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일러스트는 나노바나나 최근 버전으로 만든 일러스트입니다. 한 3번 프롬프트를 써서 만들었어요.)
요즘 AI가 정말 대세 of 대세가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제미나이와 챗GPT의 업데이트 소식이 들려오고, 나도 모르는 생성형 AI툴이 꾸준히 생기고 있다. 해외의 IT업계에서는 AI의 영향을 받았는지 인사 구조조정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내 일을 AI가 빼앗는 것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안게 되었다. 나 역시 이 두려움에서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단순 반복작업이 많은 마케팅 디자인이 가장 먼저 AI에게 대체되지 않을까? 그럼 난 이제 뭘로 먹고살지 등등등....
나 역시 일을 하면서 AI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프로그램 사용에 대해 궁금한 점은 검색보다 제미나이 GPT에게 물어봐서 해결한다. 얼마 전에는 페이지의 키비주얼을 AI로 만들기도 했다. (물론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수정을 해야 했지만) 이번 하반기 동안 각 잡고(??) AI를 여러 개 써보고 실패도 해보면서 [앞으로 나는 AI시대에 어떻게 해야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을까]를 함께 생각해 봤다.
AI는 디자이너를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AI가 대체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이번 나노바나나 업데이트 보고 충격받은 나
디자이너들이 AI를 보고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이 뭘까? 바로 내가 며칠이 걸려서 만드는 비주얼이나 그래픽을 AI가 단 몇 분만에 만든다는 것이다. 내가 엄청나게 공들여야 하는 그래픽, 영상을 미드저니나 나노바나나는 빠르게 만들어낸다. 여기서 디자이너들은 AI들이 내 일을 뺏을까 봐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는 시각을 슬쩍 다르게 해 보자. AI가 디자이너를 압살(?)하는 기술은 바로 비주얼이나 영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근데 AI들은 비주얼을 잘 만들 뿐, 이거를 [어떤 콘셉트]으로 만들지, [어떤 규칙과 기조]로 만들지 처음부터 생각해내지 못한다.
내가 일하는 분야인 [마케팅 디자인]을 가지고 예를 들어보겠다. 마케팅 디자인은 이벤트 내용에 맞는 퀄리티 높은 비주얼을 기반으로 배너와 이벤트페이지를 만드는 일이다. 근데 이 일은 높은 퀄리티를 빠른 속도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 당연히 [이 일도 AI로 알아서 척척 하게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테스트를 진행했으나....
이 이미지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란....
이 이미지를 테스트할 당시 2025년 9-10월 즈음이었는데, 나는 이때의 테스트를 통해 [마케팅 디자인에서의 AI 도입에 일단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명확하게 얘기하면, [AI에게 브랜드별 베리에이션, 텍스트 수정 요청을 하면 알아서 적용해 주는] 테스트에 실패했다.
왜 실패했을까? 나는 아래 2가지를 실패의 주요 이유로 들었다.
첫 번째, 나는 AI가 모든 것을 다 해줄 거라 생각했다.
이미지나 영상도 뚝딱 만들어내는데, 브랜드별 컬러나 로고 베리에이션만 잘 학습시키고 데이터만 주어지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AI는 만능이 아니었고, 내가 가르쳐줘야 원하는 결과물을 내줬다. 근데 이것도 [잘 가르쳐줘야지] 내가 못 가르쳐주면 절대로 원하는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커버되지 않는 기술이 있었다.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챗GPT, 나노바나나 같은 생성형 AI가 한글을 이미지로 생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AI에게 원하는 것은 이 한글 수정을 바로 해내는 것이었는데. 이 중요한 것을 못한다니. 여기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특히나 이벤트 페이지에는 특정 폰트를 사용함으로서 브랜드 톤을 보여줬는데, 이를 AI가 그리지 못했다. 나는 이것도 AI가 충분히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그래서 실패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 내가 AI를 학습시켜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아마 처음 AI를 사용하는 디자이너들이 착각하는 사항일 것이다. AI가 결과물을 잘 만들어내려면, 내가 프롬프트를 잘 써야 한다. 근데 여기서 더 나아가서 만들어야 하는 이미지 톤이 정해져 있는 상황이라면?? 아마 그래픽 에셋을 대량생산해야 할 경우 이 그래픽 스타일을 AI에게 학습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사람이 해야 한다. 학습시키는 과정에 AI를 쓸 수 있겠지만, 학습시켜야 하는 주체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그래픽 에셋을 만들려 할 때 [토스 스타일로 만들어줘] [여기어때 스타일로 만들어줘]라고 얘기한다고 이 AI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진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들고자 하는 이벤트페이지 템플릿, 배너 템플릿을 json코드화해서 학습시키도 테스트 해봤지만 제미나이와 GPT는 잘 만들어내지 못했다. 기술의 벽도 있었겠지만 내가 AI에게 어떻게 학습시키는지 몰라서 생긴 문제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이 2가지는 내가 AI를 잘 몰라서 생긴 이유일 수도 있다. 본격적으로 AI를 업무에 사용했던 것이 2025년 하반기부터였으니까. 내가 이번 실패를 의미 있게 보는 이유는 위의 2가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AI는 모든 것을 다 해주지 않고, 결국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낸다.
