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TS 2026 현장에서 본 콘텐츠 운영의 패러다임 전환

강연자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운영’ 이었다. 슬라이드 한복판에 박혀 있던 한 줄, “AI를 쓰는 기업은 많지만, AI로 콘텐츠를 ‘운영’하는 기업만 남을 것입니다.” 강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지금 마케팅 업계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 한 줄에 압축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 몇 년간 마케팅 현장에서 ‘AI’는 거의 모든 회의의 단골 주제였다. 어떤 툴을 도입할지, 어떤 모델이 더 빠른지, 어떤 프롬프트가 잘 먹히는지. 그런데 이번 강연을 듣고 나서는 그 질문 자체가 한 세대 전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업계가 묻고 있는 질문이 ‘무엇을 도입할까’에서 ‘무엇을 통제할까’로 옮겨가는 흐름이 분명하게 읽혔다.

이 글은 행사 후기가 아니다. 마케팅 실무자의 시선에서, 지금 우리 업계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AI 시대에 마케터의 역할은 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정리해본 기록에 가깝다.


1. AI 시대, 콘텐츠 생산 전략은 왜 완전히 달라지고 있을까?

AI 슬롭(AI Slop)이 문제인 이유

피드를 한 번 천천히 내려보자. 인스타그램이든 유튜브든, 최근 노출되는 콘텐츠 중에는 ‘어디서 본 것 같은’ 영상이 부쩍 늘었다.

비슷한 비율, 비슷한 톤, 비슷한 배경음악, 비슷한 컷 전환. 이른바 AI 슬롭(AI Slop)이라 불리는, AI로 양산된 저퀄리티 콘텐츠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업계 안에서도 자주 들린다. 강연에서는 한국이 ChatGPT 유료 가입률과 AI 활용 증가 속도에서 글로벌 상위권이라는 흐름이 소개됐다.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부작용도 가장 먼저 체감하는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으로 읽혔다.

실무 입장에서 더 신경 쓰이는 건 이 흐름이 단순한 ‘피드 피로감’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성껏 만든 우리 브랜드 콘텐츠가, 비슷한 AI 영상들 사이에 묻혀 그저 한 장면으로 흘러가버린다. 시간과 비용을 들였는데 노출 한 줄로 소비되는 경험을, 최근 들어 다들 한 번씩은 해보고 있을 것이다.

슬라이드에 박혀 있던 세 개의 질문이 인상에 오래 남았다. “우리 크리에이티브는 ‘양산’인가, ‘전략적 선택’인가?” 회의실에서 한 번쯤 마주해본 듯한 질문이라, 가볍게 지나가지 않았다.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것이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닌 이유

불과 2년 전만 해도 마케팅 팀의 미션은 대체로 ‘콘텐츠 생산성 N배’였다. 디자이너 한 명이 하루에 몇 개를 뽑아낼 수 있는지, 한 편을 며칠 만에 마칠 수 있는지. 회의 안건도 대부분 속도와 양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실무에서 체감되는 건 조금 다른 결의 고민이다. AI를 도입한 뒤 콘텐츠는 분명 많아졌는데, 검수하고 골라야 할 결과물이 함께 폭증한다. 생산은 쉬워졌는데 판단은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역설이 곳곳에서 보인다. 강연자의 표현을 빌리면, AI가 100개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는 100개를 만드는 것보다 “어떤 1개를 내보낼지 고르는 안목”이 더 큰 변수가 되어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질문이 ‘어떻게 더 많이 만들 것인가’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양의 경쟁이 일정 임계점을 넘은 시장에서는, 결국 선택의 기준이 차별점이 된다.


2. AI 마케팅의 핵심은 ‘생성’이 아니라 ‘운영’이다

AI 도입보다 운영 구조가 중요한 이유

요즘 실무에서 흔히 빠지는 함정은

‘AI 계정 여러 개 사서 구성원 들에게 풀었으니 AX는 도입한 셈’이라는 생각이다. 강연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짚었는데, 이건 도입이 아니라 ‘툴 보급’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운영 구조가 함께 바뀌지 않으면, AI는 결국 ‘있어도 잘 안 쓰는 비싼 도구’로 남기 쉽다.

한 명의 구성원이 Nano Banana나 Krea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과, 회사가 매일 수백 개·매월 수만 개의 콘텐츠를 ‘반복 가능하게’ 뽑아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점은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일수록 더 와닿을 것 같다. 후자는 결국 워크플로우, 권한, 승인 흐름, 검수 기준이 모두 맞물려야 가능한 ‘운영’의 영역이다.

