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시작하기 전에 ]


혼자 있는 사람을 좌표 평면에 그리면 점이 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점과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이어지고 쌓여 면이 된다.


면은 호모이코노미쿠스인 우리가 어울려 사는 시장이자 사회다.


사람들이 모인 거리에서는 세일즈가 이루어진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강조하듯 무언가를 파는 일, 곧 세일즈는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활개를 펴는 장은 다름 아닌 상권이다.


발달한 상권에서는 하이스트리트가 부상한다.


하이스트리트는 평범함 거리가 아니다.


넓게는 상권의 중심지를 말하고, 좁게는 카페, 레스토랑, 뷰티, 패션, 테크 브랜드가 밀집된 길을 지칭한다.


또한 플래그십 스토어, 기업 본사, 금융 기관 등이 들어선 중심 업무지구나 대형 오피스타운, 높은 소비력을 갖춘 고소득 층의 주거 지역을 아우르는 제일의 번화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흔히 회자되는 대표적 하이스트리스로 밀라노의 비아 몬테 나폴레오네, 뉴욕의 5번가, 런던의 뉴 본드 스트리트, 홍콩의 침사추이를 꼽을 수 있다.


근소한 차이지만 아성의 뉴욕 5번가를 제치고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밀라노의 비아 몬테 나폴레오네는 1 제곱미터당 연 임대료가 약 3천만 원에 육박한다.


그럼 하이 스트리트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Ⅰ. 밸류애드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


자산 가치는 소유주의 깜냥만큼 오른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 다행히 그 공부는 사법고시나 사서삼경을 읽는 것만큼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부지런히 세상 흐름을 읽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을 두는 것이 밸류애드를 위한 공부의 시작이다.


밸류애드는 상업용 부동산의 자산 가치를 향상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투자 전략이다.


흡사 2군에서 힘겹게 버티던 선수에게 투자해 메이저리그 올스타로 키워 내거나 적어도 국내 프로야구를 주름잡는 주요 인물로 만드는 것과 같다.


하이스트리트 생태계에서 밸류애드는 단순 재개발을 넘어 상권 전체의 밸류체인을 변화시키는 촉매제인데 기획자, 운용사, 투자자, 테넌트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전통 상권과 신흥 상권에서는 밸류애드가 다른 양상으로 출현한다.


즉 밸류애드의 주체와 방법에서 그 차이가 꽤 뚜렷하다.


명동, 홍대, 강남으로 집약되는 메가 하이스트리트에서는 글로벌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가 주도하는 캐피털 마켓 드리븐 밸류애드가 주를 이룬다.


이들은 연 최소 10 퍼센트 이상의 내부수익률을 목표로 단기 수익 실현에 집중한다.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수치화된 데이터가 없으면 대형 펀드 사는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않는다.


반면 성수, 한남, 도산이 대표하는 네오 하이스트리트에서는 개인 투자자나 중소 브랜드가 주도하는 인사이트 드리븐 밸류애드가 중심이 된다.


두터운 시장 데이터보다는 문화적 통찰과 트렌드 감각이 투자 결정의 중심축으로 작용하는데, 흡사 타자의 약점을 단번에 간파하는 기민한 투수의 감 같은 것이다.


네오 하이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은 축적된 데이터를 신뢰하기보다 직관이나 기호에 근거해 리테일의 성패를 예측하고, 그 판단에 따라 투자를 실행한다.


Ⅱ. 메가 하이스트리트의 밸류애드


데이터 기반의 대규모 투자


메가 하이스트리트에서는 데이터에 기반을 둔 밸류애드가 주를 이룬다.


글로벌 투자자와 자산운용사는 광범위한 시장 데이터, 임대료 추이, 인구통계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투자를 결정한다.


느낌적인 느낌에 근거한 판단은 이들 사전에 없다. 엑셀 시트에 숫자로 나타나지 않으면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직감 대신 차가운 숫자와 데이터로 승부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 단장이 선수 스카우팅에 출루율, 장타율, OPS 같은 세밀한 통계 지표를 활용한 것이 비등한 사례다.


글로벌 투자자와 자산운용사의 목표는 명확하다. 부동산의 잠재적 가치를 최대한 실현해 단기간에 높은 투자 수익률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들은 프라임 입지에 있는 노후화된 건물을 현대적 용도로 탈바꿈시켜 임대 수익과 자산 가치를 동시에 높이는 방식을 선호한다.


로또 당첨 확률이나 은행 이자율보다 훨씬 높은 내부수익률 달성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


애플과 같은 초대형 글로벌 브랜드도 하이스트리트의 가치가 데이터로 증명되지 않으면 입지 후보군으로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축적된 시간이 보증하는 상권의 역사를 신뢰하고, 보수적인 자본은 이 정통성에 반해 지갑을 연다.


한국의 애플스토에는 복합 상업 시설을 제외하고 단 네 개의 상권에 자리 잡았다.


명동 홍대 강남 그리고 가로수길이다. 가로수길은 애플스토어 1호점이 문을 연 하이스트리트의 대명사였으나 젠트리피케이션과 팬데믹 쇼크로 그 지위가 모호해져 현재 상권계의 뜨거운 감자로 회자되고 있다.


Ⅲ. 앵커


발길과 마음을 잇는 연결의 닻


리테일 업계에서 앵커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불러 모으는 물질적 비물질적 자원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어우러져 활기 넘치는 풍경을 만드는 상권에는 특정한 흡인 요소가 있다.


두산의 김택연이나 롯데의 박세웅, 메이저리그의 폴 스킨스나 타릭스쿠발 같은 스타 투수가 등판하는 날에 경기장이 만원사례를 이루를 것처럼 말이다.


