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서 국산차 브랜드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국산차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얘기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체 이 브랜드의 디자인 철학이 뭐야?”
포르쉐 카이엔 2세대와 3세대의 디자인 비교 | 포르쉐는 디자인 변경이 거의 없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오토트리뷴)
외제차 브랜드에 비해서 국산차 브랜드가 아무래도 페이스리프트의 주기가 짧고 그럴 때마다 차의 디자인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의견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인데요. 다행히도(?) 이런 부정적 여론의 잣대를 매번 피해 가는 국산차 브랜드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제네시스입니다.
저 역시도 제네시스의 디자인을 참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결의 디자인이어서 호감이 가는 게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그보다 먼저 이 브랜드의 디자인에 호감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Hyundai Motor Company
제네시스는 원래 세단만 운용하는 브랜드였지만 더 많은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SUV(GV80)를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GV80을 발표하는 현장에서 제네시스는 브랜드 디자인을 리브랜딩 했는데요. 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제네시스를 볼 때마다 이날의 리브랜딩 PT가 떠오릅니다.
발표회 당시 기대 이상의 유려한 디자인을 가진 GV80의 외관도 놀라웠지만, 그 외관에 대해서 루크 동커볼케(Luc Donckerwolke | 발표회 당시 현대자동차 그룹 디자인 최고 책임자&부사장이었으나 현재는 사임한 상태)가 프레젠테이션 하면서 강조한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디자인이 곧 브랜드’라는 자신의 철학을 역설하기 위해서 독특한 디자인의 코카콜라 병은 전 세계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형체만 봐도 코카콜라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며 제법 긴 서론을 늘어놓고는 본론에서 아주 강력한 한 방을 날렸습니다.
이제 앞으로 언제나 두 줄을 보게 되면 제네시스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GV80 이후 출시된 G80 페이스리프트도 두 줄이 선명하게 각인됐다 (©️Hyundai Motor Company)
그가 생각한 제네시스의 아이덴티티는 ‘두 줄’이었습니다. 그 강력한 한 방과 함께 발표회 현장의 거대한 스크린에서 GV80의 모습이 보여졌고 이내 전조등, 방향지시등, 후미등까지 유려하게 이어지는 두 개의 직선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습니다. 그 모습은 앞서 청중에게 극찬하며 보여줬던 코카콜라 병만큼 직관적이고 명료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러한 발표회의 임팩트 덕분인지 몰라도, 이후로는 루크 동커볼케의 단언대로 두 줄을 보면 제네시스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마치 세 줄을 보면 아디다스가, 네 줄을 보면 톰브라운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죠.
디자인이 브랜드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끔은 이처럼 압도적인 디자인이 브랜드의 멱살을 잡고 더 높은 영역으로 끌고 가기도 합니다. 디자인은 특히나 브랜드의 여러 속성들 중에서도 고객들에게 가장 잘 보여지며 손에 잡히는 물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브랜드 철학과 잘 맞으면서도, 대중의 눈에 잘 띄고, 그것이 일관성을 가졌을 때의 힘은 매우 강력하죠. 제네시스의 ‘두 줄’은 그 모범 사례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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