이 한 장이 강연 전체를 압축하는 슬라이드처럼 느껴졌다. 특히 Enterprise AI ≠ Tool adoption = Ops integration. 도구를 사는 일과, 그 도구를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 끼워 넣는 일은 결이 다르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브랜드 기준이 없는 AI 콘텐츠가 위험한 이유

범용 AI는 이미 충분히 좋다는 게 강연의 또 다른 전제였다. 이미지·영상·카피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에 가까워졌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서 날까. 강연이 반복적으로 짚은 답은 브랜드 기준이었다.

현장에서 AI 도입이 흔들리는 지점도 대체로 비슷한 모습이다. 톤앤매너 불일치, 가이드 위반, 재작업과 검수 비용 증가. 결과물 품질의 문제라기보다 ‘제작 기준’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브랜드는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절대 하지 않는가”에 대한 합의가 없을 때, AI는 가장 빠르게 브랜드 톤을 흩뜨리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 Generic AI makes contents. Brand AI makes assets.

범용 AI는 콘텐츠를 만들고, 브랜드 AI는 자산을 만든다. "


3. 네이버 쇼핑 사례로 본 AI 콘텐츠의 변화

AI 라이브커머스는 왜 등장했을까?

강연에서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사례는 네이버 쇼핑이었다.

배경부터 짚어두면, 네이버는 LLM 시대로 접어들면서 검색 트래픽의 자리가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흐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쇼핑, 특히 라이브 커머스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설명이 나왔다.

문제는 라이브 한 편을 만드는 데 평균 2~3주, 길게는 한 달까지 걸린다는 점이었다. 스튜디오, 쇼호스트, 스크립트, 회의에 한 편당 약 400만 원 수준의 비용까지. 네이버가 1년에 직접 서포트해 만드는 라이브가 약 1,000건 미만 수준인데, 이걸 1만 건 규모로 확장하고 싶지만 사람과 스튜디오를 10배 늘릴 수는 없다는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던진 질문이 “AI로 라이브를 만들 수 있겠냐”였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60분 방송 대신, 10분 콘텐츠를 반복한 이유

여기서 작은 발상의 전환이 흥미로웠다. 라이브 한 편은 보통 60분이지만, 강연자는 “60분을 다 앉아서 보는 시청자가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실제로 시청자는 도중에 들어와 5~10분 보고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데이터를 근거로 들었다.

그렇다면 60분짜리를 한 번 찍는 대신, 10분짜리를 여러 번 돌리는 게 시청 패턴에 더 가깝지 않을까라는 발상이 나온다. AI라면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구조다. 그 결과 한 달 걸리던 콘텐츠가 3일로 줄었다고 했다. 단순한 비용 절감 이야기로 듣기보다는, 사람이 일하던 콘텐츠 문법을 AI라는 도구의 결에 맞게 다시 짠 사례로 읽혔다.

특히 이 사례가 단순한 생성 서비스가 아니라 솔루션화된 워크플로우 형태로 구현됐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시나리오 → AI 모델 생성 → 제품 특장점 도출 → 스크립트 → 씬 생성 → 합본·검토 → 출고. 사람이 일하던 방식 자체를 자동화 라인으로 옮긴 그림에 가까웠다.

AI 콘텐츠가 실제 판매 성과를 만들기 시작했다

성과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첫 송출에서 평균 거래액의 약 80%를 달성했다는 설명이 나왔고, 이어 더 도전적인 실험이 진행됐다. “사람 쇼호스트와 AI 쇼호스트를 같은 제품으로 동시 송출해 매출을 비교해보자.” 트래픽을 반씩 나눠 매일유업 식빵 한 제품으로 붙었다는 이야기였다.

결과는 그 주 네이버 라이브 카테고리에서 AI로 만든 콘텐츠가 매출 1위, 다른 AI 콘텐츠가 4위에 올랐다는 설명이 나왔다. 강연자도 “AI가 사람을 대체했다”는 식의 해석보다는, “사람이 만들던 라이브는 사람이 만들고, 추가로 확장해야 하는 분량은 AI가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사례”로 정리했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건 비교적 분명해 보였다. 업계에서 한동안 들리던 질문이 “AI로 만들면 어색하지 않아요?” 였다면, 이제는 “AI로 만든 콘텐츠가 더 잘 팔릴 수도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에 따라올 질문은, 우리 조직이 그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일 것 같다.


4. 글로벌 브랜드는 왜 AI 현지화에 집중할까?

현대차가 콘텐츠 표준화에 집중한 이유

글로벌 사례는 현대차였다. 신차 한 대 출시에 글로벌 마케팅비로 약 500억 원 규모를 집행하는데, 실제 광고 제작은 각국의 현지 딜러사가 담당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라마다 결과물의 편차가 커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일관되게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이야기였다.

