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들지만 늙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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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기쯤 되면, 21세기는 최초로 개인의 목소리들이 개별로 인식되고 인터넷망을 타고 실시간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때로 기록되지 않을까. 지금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개인들이 브런치에, 블로그에, 개인 SNS에, 댓글에, 쇼츠에, 라이브에 글을 통해, 영상을 통해 본인의 생각과 인생, 주장을 펼치고 있을까. 80억 개의 목소리와 생각들이 (물론 실제로는 그것보다 적겠지요 – 시적 허용입니다) 누가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지금도 인터넷 공간에 펼쳐지고 있을까. 하긴 나도 아주 적은 구독자 분들이 읽어 주겠지, 내 생각을 들어주겠지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 목소리를 자주 내는 데에 모두가 익숙해진 지금, 텍스트힙이 또 유행이란다. 영상보다는 글을 소비하는 것이 멋져 보인다는 트렌드. 그런데 “난 텍스트 힙해”를 전달하기 위해 그걸 찍어서 또 여러 미디어에 올리고 있으니 그 텍스트 힙은 또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내 생각을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란다면, 그 사람들의 생각은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는 걸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로 한정 지어 듣기 십상이지 않을까. 그게 편하니까. 그리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내 생각이 누군가와 다를 수도 있다는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지엽적인 생각들과의 만남을 오래 지속하다 보면, 그렇게 꼰대가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몇 살이든, 내가 가진 생각, 가치관, 습관, 행동들만이 이유가 있고 옳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의 확증적 편향을 유지하기 위해 편협된 데이터들과 프레임들만 습득하다 보면 (aka 알고리즘 추천) 어느새 우리는 트루먼쇼의 트루먼처럼, 내가 만든 작은 알고리즘에 갇힌 편협한 고집쟁이 노인의 사고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대가 10대이든, 20대이든, 30대이든.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세대 간, 집단 간 갈등이 폭발하던 적이 있었던가. 몇천 년 역사의 종교 전쟁은 내가 믿는 신을 부정하는 다른 집단과의 갈등이었지만. 여전히 그 종교갈등도 해소되지 않은 채 정치적 신념, 성적 지향성, 재산의 크기, 유명세의 크기, 성별, 라이프 스타일, 학벌은 물론 취미로도 너와 나를 가르고 이해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중년인 내 주위는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골프 라운딩을 나가 보았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는 왠지 동년배 친구들에게서 서서히 배제되고 있는 느낌이다. 정작 나는 별로 개의치 않지만, 골프를 즐기지 않는 나를 딱하게 여기는 주변의 시선들 – 아니 나이 들어 골프도 안치고 어쩌려고 그래-의 시선이 신경이 안 쓰이진 않는다) 

오늘 글의 제목은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으려면 인데,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알량한 생각은 이렇다. 중년이 되어 몸의 하드웨어는 옛날 기종일지라도 (아무리 식단 관리에 유산소 근력운동 해도 잘 관리해 봐야 아이폰 10 정도의 하드웨어), OS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예전 하드웨어 관리와 달리, 요즘 스마트폰의 OS는 알아서 최신 기능들을 탑재해 주고 필요 없는 기능들을 deprecate 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마음만 먹는다면, (여기서의 마음은 “내 생각이 틀렸을 수 있어” “내 생각이 낡았을 수 있어”이다) 나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나와 다른 사람들을 얼마든지 포용하고 같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 종교가 다르고 국적이 다르고 교육 배경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성적 지향이 달라도 얼마든지 서로 존중하며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내 생각도 일장춘몽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협력보다는 경쟁을 택한다고 어느 작가가 말했는데, 요즘처럼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자원이 점점 한정적으로 되어 간다면 서로 차지하기 위해 배타적인 가치관이 더 각광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히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만” 잘 살아보자. 이런 생각들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퍼지고 있다는 생각에 가끔 숨이 막힌다. 


이상 오늘의 가슴 답답한 생각 끝. 

SAVVY의 브런치 스토리: https://brunch.co.kr/@sunahb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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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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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324
    · 2025-02-05 at 14:08

    오랜만에 글 너무 반가워요~!! 선생님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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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VY

마케팅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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