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빨 vs 실속 사회생활에서 레떼루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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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1. 

A: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김땡땡이라고 합니다. 

B: 아 네 반갑습니다. 우와 좋은 회사 다니시네요. 직장인들에겐 꿈의 직장 아닌가요. 

A: 아휴 뭘요 그렇지도 않아요, 회사가 다 똑같죠 뭐. 

B; (쳇 잘난 척은 그래도 부럽다. 저기 연봉 진짜 높다던데) 

A: (역시.. 명함 하나로 바로 기선 제압이 되는군. 오늘도 회사 뽕이 차오른다) 

상황 2. 

나: 이번에 이직했어!  

친구: 어 축하해! 명함 줘봐. 응? 여긴 뭐 하는 데야? 

나: 아 여기 스타트업인데, AI를 주로 다루는 B2B 회사야. 

친구: 아 그렇구나… 스타트업이라 그런지 우리 나이에도 시니어 매니저 주는 거구나? 

나: (아니거든… 네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회사 코스닥에선 이미 난리 났거든) 아 하. 하. 하. 그.. 그렇지 뭐. 

”회사” “직장”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사람들의 직장에 대한 가치관도 다양화되면서, 예전처럼 천편일률적인 “최고의 직장”이란 개념이 희석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효한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기업 1위” 또는 블라인드에서 회사 장점 중 하나로 아마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내용일 “사람들에게 굳이 어떤 회사라고 설명할 필요 없음” “부모님이 좋아하심”이라는 조건들.

아마도 이 조건에 가장 많이 부합하는 ”명함 빨” 좀 사는 회사들은 한국 대기업이지만 세계를 무대로 하는 곳들 (삼성, 엘지, 현대 등) 이거나 글로벌 빅테크 회사들 (예전엔 FANG이었다면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시장의 뉴 스타 엔비디아?), 또는 그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나 브랜드의 이름만 말해도 다 아는 곳들 (나이키, 애플, 코카콜라, 디즈니 등?) 이 아닐까. 

전통 기업들이야 굳이 employer branding (고용주로서의 조직을 브랜딩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미 다들 알고 있는 회사이고 브랜드이니) 21세기 들어 빅테크들이 승승장구하면서 자유롭게 일하고 최고의 인재들만 채용한다는 회사들의 컬처와 일하는 방식들 (출퇴근 시간 따로 없음. 임원 방 따로 없음. 노 페이퍼 오피스 등등)이 알려지면서 예전처럼 단순히 회사 자체가 크고 잘 나가고 연봉이 높은 것보다는 (이것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방식과 문화의 매력도 회사의 인지도뿐 아니라 부러움도 (우와 저기 다니는 사람들 좋겠다) 및 추천도 (우리 회사 너무 좋고 자랑스러워서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새지만, 이런 ”우리 회사 뽕”을 채워 주는 방식도 한국 대기업들과 외국 대기업 또는 오래된 회사들, 그리고 외국계 빅테크 회사들이 각각 다른 것 같다. 

한국 대기업들은 “삼성맨” “엘지맨” “현대맨” (가만, 이 “맨”도 다분히 차별적 표현인데 요즘은 설마 이런 표현 안 쓰겠지?) 같은 예전 (제발 예전이길 바란다) 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요즘은 경력직도 많이 뽑지만 아직도 대규모 공채를 통해서 선발한 젊은 직원들에게 각 회사의 인재상과 비전을 신입사원 연수 등을 통해 “교육”하고 ‘주입”하는 것이 큰 것 같다. (한국 대기업을 안 다녀봐서 모르기 때문에 한국 대기업 다니시는 분들이 반박 시 그분들 말씀이 맞음) 약간 학교의 연장선상 같은 느낌이다. 명문대에 가면 주변에서 치켜세워주고 과잠이나 학교 축제들에서 막 뽕이 채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외국계 대기업이나 오래된 회사들엔 이런 “대규모 공채” 개념이 거의 없지만 소비재 회사들 (피앤지, 유니레버 등)은 한 때는 신입들을 많이 뽑아서 그 회사에 맞는 인재로 키워낸 적도 있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확실치 않다) 이런 곳에서는 회사의 비전이나 회사 사가 (아예 회사 노래라는 것의 개념 자체가 없다) 등을 가르치고 주입하는 것보다는, 각 부서의 가능적 역량을 초반에 교육하는 데에 주력한다. 학교 같은 느낌은 비슷한데, 뭔가 대학원이나 연구 중심 학교 같은 느낌이다. 회사에서 교육을 제공하지만 따라가는 것은 직원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들만 살아남기? 때문에 여기서 자연스럽게 동료의식과 주인의식, 그리고 회사 뽕도 생기는 것 같다. (나 좀 일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 같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야! 이런 느낌) 

