이든. 그렇게 빅테크의 붐이 일면서 구시대 회사들은 적어도 외형이라도 이런 빅테크를 따라 가려하거나 (자율 복장이라고 쓰고, 엘땡 그룹의 경우 해지스를, 삼땡 그룹의 경우 빈폴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교복 아닌 교복인 것이 촌극이지만 – 대기업들에선 1960년대생 “아재”임원들에게 자율복장을 경우에 어긋나지 않게 입는 법에 대해서 돈 들여 외부 강사 초청 강의까지 한다고 한다), 적어도 “기업 문화”라는 것이 교장 선생님 훈시하듯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걸 조금씩은 깨달아 가고 있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 중 하나라고 하겠다.
그런데, 코로나를 지나며 이런 빅테크들도 창업 20주년들을 넘겨 가며, 회사의 방향성을 피봇팅 하는 곳도 생겼고 규모를 줄이거나 생산성에 좀 더 포커스를 두는 곳들이 생겨났다. 주식 시장에서도 미래 가치보다는 당장의 성과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나는 파이낸스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전지구적으로 인간에게 불가항력인 전염병 창궐을 겪고 나니 다들 “현타”가 왔기 때문 아닐까.
그러니 아무리 빅테크인들, 힙쟁이 똑쟁이들이 그득한 곳인들 어쩌겠다, 긴축 경영을 할 수밖에. 복지를 줄이거나, 연봉 인상을 동결하거나, RSU 금액을 줄이거나.
이렇게 “구시대” 긴축이 다가 오자 희한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전엔 “회사가 어려우니 우리 모두 함께 허리띠를 졸라맬 때” 라며 혹시나 잘릴까 전전긍긍 회사일을 더 열심히 해 왔던 개미들은 온데간데없고 (아니 아직 구시대 회사들에 남아 있고), “아니 나처럼 특별하고 똑똑한 사람에게 이런 취급을 하다니” “긴축 경영 같은 건 경영진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나는 충분히 특별 대접을 받을 특권이 있는 사람이니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니 회사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남들과 다르고, 특별하고, 소중하니” 본인 기대 이하의 대접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인 것이다. 훌륭한 교육 환경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들이 이런 계급주의적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다니. 그런데 어쩌면 이건 바로 그 교육이 문제였던 것 아닐까 싶다.
나만큼 타인도 소중한 사람이고,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학교 교육일진대. 노력만으로 살아지지는 않는 세상. 불확실한 것이 점점 늘어가는 세상. 너는 외부 자극에 취약한 예민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부추기는 마케팅 (MBTI도 조직관리로 시작한 개념이지만 이젠 마케팅의 기본이 되어 버렸다)의 세상에서, 어쩌면 “나는 그냥 남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패배자인 것처럼 낙인찍는 사회가, 또 그런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닐까.
유행하는 책마다, 블로그마다, 육아 지침서마다 “특별한 우리 아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라는 존재” “너의 취향은 너만의 것”을 주입시키는. “모두가 특별하다고 아우성치는 시대”가 되어 버린 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어쩌면 우린 참 이중잣대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재벌 3세와 할리우드 연예인들의 마약은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런가 보다”하고 너그럽게 넘어가지만, 우리나라 연예인들의 대마초는 대중이 용서해 줄 때까지의 자숙 기간을 거쳐야 하고. 남자 연예인들의 성추문은 얼렁뚱땅 넘어가 주지만 (‘역시 본업을 잘하니 그 정도 잘못은 용서해 주는군’), 여자 연예인들은 라방에서 위인 이름만 헷갈려도 본업 복귀가 불가해지고. sky 나와서 강남 살면서 부모님도 좋은 대학 나오고 대기업이나 알아주는 외국계 회사 다니면서 외제차를 몰면 갓생이지만, 한 푼 두 푼 살뜰히 모아서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드림카를 겨우 장만한 흙수저에겐 분수를 모른다는 수군거림이 쏟아지고.
나는 정치는 왼쪽도 오른쪽도 다 싫지만. 강남, 분당 등은 다 오른쪽이고 또 그 지역구 정치인들은 부자인 것이 당연하지만, 나머지 지역구는 다 왼쪽이고 그 지역구 정치인들이 알만한 옷 입으면 저격하는 이중 잣대도 너무 이상하다.
나는 특별하기 때문에 좋은 곳에 살면서 좋은 음식 먹고 좋은 곳에 여행 가고 운동하고 그러면서도 의식 있게 유니세프 후원도 하고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글도 쓰면서 음악도 듣는 것이 당연하지만.
너는 가난하게 태어나서 가난한 사람들을 지지하고 나처럼 좋은 대학도 나오지 못했으니 좋은 곳에 살거나 좋은 음식을 먹거나 좋은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그런 이상한 특권의식.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누가 당신을 그렇게 특별하다고 했는가? 당신도 그냥 수많은 80억 인구 중 하나일 뿐이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이상 오래간만에 쓰는 오늘의 평범한 생각 끝. 새해 복도 평범하게 받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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