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무렵 한 마케팅 강연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연사 분이 저에게 직무를 물어보시기에 SEO 컨설팅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그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SEO? 그거 구글 가이드라인 따라서 하라는 대로만 하고 콘텐츠 많이 발행하면 끝나는거 아니에요? 컨설팅이 필요한가?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SEO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분도 아마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이라기보다는 그런 ‘목적 없는 SEO’를 생각하고 무심코 뱉은 말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 순간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자기반성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저 또한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콘텐츠를 많이 발행하고, 노출과 유입이라는 숫자만 많이 찍히면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거라구요.
요즘 SEO 업계에서는 AI가 최대 화두입니다. 물론 AI가 중요하지 않은 업계가 어디 있겠냐만은, 지금은 SEO 분야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극단적인 몇몇(특히, 과거부터 꾸준히 SEO에 몸담았던 전문가들)은 ‘새로운 방법론으로의 GEO는 허상이며 SEO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고, 또 다른 극단의 몇몇은 ‘자칭 SEO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더이상 믿지 마’라며 LLM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SEO라는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 생각의 끝에는 결국 내가 지금까지 하고 있었던 일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일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단순히 구글의 검색결과 맨 위에 내 콘텐츠가 노출되거나 우리 웹사이트에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다고 있다는 성적표만으로는 가치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설명하려면 표면적인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찾는 것은 곧 내 일의 목적을 거꾸로 생각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 의문 없이 해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의심하는, 일종의 자기부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I가 산업을 말 그대로 폭격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왜’를 고민하는 것, 그리고 방어기제를 버리고 유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로클릭 때문에 트래픽이 줄었다고 불평을 하는 게 아니라, 그렇다면 지금까지 유입되던 트래픽이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던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검색량이 높은 키워드를 찾아서 블로그 콘텐츠를 만들어내던 것이 비즈니스에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 진짜 가치가 있는 ‘숫자’였던 건지 말이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콘텐츠 상위노출 자체에만 집착하는 게 아니라 진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야 합니다. 진화하는 검색엔진이 보여 주는 결과들을 읽고 소비자의 의도를 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적화’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