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요지
이 글은 마케팅 과학자 바이런 샤프(Byron Sharp)와 호주 에렌버그-바스 연구소(Ehrenberg-Bass Institute)가 정립한 카테고리 진입점(Category Entry Points, CEP) 이론을 두 양봉가의 우화로 설명합니다.
단순한 핵심 - 브랜드 성장은 제품이 가장 우월해서가 아니라,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가장 많은 구매 상황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을 때 일어납니다. 마케터의 임무는 가장 좋은 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꿀이 필요해지는 모든 문 앞에 벌통을 하나씩 놓아두는 일입니다.
이번주에는 앤스로픽의 AI 윤리 연구원 아만다 아스켈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그녀를 흉내내서 프롬프팅 하다가, 퍼소나, CEP 등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공부한 내용을 다크퍼널을 여행하는 마케터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저는 한 때 도시 양봉가이자 한국의 유일한 허니소믈리에로 활동했습니다. 뉴욕, 도쿄, 런던의 도시양봉가들 스토리에 매료되어 서울에서 양봉가로 활동했고, 그래서 양봉가의 스토리로 공부한 내용을 설명해 보았습니다.
산 아래 마을에 두 양봉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늙은 양봉가였다. 그의 벌통은 마을 어귀, 가장 오래된 아카시아 숲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꽃이 피는 시기를 정확히 맞춰 꿀을 땄고, 세 번을 여과했으며, 남쪽 도시에서 주문한 도자기 병에 담아 팔았다. 해마다 도청 품평회에서 그의 꿀은 상위에 올랐고, 그는 자기 꿀이 이 지방에서 가장 맑고 향이 깊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그랬다.
두 번째는 젊은 여자였다. 그녀의 꿀은 나쁘지는 않았으나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았다. 품평회에는 나가본 적도 없었다. 다만 그녀는 좀 비범한 방식으로 벌을 쳤다. 벌통을 한곳에 모아두지 않았던 것이다. 몇 통은 빵집 뒷마당에, 몇 통은 찻집 처마 밑에, 몇 통은 약재상 옆 공터에, 몇 통은 서낭당 뒤편에, 몇 통은 주막의 마구간 옆에, 몇 통은 서당 담벼락 너머에 놓여 있었다.

노인은 처음 그 모양을 보고 웃었다. "벌통을 저리 흩어두면 관리도 번거롭고 꿀 맛도 고르지 않을 텐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꿀은 벌통마다 맛이 조금씩 달랐고, 어느 해 어느 벌통은 아예 꿀을 내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해가 쌓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노인의 꿀은 여전히 가장 좋았으나, 팔리는 양은 늘지 않았다. 품평회 소문을 듣고 먼 길 찾아오는 호사가 몇, 병약한 자식을 둔 어머니 몇, 오래된 단골 몇 — 손님은 그 사람들이 전부였다. 반면 젊은 여자의 꿀은 해가 갈수록 더 많이 팔려 나갔다.

노인은 처음엔 가격 때문이라 여겼다. 그녀의 꿀이 조금 더 쌌다. 그래서 자기 꿀값을 낮춰 보았다. 소용이 없었다.
그다음엔 홍보가 부족해서라 여겼다. 그래서 장날마다 현수막을 내걸고, 자신의 꿀이 품평회에서 몇 번이나 입상했는지를 큼직하게 적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 가을날, 노인은 결국 그녀를 찾아가 물었다. "내 꿀이 네 꿀보다 맑고 향이 깊다는 것은 너도 알 것이다. 한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네 꿀을 먼저 집어 드느냐."
여자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이렇게 답했다.
"영감님, 내일 아침 장터에 나가시거든 사람들에게 한 가지만 물어봐 주십시오. '꿀'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노인은 다음 날 아침 장터를 돌며 물었다.
빵집 주인은 말했다. "새벽에 반죽에 꿀을 한 숟갈 두를 때요? 아, 뒷마당 벌통이지요." 찻집 노파는 말했다. "손님께 생강차 내릴 때? 처마 밑 벌통 꿀 아니면 맛이 안 납디다." 약재상은 말했다. "겨울에 목이 쉰 손님이 오시면, 저는 옆 공터 꿀을 권합니다." 서낭당 무당은 말했다. "대보름 제 지낼 적엔 뒤편 벌통 꿀이라야 합니다." 주막 주모는 말했다. "길 떠나는 손님이 누이 선물로 무얼 사 갈지 망설일 때요? 마구간 옆 꿀이 제일 먼저 입에 오르지요." 서당 훈장은 말했다. "한겨울 공부하다 아이들 기력이 떨어졌을 때? 담 너머 꿀을 한 숟갈씩 먹입니다."

노인이 깨달은 것
그는 평생 '꿀'을 두고 다투어 왔다. 가장 맑은 꿀, 가장 향기로운 꿀, 가장 뛰어난 꿀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꿀'은 품질의 순위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빵을 반죽할 때', '차를 끓일 때', '목이 아플 때', '제를 올릴 때', '선물을 살 때', '아이에게 기운을 줄 때' — 삶의 수많은 순간들에 각기 묶여 있는 이름이었다.
여자는 더 좋은 꿀을 판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삶 속, 꿀이 필요해지는 문(門)마다 그 문 앞에 벌통을 하나씩 놓아두었던 것이다. 그 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열릴 때마다, 사람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그녀의 벌통이었다.
노인은 자기 벌통을 아카시아 숲 가장 좋은 자리에 놓아두었다.
여자는 자기 벌통을 사람들의 하루 속에 놓아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