올해 하반기에 들었던 2가지의 콘퍼런스에서, AI를 써본 디자이너들은 어쩔 수 없는 하이브리드 영역이 발생한다고 얘기한다. 그분들도 AI에게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맡길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단순 텍스트 수정이었다. 이 부분은 사람이 직접 작성하게끔 하고 있다고 들었다.(물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언젠가는 AI에게 맡길 수 있을지도??)
사람이 다 해오던 디자인 업무 과정에서 앞으로 AI과 사람의 역할로 나눠질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겪어온 디자인 프로세스 중에 [AI가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찾아야, 내가 앞으로도 디자이너로 쭈욱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을 기획하고, 이를 AI에게 학습시킬 줄 아는 디자이너
내가 직접 AI를 써보고, 여러 회사 디자이너들의 AI 관련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도달한 결과는 아래와 같다. 앞으로 디자이너로 꾸준히 일하려면 디자이너로서의 나(인간)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이 역할 중 하나는 [콘셉트를 기획하고 이를 AI에게 학습시키는 것]이다.
"기획은 PM이나 마케터가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는 [디자인 만드는 과정]에서의 기획을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비주얼, 그래픽, 영상을 만들 때 "이 비주얼을 어떤 콘셉트로, 어떤 스타일로 만들어야 할까"를 먼저 고민한다. 심지어 나는 이 고민을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 적도 있다. 이 고민이 바로 [디자인을 기획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들었던 토스 심플리시티에서, 토스의 그래픽을 생산하는 AI인 [토스트]를 만들기 전에 [수많은 서비스에서 사용하는 3D그래픽들 중에서, 토스다운 3D그래픽을 정의하고 설명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 과정 또한 디자인을 기획하는 단계일 것이다. 이 과정은 토스의 그래픽 코어를 정의하는 단계로, 당연히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브랜드 코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일수록 이 단계의 의미는 더욱 커진다. 사용자가 브랜드 콘셉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일관된 디자인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일관성은 다수의 디자이너가 같은 톤을 유지할 때 비로소 만들어지며, 이제는 AI 또한 이 안에 포함된다. 결국 디자인 톤과 콘셉트를 AI에게 올바르게 학습시키는 일은 여전히 사람 디자이너가 맡아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현재 LLM 방식으로 작동하는 ChatGPT나 Gemini는 프롬프트를 통해 일정 수준까지 학습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구글 AI Studio나 기타 자동화 도구에 디자인 톤과 콘셉트를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구체적인 형태의 데이터화가 필요할 수 있다.(예를 들어 배경색 사용 범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이미지나 텍스트의 규격을 어떤 기준으로 정량화할 것인지) 이러한 단계에서는 디자이너 역시 일정 수준의 개발 관련 지식을 익혀야 할 수도 있다. 앞으로의 디자이너 역할을 정의할 때, 디자인 외의 영역을 할 수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바를 글(프롬프트)로 잘 쓸 줄 아는 디자이너
위의 역할보다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은 바로 [프롬프트 잘 쓰기]다. 좀 더 확장해서 얘기하자면 내가 원하는 디자인 결과물을 글로 잘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AI에게 결과물을 얻어내려면 프롬프트를 잘 써야 한다. (이 글의 대문 일러스트를 만들 때 썼던 프롬프트)
AI를 사용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단계는 프롬프트 작성이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방향과 완성도가 크게 달라진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프롬프트를 여러 번 수정하며 AI와 대화를 이어가기도 하고, 스레드(thread)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디자인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한 프롬프트가 공유되기도 한다. 그만큼 프롬프트는 단순한 입력값이 아니라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도구의 역할을 한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많은 AI 서비스는 토큰을 소모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즉, 프롬프트를 작성할 수 있는 횟수 자체가 제한되어 있다는 의미다.