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설렘보다 '복잡함과 막막함'을 먼저 마주하곤 했습니다.

수십 개의 블로그 탭을 띄우고,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검색하며 최적의 동선을 짜는 일.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별점을 비교하고, 구글맵에 핀을 꽂으며 밤을 새우는 일. 그것은 그야말로 노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고단했던 '노동의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었습니다.

BBC가 보도한 2026년 여행 트렌드는 한 가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AI가 여행의 '집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에게 가져온 것은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선, 여행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질문입니다.

가이드북 대신 생성형 AI, '1분' 만에 완성된 여행의 기적

과거의 여행 준비는 가이드북을 정독하고, 각자의 취향을 조율하느라 며칠을 소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이는 테마파크를, 부모는 미술관을, 친구는 맛집을 원할 때 이 모든 욕구를 하나의 일정표에 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여행자들은 더 이상 검색창을 헤매지 않습니다. 대신 AI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아마데우스(Amadeus)의 조사 결과처럼 여행 계획 과정에서 AI를 활용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여행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정교한 시간 설계: AI는 여행의 리듬을 이해합니다. 오전에는 체력을 요하는 명소 탐방, 오후에는 쇼핑, 저녁에는 로컬 펍 방문 등 '오전-오후-저녁'으로 쪼개진 일정을 제시합니다.

취향의 황금비율: 가장 놀라운 점은 '취향의 조율'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테마파크와 부모를 위한 사찰 투어를 적절히 배분하여, 구성원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정을 제안합니다.

과거 트립어드바이저를 며칠간 뒤져야만 얻을 수 있었던 '최적의 해답'이, 이제는 질문 한 번으로 해결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덕분에 여행자는 '정보 수집'의 피로에서 벗어나, 오직 '떠남'의 설렘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어비앤비가 예견한 '무대 뒤 스태프'의 등장

그렇다면 이 압도적인 효율성은 어디서 온 걸까요?  흥미롭게도, 이는 에어비앤비가 일찍이 예견한 전략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에어비앤비는 "AI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집사의 자리에 정확히 앉히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은 AI에게 맡기고, 확보한 자원과 에너지를 오롯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연결'의 경험을 설계하는 데 쏟아붓겠다는 전략입니다.

2026년의 여행 트렌드 역시 이 흐름을 따릅니다. 익스피디아와 부킹닷컴 같은 주요 업체들도 챗GPT 기반 도구를 도입해 여행 계획을 훨씬 쉽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실시간 번역과 모바일 체크인 기능이 더해지면서, 공항 대기나 언어 장벽 같은 기존의 필수 절차들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무마찰' 여행의 시대입니다.

결정하지 않을 자유, 그리고 다시 '연결'

효율성이 극대화되자,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일상에서 수많은 선택을 강요받는 현대인들은, 여행에서만큼은 아무것도 결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율주행 투어: 페로 제도에서는 AI가 안내하는 곳으로 이동만 하는 프로그램이 도입되었습니다. 선택권을 제한함으로써 진정한 휴식에 집중하게 돕는 것입니다.

결국 AI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완벽한 일정표'가 아니라, 그 일정을 짜느라 낭비했던 시간과 에너지의 '여백'입니다.

'장소'가 아닌 '결핍'을 진단하다

이렇게 확보된 여백 속에서, 여행자가 AI에게 던지는 질문의 깊이 또한 달라졌습니다. 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생성형 AI는 여행을 통해 욕구를 표현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틱톡에서 '발리 리조트' 같은 명사를 검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챗GPT를 통해 이렇게 묻습니다.

"어떤 여행지가 나한테 맞을까? 내 내면 상태와 가장 잘 맞는 여행지가 어디인지 알려줘."

AI는 단순한 정보 검색기가 아니라, 나의 상태를 진단하고 그에 맞는 여행을 처방하는 '상담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디로 갈까?"를 먼저 고민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는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를 먼저 질문합니다. AI는 우리보다 먼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효율성 뒤에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알고리즘 기반 추천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가장 좋은 여행지"를 AI에게 물을 때, 알고리즘은 데이터에 기반해 동일한 정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특정 인기 여행지에 수요가 집중되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을 심화시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조용히 스며드는 변화가 있습니다. 경험 자체가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AI가 그려준 매끄러운 지도만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우연히 길을 잃으며 발견하는 골목의 낭만이나, 알고리즘이 예측하지 못한 낯선 마주침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2026년, AI는 분명 가장 유능한 집사입니다. 하지만 그 집사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순간, 우리의 여행은 '나만의 서사'가 아닌 '복제된 데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기술이 주는 정답을 참고하되, 가끔은 의도적으로 그 정답을 비켜가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썸네일, 본문 이미지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