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부일체, 벗 상사-선생 불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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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부일체 (君師父一體). 그렇다 임금과 스승과 어버이는 같은 존재이니, 이 존재들을 모두 존경하고 섬기며 그들에게 배움을 얻으라는 공자 싸부의 말씀이다. (다른 얘기인데, 군사부일체를 챗지피티에게 물어봤더니 완전히 딴 소리를 한다. 태생이 미국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싶지만 월 22,000원이나 받으면서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해당 사항 없는 임금님 빼고, 스승은 어버이와 같은 정도의 존경을 드리고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었건만, 요즘의 뉴스를 보면 스승도 교육 서비스 제공자라고 여기는 세태인걸 보면, 스승은 어버이와 같은 레벨이라는 것이 이젠 더 이상 인정되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왠지 슬픈 건 기분 탓일까요) 

그럼 예나 지금이나 어버이 – 부모님들께 기대하는 가르침, 인생의 꿀팁, 조언 이런 건 어떤 것일까. 시대가 바뀌어도 자식을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부모이고 (요즘은 그렇지 않은 부모들이 기사에 종종 나오지만 예전에도 그런 인간 타이틀 붙이기조차 아까운 말종들은 있었을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분들이 부모님이니 그분들의 조언은 100% 믿을 만하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우리는 부모님들의 선제적 조언에는 ‘잔소리 필터’를 디폴트로 끼워서 듣는 희한한 시스템을 가진 관계로 한 귀로 흘려버린다. 부모님들에게서 꿀팁을 듣고 싶다면 이 잔소리 필터부터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비록 요즘은 존경은커녕 ‘우리 애 잘 봐줘야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고금을 막론하고 스승의 존재는 한 인간의 성장에 너무나 중요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 지도자들은 생존 당시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제자들의 “스승”이었고, 어떠한 업적이든 이룬 사람들은 늘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스승”의 존재를 얘기한다.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 주위엔 그런 스승들이 많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많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지금은 어떤 스승에게 어떤 가르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시급하게 조언과 가르침, 치트키 전수가 필요한 건 사회생활인데 말이다. 

그래서 우린 찾아 헤맨다. 스승처럼 터놓고 상담할 수 있는 상대, 나의 성장을 지지해 주고 지켜봐 줄 상대, 내가 뻘짓을 하고 있을 때 진심으로 일침을 주고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주는 상대, 회사에서 바보같이 이용당하고 평가 절하당하고 있을 때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을 상대. 

아무래도 주변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선배’일 것이다. 나보다 1년에서 2-3년 정도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잘 이해하는 사람. 같이 상사인 부장님 욕을 해도 왠지 안전할 것만 같은 사람. 무슨 일이 생겨도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은 사람. 

그래서 내 속에 있는 걸 다 뒤집어 보여 주고, 고민을 말하곤 하지. 술의 힘을 빌던, 커피챗 시간을 갖던. 그러다 호되게 뒤통수 당하고 나면 (뭐 뒤통수 종류는 다양하다. 말 부풀려서 전하기. 부장님께 고자질하면서 본인만 빠져나가기. 나의 공을 가로채기 등등) 현타가 오면서 나는 회사 생활이 안 맞아. 나 다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해. 나를 찾아 떠나야 해 하며 인도로 스페인으로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뭐 그런 힘 빠지는 경험들, 다들 있으리라. 


그럼, 상사 (또는 매니저 – 선배와는 다르게 나의 인사고과를 책임지는 사람)에게 이런 가르침을 기대할 순 없을까? 물론 할 수 있다. 상사의 중요 kpi 중 하나는 팀원들 (바로 당신 포함)의 성장과 커리어 개발이기 때문이다. 그. 런. 데.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나의 성장에 대한 조언, 가르침 등을 구할 때 스승에게 기대하는 내용과 상사에게 기대하는 내용은 달라야 한다. 

그 이유는 2 문장 전에 있다. 상사도 나처럼 조직의 구성원이고 (오너가 아닌 이상), 나는 그 사람에게 ‘지금’ ‘내 책임’이 주어진 팀원들 중 한명일뿐인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스승이나 부모처럼 내가 모르는 나, 내가 노력하지 않는 나에 대해선 상사는 알 수도 없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일단 회사에서 나의 성과 및 포지셔닝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선생님들께 물어보듯이 막연히 “저는 미적분이 너무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식의 질문을 하면 안 된다. 

“저는 프레젠테이션이 너무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이건 선생님께 많은 몫을 지우는 학생 관점의 질문이라면, 

“저는 프레젠테이션할 때 준비는 잘해놓고도 막상 발표할 때 떨려서 해야 할 말을 잊어버려요. 그러다 보니 질문을 받을 때도 질문에 대한 답보다는 외운 내용만 복기하게 되어 결과가 좋지 못한데, 준비한 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 이것이 주체적인 팀원으로서 나의 역량과 문제점을 내가 먼저 파악한 후, 상사가 도움과 조언을 줄 수 있는 부분을 명확히 해서 요청하는 관점이다. 

알잘딱깔센일 것만 같은 후배의 모습알잘딱깔센일 것만 같은 후배의 모습


오랫동안 취업 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학생들은 대학에서도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고 이렇게 자기 자신의 가능성과 역량,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법도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조직에 들어오면 이런 자기 객관화와 발전을 끊임없이 하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집에 가야 되는 것 또한 최근의 달라진 현실이다. 취업 관문을 뚫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이후 펼쳐질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주체가 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취업 관문 통과”는 축하해 주지만 그 이후엔 관심이 없다. 대학 입장에서는 졸업생 취업률 몇%의 kpi 달성률이 중요하지 그 이후는 책임져 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오늘은 비도 오고 살짝쿵 무거운 생각을 해 보았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들에게도 같이 성장하길 독려하고 함께 해 주는 상사 같은 상사가 있길 바란다. 그리고 상사에게는 상사가 해 줄 일만 기대하자. 

SAVVY의 브런치 스토리: https://brunch.co.kr/@sunahb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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