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유여행 플랫폼과 패키지 여행사는 서로 다른 영역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검색의 자유'와 '취향 큐레이션'으로, 다른 한쪽은 정해진 일정의 안정성으로 각자의 시장을 키워왔죠.그런데 최근, 그 경계선이 흐려지고 있습니다. 패키지 상품 확대에 나선 마이리얼트립, 전통 여행사와 협력을 다진 놀유니버스, 자체 기획 상품을 선보이는 여기어때까지. 자유여행을 무기로 성장해 온 플랫폼들이, 일제히 패키지 상품을 첫 화면에 올리고 있습니다.스스로 모든 것을 고르던 세대는, 왜 다시 '정해진 여행'을 결제할까요?
🔎 마이리얼트립은 왜 패키지를 '다시 편집'했을까
마이리얼트립은 기존 여행사와의 제휴를 넓히고, 여행 전문가 연결 서비스와 자체 패키지 상품 개발을 통해 패키지 시장을 온라인 안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상품 수 확대가 아니라, 자유여행 플랫폼이 '선택의 피로'를 줄이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하는 흐름으로 읽힙니다.플랫폼의 IT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오프라인 인프라를 하루아침에 구축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지 숙박업소, 골프장, 투어 운영사와 신뢰 기반의 조달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과 아날로그적 관계가 필요합니다. 마이리얼트립이 직접 구축 대신 전국 여행사 제휴를 택한 배경입니다.기성 여행사의 상품을 자사가 보유한 2030 타깃의 취향 데이터로 재구성해 제안하는 방식입니다. 상품을 직접 만드는 대신, 에디터처럼 다시 편집해 내놓는 것이죠.
🧭 놀유니버스, 위험은 나누고 기획은 집중한다
놀유니버스가 전통 여행사와 협력 구조를 다지는 흐름은, 플랫폼 비즈니스가 어떻게 효율을 극대화하는지 보여줍니다. 직접 모든 것을 만들던 방식에서 벗어나, 위험은 나누고 기획은 집중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현지 위기관리 능력이 필수적인 일반 패키지는 전통 여행사와의 협업으로 분산하고, 놀유니버스는 특수목적여행(SIT) 같은 기획력이 중요한 영역에 역량을 집중합니다. 상품을 모두 직접 만들기보다, 플랫폼과 파트너가 각자의 강점을 나누는 이원화 전략으로 읽힙니다.
💡 여기어때, 패키지 판매를 자사 플랫폼 안으로 끌어오다
여기어때의 방향은 나머지 두 플랫폼과 결이 달라 보입니다. 2025년 7월, 여기어때는 자사 앱에서 패키지 상품을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1,000개 상품을 선보이며, 숙박·항공 중심이던 플랫폼에서 여행 전 영역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입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검색을 통해 완벽한 자유를 얻은 줄 알았지만, 수백 개의 리뷰를 비교하고 최저가를 찾는 과정은 어느새 피곤한 '업무'가 되어버렸습니다. 선택지가 넘칠수록 결정은 오히려 더 무거워지죠.
여기어때가 내놓는 건 이 피로감에 대한 직접적인 답입니다. 항공, 숙박, 일정이 미리 묶여 있는 패키지는 소비자의 비교·조합 부담을 덜어줍니다. 플랫폼 체류 시간을 늘리고 거래 단위를 키우려는 계산된 전략이기도 합니다.
🔑 왜 지금, 일제히 패키지인가
엔데믹 이후 해외 출국자가 2,300만 명 수준까지 회복되면서 여행 수요는 폭발했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한쪽으로 쏠리지 않았습니다. 자유여행과 패키지가 동시에 커지는 양상이었죠.
소비자들은 여전히 '내 여행'을 원했지만, 그 안의 욕구는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복잡해진 환불 규정, 국가별 입국 정책, 수십 개 상품의 조합. 여행의 '설계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일정을 원스톱으로 맡기고 싶다는 수요가 함께 늘었습니다. 자유를 택했지만 피로에 도달한 소비자들이, 패키지와 셀프 패키지 사이 어딘가를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플랫폼 쪽의 계산도 바뀌고 있었습니다. 항공권 한 장을 팔아 남기는 수수료는 판매 금액의 약 3%에 불과합니다. 반면 국내 주요 여행사의 영업이익 60~70%는 여전히 패키지에서 납니다. 항공·숙소 단품만으로는 글로벌 OTA와 가격 경쟁을 버텨내기 어렵고, 수익성도 나오지 않는 구조입니다. 패키지와 결합 상품은 객단가가 높고, 고객을 플랫폼 안에 묶어두는 힘도 큽니다.
결국 지금 시장에서 벌어지는 건 '자유 vs 패키지'의 대결이 아닙니다. "얼마나 설계가 되어 있는가"의 스펙트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검색창에서 출발해 항공·숙소를 개별로 조합하던 플랫폼들이, 이제는 여정을 통째로 설계하고 판매하는 곳으로 포지션을 옮기고 있습니다.

📈 UI만 바꾼 패키지? 구조적 모순은 언제 바뀔까
플랫폼의 세련된 UI와 큐레이션을 거쳐 패키지는 트렌디한 상품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고객이 앱을 끄고 현지에 도착해서 경험하는 패키지여행의 '수익 구조'는, 과연 달라졌을까요?
아무리 감각적인 문구로 포장해도, 본질은 그대로일 수 있습니다. 업계 일각에서 지적되듯, 현지 행사를 도맡는 랜드사와 가이드가 원가 이하의 행사비를 받고 쇼핑 수수료로 적자를 메꾸는 '마이너스 투어' 구조가 여전히 일부 상품에서 유지된다면요. 가이드가 쇼핑을 강요해야만 유지되는 낡은 하청 구조가 그대로 작동한다면, 이는 디지털 화면만 바꾼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혁신은 보기 좋은 큐레이션을 넘어, 현지 생태계에 정당한 비용이 지불되는 수익 구조의 정상화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이 흐름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플랫폼이 쌓는 것은 상품 리스트가 아니라, 사람의 패턴입니다. 검색 기록, 선호 일정, 동행자 구성, 예산 감도 같은 데이터가 정교해질수록, 소비자의 선택 부담을 대신 해결하는 이 흐름은 단순 패키지 판매를 넘어 "나를 잘 아는 플랫폼이 짜주는 여행"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다음 싸움은 이렇게 바뀝니다. "누가 더 많은 상품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내 취향과 예산을 가장 정확히 짚어내느냐"의 경쟁으로요.
하지만 여행을 완성하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현장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큐레이션도 가이드 한 명의 태도, 버스 안의 공기, 침대 매트리스의 상태까지는 설계하기 어렵습니다. 플랫폼이 진짜 '경험의 설계자'가 되려면, 알고리즘이 약속한 경험이 공항 도착 이후의 모든 순간에서도 똑같이 유지되도록 현지 파트너와 수익 구조까지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화면 위의 언어와 현장에서의 체감 사이에 간극이 줄어드는 곳, 거기에 신뢰가 쌓입니다.
여행은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 아니라, 마지막 날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완성됩니다. 사용자가 "잘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여정의 처음과 끝, 그리고 사이의 공백까지 책임지는 플랫폼이야말로 이 시장의 진짜 승자가 되지 않을까요?
썸네일 및 본문 이미지 | Unsplash · 마이리얼트립 · 놀유니버스 · 여기어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