가이드라인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300페이지에 달하는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각국 언어로 번역해 배포하고, 디자인팀이 직접 방문해 교육까지 진행해도, 현지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마케터라면 한 번쯤 비슷한 경험을 떠올릴 만한 장면이다. 가이드는 늘 있지만, 가이드가 지켜지게 만드는 ‘구조’는 따로 필요하다는 점.

현대차가 선택한 접근은 ‘가이드라인을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우리 시스템 안에서만 콘텐츠가 만들어지도록 설계하자”는 방향에 가까웠다. 모든 광고 소재 제작을 자사 플랫폼 안으로 통합하고, 그 안에서만 브랜드 표준에 부합하는 콘텐츠가 생성되도록 구조화했다는 설명이었다. 차종별 사양, 색상, 통화, 언어, 광고 규제 같은 정보까지 메타데이터로 연동돼 있다고 했다.

비용 절감 효과는 강연자가 인용한 기사 기준으로 첫 해 약 100억 원 수준이었고, 이후 적용 국가가 늘면서 그보다 더 큰 폭의 절감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 솔루션이 iF 디자인 어워드를 받은 사례라는 점도 인상깊었는데, ‘솔루션이 디자인상을 받는 시대’라는 표현이 곱씹어보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제작물’이 아니라 ‘운영 구조’가 디자인의 대상이 되는 흐름으로 읽혔다.

미쓰비시는 왜 AI 생성 통제 구조를 만들었을까?

미쓰비시의 고민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AI로 차량 영상을 만들었더니, 카메라가 회전할 때마다 차량 비율이 미세하게 달라지거나, 휠 디자인이 바뀌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는 설명이었다. 자동차 브랜드 입장에서 ‘차량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결과물 자체를 못 쓰게 만드는 문제다.

해법은 차량 제원 자체를 워크플로우에 박아 넣는 방식이었다. 차폭, 높이, 휠 디자인 같은 정보를 생성 단계의 제약 조건으로 묶어, AI가 어떤 환경에서 생성하더라도 차량의 핵심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구조화했다는 설명이었다.

여기서 나온 한 줄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AI 자체가 아니라, 업무에 바로 쓰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범용 모델은 이미 충분한 시대에, 진짜로 부족한 건 ‘우리 회사의 워크플로우와 결을 맞춘 제약 조건’이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현지화”는 이제 제작이 아니라 운영의 문제다

같은 차 한 대를 글로벌하게 마케팅 하려면 시장별 메시지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은 모두가 알지만, 그걸 실제로 운용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이다. 강연에서는 동남아는 7인승 가족형, 북미는 레저·캠핑 적합성, 일본은 세련된 3D 비ㅈ주얼, 중국은 도심형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식의 시장별 강조점이 소개됐다.

이 모든 것을 사람이 기획하고 촬영한다고 가정하면, 비용과 시간이 빠르게 부담스러워진다. 반대로 차량 베이스 이미지와 제원 데이터가 잘 정리돼 있으면, AI가 시장 별 변형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구조도 가능해진다. 강연에서는 이를 One Source Multi Use의 실질적 구현으로 정리했다.

여기서 다시 강조되는 키워드가 ‘운영’ 이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에서, 시장별 변형 규칙·브랜드 기준·소재 라이브러리를 운영하는 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5. AI 시대, 마케터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만드는' 사람보다 '판단하는' 사람이 중요해진다

이쯤에서 마케터 입장으로 돌려놓고 생각해본다. AI가 콘텐츠를 100개 뽑아낸다고 했을 때, 우리 일은 무엇이 되는 걸까.

‘직접 만드는 일’이 줄어드는 자리에 들어오는 건, 결국 “어떤 1개를 내보낼지 고르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판단의 무게가 더 커지는 구조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그 자리에 서 보면, 결정해야 할 항목이 줄어든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났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결과물이 100개로 늘면, 검수해야 할 분량과 골라야 할 기준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한 큐레이션 작업이 아니다. ‘이 콘텐츠가 우리 브랜드 톤에 맞는가’, ‘이 메시지가 타겟 세그먼트에 닿을까’, ‘이 변형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흐트러뜨리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들에 매번 답하는 일이 일상이 되고, 그 답의 누적이 곧 마케터의 경쟁력이 되는 흐름이 보인다.

흥미로운 건, 이 판단의 영역이 AI가 가장 흉내내기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AI는 톤앤매너를 학습할 수 있어도, “지금 이 시점에 이 톤이 맞는가”까지는 쉽게 판단하지 못한다. 시장 분위기, 사회적 맥락, 브랜드 헤리티지를 종합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영역으로 한동안 남을 것 같다. 다만 그만큼 마케터에게 요구되는 판단의 밀도도 함께 올라간다는 점은, 솔직히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변화이기도 하다.

