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은 이세돌 기사가 알파고와 대국을 치른 지 10년이 되는 시점이다. 올 3월에는 어떤 이야기가 다시 소환될지 자연스레 기대하게 된다. 이세돌의 바둑 세계를 사실상 끝나게 한 알파고와의 대국. 혹시 다시 한번 재대국이 이뤄질 가능성은 없을까. 만약 그때 이세돌 기사가 AI와의 대국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왜 이세돌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이세돌은 당시 그 제안을 ‘흥미로운 일,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언론은 그의 승리를 점치기도 했고, 본인 역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컨디션 회복의 기회쯤으로 여겼던 알파고와의 대국. 그러나 결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다. 이길 것만 같았던 상대는 1국과 2국을 거치며 점점 두려운 존재로 바뀌었다. 그리고 3국을 패한 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어떤 길로 이어질지 알지 못한다. 한 번의 선택이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바둑이 종종 인생에 비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미리 수를 계산해 돌을 내려놓지만, 상대가 있는 게임인 만큼 그 수는 언제든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이 수를 왜 두는가?”


이세돌은 묘수를 기대하기보다, 수많은 오수를 두는 과정 속에서 정수를 쌓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태도는 바둑판 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선택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마케팅 역시 바둑과 닮아 있다.


마케터와 기획자는 사용자의 가입과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수많은 ‘묘수’를 설계한다. 그 과정에서 다크패턴과 같은 기법도 종종 활용된다. 그렇다면 다크패턴은 바둑으로 치면 정수에 해당할까. 소비자의 판단을 교묘히 흐려 일시적인 구매나 가입을 유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국 신뢰라는 더 큰 판에서 독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기획자와 마케터는 매 순간 어떤 수를 둘 것인지 고민한다. 최적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다. 오늘 둔 오수가 곧바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수 속에서 하나씩 정수를 쌓아갈 때, 비로소 다음 수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이세돌은 성공이란 그런 과정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이세돌은 바둑이 사람을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들고, 탐색하며 답을 찾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만든다고 했다.


이 점은 실제 현장에서도 확인된다. 한 어린이 그림책 앱 회사의 대표는 초기 영업을 위해 전국 도서관을 돌며 회사 소개 팸플릿을 1층에 비치해 두었다고 한다. 그날 하루를 ‘열심히 영업했다’고 느꼈지만, 회사로 걸려온 문의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 그는 방식을 바꿔 직접 사무실을 찾아가 담당 사서를 만났다.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서비스 의뢰를 받아 제품을 납품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상대가 궁금해하고 먼저 연락하게 될까. 그 질문에서 다음 수가 시작됐다.


안정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좇는 삶을 선택한 이세돌의 바둑 인생은 결국 ‘질문’ 위에 서 있다.


“우리가 실패했다는 건 그만큼 도전했다는 뜻이고, 누구보다 그 일에 대해 깊이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수없이 넘어지며 단단해졌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복기를 거듭하며 실패는 끝이 아니라 질문이 시작되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자리를 피하지 않고 마주한 사람만이 다시 수를 읽고 다음 길을 준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진리는 바둑판 밖의 삶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 200쪽, <이세돌, 인생의 수읽기>중에서


인생과 닮은 것이 어디 바둑뿐이겠는가. 사람도, 사물도, 지금 내 앞에 놓인 모든 선택 역시 또 하나의 인생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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