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황제의 ‘디즈니’ 재건 스토리

‘군주론’을 통해 본 ‘밥 아이거’의 리더십
2024-04-24

[연재 주] 넷플릭스 리드 헤이스팅스의 여정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닮았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연출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괴테의 파우스트일지 모르고, 오징어 게임은 현실에 펼쳐진 단테의 지옥이다. OTT는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를 창조했다. 누군가에는 멋진 신세계지만 누군가에게는 실낙원인 이곳. 이 경계의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 작품, 브랜드를 약 20주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매주 2편의 신작과 명작 추천은 별책부록이다. 부디 이 책이 플랫폼의 타율을 올리고, 제작사의 구종을 늘리고, 창작자의 구위를 높이는 작업이 되기를. 그리고 모든 시청자에게 시간의 자유가 함께 하기를. 

*댓글로 리뷰를 올려주신 분들 중 추첨을 통해 넷플릭스 ‘삼체 토크살롱’ 초대권을 드립니다.

  • 프롤로그
  • 방송국 사장이 된 기상캐스터  
  • 동화왕국을 구한 인수합병의 달인  
  • 폭스, 팬데믹 그리고 OTT 전쟁의 발발  
  • 정치적 올바름 vs 즐거움을 주는 일  
  • 밥의 리더십은 ‘OTT’에서도 통할까?  
  • 에필로그  

프롤로그

시민을 살해하고, 친구를 배신하고, 기만하고, 냉혹하며, 교리를 어기는 것은 능력이라고 칭할 수 없다. 군주는 이런 식으로 권력을 얻을 수는 있지만, 결코 영광은 얻을 수 없다. 군주론 中

‘군주론(The Prince, 君主論)’은 피렌체의 정치가였던 ‘마키아벨리’가 집필한 리더의 통치 방식을 다룬 정치철학의 고전이다. 이 책은 ‘자신의 역량(virtu)’으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때론 비도덕적인 정치 행동을 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키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로버트 앨런 아이거(Robert Allen Iger, 이하 밥)’는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그룹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회장이다. 전임 리더의 여러 가지 실책으로 위기에 빠졌던 디즈니를 구해낸 해결사이자, 현재의 디즈니 제국을 완성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인수협상의 대가이자, 협상의 달인이다. 

밥 아이거(좌)와 마이클 아이스너(우)

방송국 사장이 된 기상캐스터

밥은 흙수저 출신이다. 1951년 뉴욕 롱아일랜드 노동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많은 사람이 그렇듯 그도 어려서부터 일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고, 이서카 대학을 졸업한 후 케이블 방송국의 기상캐스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1974년 ABC 방송국에서 드라마 제작부 스태프로 현장 경력을 쌓는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업무였지만 제작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배울 수 있는 자리였다. 덕분에 나는 업계 전문용어에 숙달했고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의 면면을 파악했다. 어쩌면 그때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제작에 수반되는 까다로운 요구사항들을 즉각 해결하는 법과 극한의 업무량을 견뎌내는 법이 아닐까 싶다. 그때 익힌 근면함은 지금까지도 내 든든한 자본이다. 디즈니만이 하는 것 中

밥은 사회성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입사 15년 후 ABC 엔터테인먼트의 대표가 되었고 초고속 승진을 거듭, 41세에 ABC 방송국의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운명의 1996년, 디즈니가 ABC를 인수하면서 회장으로 승진한다. 그리고 2000년 1월, 마이클 아이스너가 디즈니의 회장에 오를 때, 사장으로 동행한다. 

나는 큰 그림과 세부사항을 동시에 보고, 여러 요소들이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까지 파악해 내는 마이클 아이스너의 능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세부사항을 통제하는 경영은 사실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고 나도 그의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일의 성패가 종종 세부사항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 위대함은 매우 작은 것들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늘 강조했고, 내가 그 사실을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도왔다. 디즈니만이 하는 것 中

그러나 둘의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3년은 디즈니 창립 100주년이었다.

동화왕국을 구한 인수합병의 달인

2005년 아이스너 회장이 물러나고, 밥은 디즈니의 6번째 대표가 된다. 그의 취임 일성은 “디즈니는 큰 위기에 처해있다”는 현실 직시였다. 이후  ‘픽사(2006)’ ‘마블 엔터테인먼트(2009)’ ‘루카스필름(2012)’을 차례대로 인수하고, 홍콩과 상하이에 디즈니랜드를 개장하며 디즈니를 엔터테인먼트 왕국으로 부활시킨다. 

