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교토에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갔던 장소는 일본정원이었다. 다른 장소들은 많이 가지 않았다. 교토에 간 이유는 단순했다. 도쿄브랜드들이 공간을 만들 때 사용하는 원칙이나, 미학들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인양품의 미니멀한 디자인이나 이세탄 백화점의 세련된 공간 구성 같은 것들 말이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갈색을 공간에 많이 사용했다. 그 갈색이 만드는 공간의 세밀함이 한국과는 확실히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압도하는 갈색이 아니었다. 주변을 고요하게 만드는 차분한 분위기를 만드는 갈색이라고 할까? 교토와 도쿄 모두 분위기를 만드는 도구로 갈색을 다채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교토의 료칸에서는 목재의 자연스러운 갈색이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고, 도쿄의 현대적인 카페에서는 갈색 가죽 소파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교토정원들은 갈색을 다채롭게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원마다 중심을 잡는 색은 언제나 갈색이었다. 진한갈색에서 연한 갈색까지, 교토정원에서도 갈색은 공간을 이끄는 힘이었다. 예를 들어, 료안지의 돌정원에서는 모래의 연한 갈색이 돌과 조화를 이루며 명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교토정원을 제외하고 이 갈색을 유독 가장 잘 사용한 브랜드는 어디일까?’
흥미롭게도 그 답은 스타벅스였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타벅스 닌넨자카점은 갈색의 사용이 실로 대단했다. 옛 교토의 상점건물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그 안에서 갈색을 부드럽게 사용해 교토정서를 ‘스타벅스 브랜드’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목조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갈색 가죽 소파와 나무 테이블을 배치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뤄냈다.
정작 스타벅스가 대단하다고 느낀 건 일본특유의 고요한 갈색을 스타벅스의 공간에 잘 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질문을 한 가지 더 던졌다. 스타벅스가 일본특유의 고요한 분위기를 릴 수 있는 건 ‘교토’였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교토이기에 일본정서가 스타벅스 매장에 녹아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도쿄의 스타벅스는 갈색보다는 스타벅스가 추구하는 안정적인 공간경험에 더 집중할 거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 교토에서 느낀 그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스타벅스 긴자에 있었다. 2019년 스타벅스매장에서 스타벅스 리저브매장으로 리모델링했던 스타벅스 리저브 긴자 마로니에거리점이었다. 2023년에 다시 방문했을 때도, 2024년 4월에 방문했을 때도 공간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는 스타벅스가 일본의 지역성을 존중하면서도 자사의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는 일관된 전략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랜드에게 조명은 브랜드 감도를 키우는 도구다.
스타벅스 마로니에 거리 긴자, 이곳을 일반적인 리저브매장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이곳은 글로벌 브랜드가 로컬정서를 만들기 위해 조명을 어떤 방식으로 응용하기 알려주는 교과서다. 스타벅스 리저브 긴자 마로니에거리점은 긴자의 화려한 분위기를 스타벅스만의 감각으로 표현한 공간인데, 이 분위기는 철저히 조명이 만든다.
무엇보다도 다른 매장과 다르게 스타벅스는 마로니에 긴자점에서 조명을 굉장히 극단적으로 사용했다. 직원들이 음료를 만드는 바코너와 손님들이 앉는 카페좌석 쪽의 빛설계가 완전히 다르다. 이러한 대비는 공간에 역동성을 부여하면서도 각 영역의 기능을 명확히 구분한다.
일단 직원들이 상주하는 바코너부터 보자. 스타벅스는 바코너 천장에 동그란 전구색조명을 호롱불 같이 일렬로 설치했다. 이렇게 설치된 조명은 매장 안을 아늑하게 만드는 건 물론이거니와, 조명 하나하나의 빛들이 주변으로 산란되면서 고급스러우면서도 몽환스러운 느낌을 연출한다. 마치 매장 자체가 저녁 무렵 긴자거리를 느낌을 고스란히 옮긴 느낌이다. 화려하지만 돋보이지 않는 느낌. 돋보이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 긴자만의 감도를 스타벅스를 천장 조명을 통해 연출한다.
그렇지만 이건 마로니에거리 긴자점 바코너 부분에만 해당된다. 주변으로 퍼지는 빛이 바코너의 바, 금속 장비, 검은색 기계들과 만나 반사하거나 흡수되면서 코너 전체에 몽환적인 느낌을 배가시킨다. 이는 마치 긴자의 네온사인이 밤거리에 반사되는 모습을 연상시키며, 도시의 세련됨을 인테리어로 가져온 듯한 효과를 준다.
바 건너편 좌석들. 손님들이 앉은 카페좌석은 전혀 다르다. 카페좌석 쪽은 창가좌석을 제외한 천장은 전부 노출콘크리트다. 노출 콘크리트벽에 검은색 레일조명을 설치해 어두우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만들었다. 하지만 레일조명은 빛을 수직 또는 대각선으로만 비출수 있다. 당연히 카페좌석에서 벽은 상대적으로 많이 어둡다. 스타벅스는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매장안쪽 벽에 원형조명을 추가로 설치해 빛이 주변으로 퍼지도록 했다.
이렇게 만든 조명은 카페공간에 두 가지 빛을 만든다. 직각으로 떨어지는 빛과 벽에서 퍼지는 빛. 이 두가지가 스타벅스 안에 어두우면서도 그림자가 풍성한 아늑한 공간감을 만들고, 바코너의 몽환적이면서도 화려한 빛과 어울리면서 마로니에긴자점만의 분위기를 만든다. 이는 마치 긴자의 밤거리를 걸으며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빛의 층위를 한 공간에 담아낸 듯한 효과를 준다.
이러한 분위기연출이 가능한 이유는 이곳이 스타벅스 리저브매장이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리저브매장은 일반 스타벅스매장과 다르다. 스타벅스의 브랜드색인 녹색이 없다. 스타벅스의 세이렌로고대신 ‘R’이라는 로고만 있다. 스타벅스 리저브매장은 검은색, 진한 갈색, 갈색을 많이 사용하고, 굿즈도 무광블랙과 금속제품이 많다. 이는 리저브 매장이 추구하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반 스타벅스매장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집중한다면 스타벅스 리저브 트는 편안하면서도 다소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집중한다. 마로니에거리 긴자점에서도 2층 바와 빵코너 옆의 굿즈코너를 보면 바코너의 산란되는 조명이스타벅스 리저브의 굿즈들과 만나 무게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무광 블랙 텀블러나 금속 재질의 커피 용품들이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시에 이러한 분위기 자체가 스타벅스 리저브만의 느낌을 만든다. 오히려 이곳에 사용한 가구들은 일반스타벅스 매장과 동일하며 큰 특징이 없다. 이는 스타벅스가 조명만으로도 브랜드의 분위기를 확실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스타벅스 리저브마로니에 거리긴자점의 공간디자인은 조명으로 시작해 조명으로 끝난다고 해도 무관하다. 조명이 브랜드의 정체성과 지역의 특성을 동시에 표현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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