콘텐츠 제작보다 콘텐츠 운영이 중요해진다

또 하나 체감되는 변화는 ‘콘텐츠 제작자’에서 ‘콘텐츠 운영자’로의 이동이다. 한 편의 영상을 만드는 사람보다, 수백 편의 영상이 브랜드 기준 안에서 안정적으로 흘러나오도록 설계하고 관리하는 사람의 역할 비중이 커지는 흐름이다.

“광고는 찍는 게 아니라, 운영하는 것.” 인상적인 문구였다.

라이나생명의 주지훈 광고는 여름에 촬영한 화장실 장면을 별도 재촬영 없이 ‘Video to Video’ 방식으로 겨울 버전(크리스마스 산타가 등장하는)으로 변환해 다시 송출했다는 사례가 소개됐다. 일룸 광고도 비슷한 방식으로 시즌 캠페인을 확장했다는 흐름이었다.

실무 입장에서 한 번 더 짚이는 지점이 있다. 모델 계약, 라이센스 계약, 소재 활용 범위까지 모두 ‘운영 관점’으로 다시 짜여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 찍은 콘텐츠를 얼마나 오래,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재활용할 수 있게 설계해두느냐가, 앞으로의 캠페인 효율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브랜드 기준이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면세점 사례도 이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명품 브랜드 제품 이미지 약 4만 장에 ‘예쁜 배경’을 입혀야 하는 과제였는데,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이 “제품의 변형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였다는 이야기였다.

구도를 바꾸면 더 예쁘게 나오지만, 옆면처럼 원본에 없던 영역이 AI에 의해 새로 그려지면서 실제 제품과 미세하게 달라질 수 있다.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형이다. 결국 “그림자와 반사만 건드리고 제품 자체에는 손대지 마”라는 식의 명확한 기준이 정의되어야 했다는 흐름이었다.

“AI로 어떤 결과물을 만들지는, 결국 브랜드의 기준에 달려 있습니다. 기준이 없으면 AI는 통제하기 어려워집니다.”

브랜드 기준이라는 게 그동안은 ‘있으면 좋은 것’에 가까웠다면, AI 활용이 일상화되는 환경에서는 ‘없으면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으로 무게가 옮겨가는 인상이다. 가이드 문서가 두꺼운 조직보다, 짧더라도 ‘무엇을 하지 않는다’가 분명한 조직이 AI 시대에 더 빨리 안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6. 결국 AI 시대에 살아남는 콘텐츠는 무엇일까?

“AI를 쓰는 기업은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AI로 콘텐츠를 ‘운영’하는 기업만 남을 것입니다.”

강연 속 이 표현이 어쩌면, 과한 단정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정리해보면 몇 가지 흐름이 함께 읽혔다.

첫째, 콘텐츠 생산 자체는 점점 변별력이 줄어든다는 점. ‘만드는 능력’만으로는 차별점을 만들기 어려운 시기로 접어들고 있고, 차이는 ‘운영 구조’ 브랜드의 기준, 워크플로우, 의사결정 흐름에서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둘째, ‘무엇을 만들까’보다 ‘무엇을 남길까’의 비중이 커진다는 점. 양이 무한대로 향하는 환경에서는, 선택의 기준이 곧 브랜드의 얼굴이 된다.

셋째, AI는 ‘도입’보다 ‘운영 구조 안에 끼워 넣는 일’에 가깝다는 점. 계정을 늘리고 툴을 보급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고, 워크플로우·권한·승인·검수 흐름까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넷째, 브랜드 기준 없는 AI 활용은 의도와 달리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점. 통제 없는 생성은 브랜드 톤을 가장 빠르게 흐트러뜨리는 경로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마케터의 역할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 ‘제작자’의 비중은 줄어들고, ‘판단자·운영자·기준 설계자’로서의 비중이 커지는 흐름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변화가 환영할 만한 일이기만 한 건 아니다. 판단해야 할 양이 늘고, 책임의 결도 달라진다. 그래서 이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앞으로 몇 년 사이 마케터의 커리어 결을 꽤 다르게 만들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결국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은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더 가까운 질문은 이런 모양에 가깝다.

“우리 브랜드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 기준을 어떻게 운영 구조로 만들어둘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해본 마케터, 그리고 그 답을 시스템으로 정리해본 조직이 다음 몇 년을 조금 더 수월하게 지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인상을 받았다. 적어도 이번 강연에서 받은 메시지의 결은 그쪽에 가까웠다.

콘텐츠의 시대가 끝나가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만들어지는 시대’에서 ‘운영되는 시대’로 천천히 자리가 옮겨가는 중이라는 점은 점점 더 분명해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