픽사와 마블, 루카스필름의 인수를 돌이켜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 회사들 덕분에 디즈니의 혁신이 가능했다는 점 외에도 각각의 협상이 단 한 명의 지배적 존재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최종적인 계약의 성사 여부는 매번 인간적인 요소에 좌우되었다. 

스티브는 픽사의 본질을 존중하겠다는 나의 약속을 신뢰해야 했다. 아이크는 마블 팀이 가치를 인정받고 새로운 조직 안에서 발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자 했다. 그리고 조지에게는 자신의 유산이, 자신의 ‘어린 자식’이 디즈니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디즈니만이 하는 것 中

밥은 16년간 마법 같은 기적을 이룬다.

밥이 취임하던 2005년, 디즈니의 순이익은 25억 달러였다. 14년 후, 디즈니의 순이익은 126억 달러로 404% 증가했고, 주가도 2005년 25달러에서 2019년 140달러로 450%나 수직상승했다. 특히 영화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 338억 달러 이상을 기록하며, 디즈니의 재무적 성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마법은 영원하지 않았다.

디즈니 플러스는 방황 중이다.

폭스, 팬데믹 그리고 OTT 전쟁의 발발

밥은 재임 기간 두 차례 계약을 연장했다. 마지막 연장은 ‘폭스(20th Century Studios)’ 인수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2021년 12월 31일, 마침내 밥은 ‘밥 체이펙’에게 후임을 맡기고 퇴임한다. 하지만 11개월 후, 체이펙이 이사회에 해고되며 다시 디즈니로 복귀한다. 

문제는 ‘폭스’와 ‘디즈니+’의 부진이었다.

밥이 퇴임 직전 엄청난 거액으로 인수한 ‘폭스’는 계륵이 되어 있었다. 디즈니는 폭스 인수 직후 부채가 급격히 늘어나며 재정이 크게 흔들렸고, 2019년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출시한 디즈니 플러스 또한 대규모 적자 행진을 기록하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까지 찾아온다. 

다시 최악의 위기가 도래한다.

돌아온 밥은 과감하게 개혁을 감행했다.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약 7000명의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침체에 빠진 마블 엔터테인먼트 주요 임직원들을 해임했으며, 2006년부터 마블 스튜디오의 VFX를 총괄한 ‘케빈 파이기’의 파트너 ‘빅토리아 알폰소’ 또한 퇴출시켰다. 이제 밥은 스트리밍 사업의 수익성 제고에 골몰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스스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군주는 선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필연성에 따라 선을 사용할 수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도록 배워야 한다. 군주론 中

인어공주는 PC 논란을 일으켰다.

정치적 올바름 vs 즐거움을 주는 일

현재 밥의 적은 ‘돈’만이 아니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PC는 인종, 민족, 언어, 종교, 성별 등 모든 종류의 편견에서 벗어나자는 움직임이다. 최근 디즈니의 작품 중 ‘인어공주’와 ‘마블 시리즈’ 등은 지나친 ‘PC주의’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밥은 PC의 옹호자였다.

그는 ‘인어공주’ 실사 영화 개봉 당시 “디즈니의 힘을 증명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표명했다. 과거에도 “디즈니는 다양성을 포용할 줄 아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여러 번 주장했고, 특히 자신의 책을 통해 마블의 ‘블랙 팬서’가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라며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했다.

그러나 수익성이 악화되었다.

디즈니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뮬란’ ‘인어공주(2023)’ ‘버즈 라이트이어’ ‘백설공주(2025)’ 등에 연이어 맥락 없는 ‘PC주의’를 추가하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영화들은 밥의 복귀 후에 개봉했고, 대부분 흥행에 참패하며 경영 악화로 이어졌다. 결국 밥은 이전의 스탠스를 과감하게 던져버린다.

디즈니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최우선 목표가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과 재미다. 관객들의 즐거움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제작해야지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잘못됐다. 앞으론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 밥 아이거 CNBC 인터뷰 中

밥 아이거의 마법은 다시 통할까?

밥의 리더십은 ‘OTT’에서도 통할까?

밥은 일찌감치 스트리밍 시대를 준비했다. 그는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를 만나 인수합병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리고 ‘Time Warner’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역시 실패했고, 대신 ‘21세기 폭스’를 710억 달러에 인수했다. 그렇게 2019년 11월 ‘디즈니+(이하 플러스)’가 탄생한다.