외국계 빅테크들은 위 둘의 조합인 것 같다. 입사하면 예쁜 회사 굿즈들 (그 회사를 다녀야만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뭔가 신분 증명 같은 느낌)과 함께 세련된 오피스 (핫 데스크이고, 인체 공학적 가구들로 무장)와 자유로운 복장의 하지만 똑똑해 보이는 동료들, 그리고 세련된 빈백이나 부스에 앉아서 각자의 맥북으로 일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보며 “아 나도 이제 저런 사람들과 한 배를 탔구나”라는 뽕이 자연스럽게 차오르는 것이다! 

어쨌건, 이렇게 “유명한” 회사의 명함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면 (누군가의 범주: 거래처, 동창들, 데이트 상대들, 친척들 등등) 뿌듯해지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명함 빨”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그런데 이렇게 명함이 주는 달콤한 바운더리 안에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명함과 한 몸이 되기도 쉬운 것 같다.

주말이나 휴가 때에도 회사 관련한 안 좋은 뉴스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분개하거나 불안해하는 것은 기본이고, 회사가 잘 되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보기엔 회사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회사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과는 얼굴을 붉히며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일들 말이다.

옆 부서 사람과 싸워서 평생 척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자랑스러운 회사를 위해서 그런 것이고, 회사에 도움이 안 되는 그런 사람과는 당연히 척을 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조금 더 일찍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또는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곳에 일찍 헌신한 사람들도 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우리 회사가 뭐 하는 곳인지 한참을 설명해야 하지만, 회사의 미래를 철저히 파악했고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하고 무엇보다 스톡 옵션을 두둑이 받았으니 우선은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정말 회사가 엑싯 대박을 터트려서 제대로 실속을 챙기는 사람들 말이다. 

또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는 그다지 명함 빨이 없더라도 완벽한 워라밸에 100% 에너지를 쏟지 않더라도 ”제2의 월급” 또는 “내 이름으로 내 것으로 할 수 있는 무엇인가”에 에너지를 잘 분배하는 사람들도 있다.

퇴근 후 동영상 크리에이터로 돈을 번다든지,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해서 스터디 카페나 무인점포를 운영한다든지, 주식이나 경매 공부를 열심히 한다든지. 이렇게 알차게 시간 자원을 활용하면서 FIRE (Financially Independent Retire Early)를 이룬 사람들 말이다. (동료 중에 FIRE에 성공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의 현재 링트인 프로필은 happily retired living in Hawaii로 되어 있다. 제일 부럽다) 

어느 쪽이 더 좋다, 이런 판단은 각자가 하는 것이다. 

나는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사회 초년생 때는 “명함 빨”이 멋있어 보였고 순풍처럼 나를 밀어줄 것 같았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그 “명함”은 결국 주인이 주인 대신 마당 잘 쓸어 보라고 멋지게 만들어 준 명함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내 명함이 멋있고 마당을 기깔나게 잘 쓸어도, 다른 작은 마당이라도 사서 내 것으로 만들지 않는 한, 나는 마당 잘 쓰는 기술을 가진 사람일 뿐. 

마당이라도 엄청 잘 쓰면 늙어 거동이 좀 힘들어도 거두어 주는 작은 마당 주인들도 있을까? 슬픈 상상이고 가망 없는 바람인 것 같다. 

이상 오늘의 슬픈 넋두리 끝. 

”” 커버 이미지와 이 사진은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의 유명한 명함 장면이다. 남의 명함이 내 것보다 멋져서 살인을 하는 명함의 노예 싸이코.
 
SAVVY의 브런치 스토리: https://brunch.co.kr/@sunahb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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