(물론 이 한도는 멤버십 금액이나 요금제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GPU 사용량과도 밀접하게 관련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현재 내가 테스트 중인 피그마 Make 역시 AI 크레딧이라는 개념이 존재해 프롬프트 사용 횟수가 제한될 수 있다. 이벤트 페이지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프롬프트를 100번 넘게 사용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 사실을 인지했을 때 적잖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국 AI를 활용하는 디자이너(더 나아가 대부분의 직군)에게 중요한 것은 제한된 토큰 안에서 원하는 결과를 효율적으로 도출하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 번의 프롬프트에 요구사항을 최대한 명확하게 담아내야 하고, 생각하고 있는 바를 구조적으로 글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생각보다 프롬프트를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영어 프롬프트를 써야 하는 거 말고,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글로 설명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프롬프트를 잘 쓴다는 것은 단순히 AI를 잘 다루는 기술을 넘어,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언어화하는 역량과도 맞닿아 있다. 어쩌면 앞으로 AI를 쓰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바를 언어화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미지 생성 외에도 AI를 다방면으로 활용하는 디자이너
디자이너들이 AI에게 가장 큰 위기를 느끼는 부분은 바로 [AI의 이미지 생성 능력]입니다. 좋은 퀄리티의 이미지를 사람보다 빠르게 만드는 것. 아마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할 수 있다는 말은 대부분 이 생성형 AI를 보고 나왔을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가 이 생성형 AI에만 꽂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디자이너는 시각물을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디자인을 잘 되게 하기 위한 방법]을 찾거나, [이 디자인으로 앞으로 잘 운영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일을 하려면 생성형 AI 외에도 다른 방면으로도 AI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아마 바이브코딩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개개인이 AI를 통해 이미지나 영상을 생성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포토샵이나 피그마를 쓰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러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AI를 사용한다고 할 때, 더 확장된 일에 사용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그래야겠지??(나 역시 갈 길이 멀다...)
출처 : CONFIG 2023 - Leading through uncertainty: A design-led company - Brian Chesky
9월에 들은 오픈패스의 AI콘퍼런스에서 [에어비앤비에서 PM역할을 재정의한 이야기]를 언급한 것이 생각났다.(위의 캡처는 영상의 일부, 영상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Dkfijg7s76o) PM 역할을 없앤 것은 아니지만, 이와 관련된 직군의 역할을 아예 재정의한 것이다.
과거의 디자이너는 이미 결정된 기획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수행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 디자이너는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무엇을 만들지'를 함께 고민하는 [설계자(Architect)]로 거듭나야 합니다.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만드는 것을 넘어, 제품의 구조와 방향성을 PM과 동등한 위치에서 설계하는 핵심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영상이 나올 즈음이 2023년인데, 2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 영상이 아주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위에서 얘기하는 [수행자]의 역할은 AI가 해내고 있다. 점점 AI는 발전하고, 그에 따라 이 역할을 훨씬 더 잘 해낸다. 그러면 디자이너는 이 AI가 수행자의 역할을 잘할 수 있게 디자인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생각한다.
AI로 적잖은 충격을 받은 2025년 막바지에, 디자이너로 오래 일하고 싶은 사람의 고민은 깊어진다. 내년에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게 될까? 설계자를 넘어서 더 근본적인 것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이 설계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디자인 말고 또 어떤 역량을 가져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