플러스는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 지오그래픽’ ‘STAR’ 등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IP가 결합된 OTT 플랫폼이다. 현재 7500편 이상의 TV 시리즈와 500편 이상의 영화, 그리고 다양한 오리지널 작품들이 제공되고 있으며, 구독자는 약 1억 5천만 명이다. 

하지만 플러스는 매년 1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2021년 런칭한 한국의 경우, 약 200만 명의 가입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주요 플랫폼 중 ‘왓챠’를 제외하고 꼴찌다. 팬데믹 이후 ‘카지노’ ‘무빙’ 등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잠시 히트하긴 했지만, 큰 경영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플러스는 2024년 6월부터 미국에서 수익성 개선을 위해 계정 공유 단속에 들어간다. 9월부터는 전 세계 모든 국가로 단속을 확대할 예정이다. 밥은 “플러스는 계속해서 적자를 내고 있지만, 회사는 곧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넷플릭스보다 7개월이나 늦은 결정이었다.

밥의 마법은 이번에도 통할까?

인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상속 재산의 손실보다 더 빨리 잊어버린다. 군주론 中

월트 디즈니의 미디어 전략 메모

에필로그

1957년,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디즈니의 창업자 ‘월트 디즈니(Walt Disney)’는 하나의 메모를 남긴다. 그는 거대해진 디즈니 그룹의 영화, 애니메이션, 테마파크, 텔레비전, 머천다이징, 음악, 출판, 만화 등 다양한 사업모델 간의 관계를 작은 메모지 한 장에 정리했다. 

디즈니의 본질은 크리에이티브다.

월트 디즈니의 철학처럼 디즈니는 창의력에서 출발한 브랜드다. 디즈니의 상상력은 생쥐와 오리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로 만들었고, 수많은 어른들을 환상의 나라로 인도했으며, 우주적 상상을 수억 명이 보는 영화로 재창조했다. 하지만 지금의 디즈니는 돈으로 도배됐다.

돈보다 상상력의 회복이 먼저다.

밥은 디즈니를 되살린 군주였다. 그가 없었다면 디즈니는 20년 전에 침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후계구도를 만드는 일에 실패했고, 결국 스스로 복귀했다. 밥은 지금 회사의 재무적 다이어트를 진행 중이다. 이제 상상력 충만한 콘텐츠가 나와야 한다. 아쉽지만 그는 크리에이터가 아니다.

모른다면 다시 배워야 한다.

밥은 스포츠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두 회사의 조직문화는 전혀 달랐다. 할리우드는 자유분방하면서 직감적인 사고가 필수였다. 밥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직원들의 조언을 구했고, 디즈니의 회장이 될 수 있었다. 이제 누구에게 배워야 할까?

서비스는 해답을 알고 있다.

플러스의 한국 런칭 당시 ‘그레이 아나토미’의 한국어 자막은 엉망진창이었다. 경어와 반말을 혼용하고 번역이 힘든 대사를 자막에서 삭제하는 등 글로벌 서비스다운 품격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2023년 한국 OTT 팀을 해체하고 성과와 비용에만 집착하면서 현지화에 철저히 실패했다.

세계의 시청자에게 고결함을.

밥은 2021년 회장에서 물러나며 “개인의 성공은 행운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세상이 하는 말을 지나치게 믿지 말고 스스로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결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디즈니는 품격을 잃고 방황 중이다. 밥의 새로운 마법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강력한 사람은 ‘스토리텔러’다. 제품이나 기술보다 이야기가 사람들을 움직이고 영감을 부여한다. 스토리텔러는 감정의 연결고리를 형성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 밥과 디즈니에 필요한 힘은 100년 전 월트 디즈니가 설계한 이야기라는 강력한 마법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최선의 요새는 인민들에게 증오를 받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당신이 요새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인민이 당신에게 증오심을 갖고 있다면 요새는 당신을 구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력 봉기를 한 인민들을 도우러 올 외국인들은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주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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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우정은 20년간 기획자로 활동했으며, 2018년 통찰력 상담소 ‘생각식당’을 개업하고, <기획자의 생각식당>을 출간하며 교보문고 오늘의 책에 선정되었다. 한국영화감독협회 춘사국제영화제 총감독으로 일했고, 현재 글로벌 PR그룹 한국지사 수석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최근 통찰을 배우고 영감을 나누는 커뮤니티, 인사이트 클럽을 시작했다. 인사이트 클럽은 커넥트 살롱으로 함께 통찰력을 키우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는 휴리스틱 프롬프팅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직관의 힘과 영감을 활용하는 방법을 탐구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행동경제학과 연결되어 있으며,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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