앵커는 소비자 경험을 좌우하는 상권의 핵심 요소로 비즈니스 생태계의 경쟁 우위를 종종 결정짓는다.


앵커의 순기능은 트래픽을 만들어 상권에 활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앵커는 테넌트보다 랜드로드 관점에서 유의미하다.


랜드로드는 건물의 가치를 올려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한다.


트래픽은 상권과 건물 가치를 올리는 토대이자 젖줄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서 앵커의 중요성은 테넌트보다 랜드로드에게 상대적으로 절실하다.


Ⅳ. 앵커의 변화


앵커 1.0 : 전통적 판매 중심 시대


2000년대 초반,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기 전 리테일은 제품 판매와 재화의 교환을 위해 존재했다.


이 시기의 앵커 테넌트는 강력한 교섭력을 가진 대형 유통 업체인 백화점이었다.


특히 롯데백화점 잠실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현대배화점 압구정점은 유통의 절대 권력으로 이 점포들에 입점하는 것이 브랜드에게는 성공이 보장되는 무대에 올라서는 것과 같았다.


백화점 외에도 대형 쇼핑몰, 대형 마트, 그리고 CGV, 메가박스와 같은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중요한 앵커 테넌트였다.


이들은 강력한 집객력을 자랑하는 상업 시설의 얼굴이었다.


극장에 온 김에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장도 보고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에 입을 새 옷을 사는 것이 주말을 보내는 흔한 방식이기도 했다.


앵커 2.0


SPA 브랜드의 부상과 초대형 파사드의 등장


온라인 쇼핑이 일상으로 침투하자 자라, H&M, 에잇 세컨즈, 유니클로와 같은 SPA 브랜드가 새로운 형태의 앵커 테넌트로 부상했다.


이들은 제조부터 유통까지 수직적 생산 구조를 통해 빠른 상품 회전과 합리적인 가격을 무기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탄탄한 자본을 바탕으로 주요 상권의 노른자 땅을 차지한 것도 새로운 앵커로 자리한 연유 중 하나다.


한편, 리테일의 판매 기능이 축소되고 광고와 쇼룸 가능이 강화되면서 초대형 파사드가 주목받았다.


앵커 3.0


경험 보시 시대의 카테고리 킬러


현대 소비자는 제품이 아닌 스토리를 구매한다.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닌, 의미를 전달하는 브랜드가 생존한다라고 말했다.


획일화된 대량 소비에 지친 현대인은 차별화된 경험을 추구하며 자기 자신을 드러낼 공감을 찾는다.


더욱이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고, 밀레니얼세대에 이어 Z세대가 수요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리테일은 여가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모종의 놀이터 기능까지 갖게 된다.


이 시기에 카테고리 킬러라 불리는 특정 상품을 전문화한 매장이 앵커로 자리 잡았다.


카테고리 킬러형 매장은 분야 전문성과 밀도 있는 상품 구성을 바탕으로 충직한 고객을 확보한다.


나아가 디깅 소비를 겨냥한 슈퍼 카테고리 킬러도 등장했다.


디깅 소비는 특정한 취향이나 취미에 파고들어 그와 관련된 소비에 몰입하는 라이프 트렌드를 말한다.


애정을 쏟는 제품이나 브랜드를 발굴하는 적극적 소비 행태는 한정판, 플래그십의 선호로 이어진다.


특정 브랜드나 제품의 팬이 되어 브랜드 세계관과 성장 스토리까지 이해하고 소비하는 것이다.


[ 글을 마치며 ]


하이스트리트의 의미는 가장 중요한 상점이나 상권이 밀집한 지역을 말한다.


좁게 보면 시골에서는 오일장이 서는 장터가 될 것이고 예전 도시에서는 중앙 정부가 있는 시청이나 궁궐이 있는 곳이 하이스트리트가 될 것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각각의 지역마다 하이스트리트가 형성되게 되는데 높은 고층 건물이나 빌딩이 밀집한 지역, 유명한 역사적 건축물이 있는 지역 등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하이스트리트는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역사적 전통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형성이 되는 곳을 말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을 하이스트리트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이스트리트는 지역적인 이점을 중심으로 발전해 오다가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사건들과 함께 더 폭발적으로 성장을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자원이 모이게 되고 투자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더 많은 발전이 가속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이 더 활발하게 교류하게 되고 거주하게 되고 소비하게 되면서 하이스트리트는 더 유명해지고 발전하게 된다.


하이스트리트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앵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시대적인 트렌드와 흐름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면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하이스트리트가 초기에 발전하기 위해서는 호텔이나 백화점이 존재하면서 유명세를 떨쳤다.


호텔이나 백화점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모이고 유명한 사람들, 즉 그 시대의 인플루언서들이 모이는 공감이 되고 점점 더 입소문을 타고 먼 지역까지 유명해지게 된다.


이후 시대적인 변화가 생겨나면서 새로운 공간이 생기게 되는데 카카오 스토어, 애플 스토어, 디지털 플라자, 복합 영화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최근에는 더 다양한 특성을 반영한 앵커 효과를 위해서 편집숍이나 개성 있는 공간등이 집중받고 있기도 하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하이스트리트는 지속적으로 더 많은 자원을 빨아들이고 더 많은 투자를 이끌어내는 공감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싶은 내용은 하이스트리트를 면밀히 분석하다 보면 각각의 특색이 보이게 될 것이고 그 이유가 명확하게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하이스트리트를 통해서 새로운 흐름이나 물결을 볼 수도 있고 나아가 새로운 판단을 할 수 있는 경험치도 축적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참고 도서 : 서울의 하이스트리트 ( 김성순 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