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을 전공하고 상업용 부동산과 상권 분석을 학부·석사·박사에서 연구해온 사람이, 서울 금호동 뒷골목 16평 매장에서 크래프트 맥주 술집을 운영한다. 지난 위픽 인사이트서클 vol.5 무대에 오른 놈눅 김영준 대표의 이야기는 아마 그날 무대 위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삽질의 기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삽질이 8개 러닝 커뮤니티 협업, 두 편의 학술 논문, 벨기에 양조장 50곳 미팅으로 이어졌다.

무대의 5분과 이어진 인터뷰의 내용을 그의 목소리 그대로 옮긴다.


놈눅 김영준 대표의 오프라인 스몰브랜드 실험 | 위픽 인사이트서클 vol.5

저는 아마 오늘 제일 아날로그적이고 삽질 같은 이야기이고,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나눠드릴까 합니다. 저는 사실 자영업이랑 외식업이랑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해왔었고요. 도시계획이랑 상업용 부동산 상권 분석 같은 일을 학부, 석사, 박사 하면서 진행했었고, 30대는 주로 미국에서 보냈는데 그 당시에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을 갔었습니다.

이 숫자가 저를 의미하는 숫자이기도 한데, 622는 월 러닝 마일리지고요. 500곳 이상의 양조장을 다녀왔습니다. 왜 금호동을 매장으로 잡았냐는 질문을 되게 많이 하시는데, 저는 여기서 커뮤니티 실험을 좀 해보기 위해서 외식업 매장을 열었습니다.

오픈발이 끝나고 매출이 급하강한 뒤

가오픈 3개월, 오픈발 3~4개월이 지나고 나면서 장마와 무더위를 겪으며 매출이 급하강했습니다. 근데 동시에 잘 되던 트렌디한 매장들이 폐업하는 걸 봤습니다.

시간이나 금전적으로 가장 비싼 수업료는 주력 아이템과 매장의 입지 선정이었을 것 같아요. 놈눅이 맞벌이 부부가 많은 금호동 지역에 위치한 것이 가장 큰 수업료일 수 있습니다. 크래프트 맥주와 전통주는 1인 가구가 많은 지역에서 통용되는 아이템이고, 외부 방문 고객 중심의 업장은 지속적인 마케팅 비용이 들어가거든요. 고객으로서 상권을 보는 것과 실제 영업을 하는 입장에서의 갭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과 매장의 컨셉은 고객의 인식과 불일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높은 자영업 폐업률을 보았을 때,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고, 초보 사장인 제가 폐업하지 않을 확률이 폐업할 확률보다 현저히 낮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습니다. 매장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매출 외에 어떤 경험과 인사이트로 다음 일을 할지에 대한 생각을 늘 합니다. 어쩌면 이런 태도가 꾸준하게 상권을 분석하고 고객을 관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전단지 120명이 알려준 진짜 고객

그래서 어떻게 할까, 동네 사람들을 찾으려면 잠재 고객을 찾는 걸 제일 무식한 방법으로 해보자 해서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40대 아저씨가 드리면 '지가 살라고 하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실 거고, 먹는 것은 여러 번 먹으면서 결국 덮어씌우기가 되잖아요. 그래서 충분히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갖고 있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저희 매장과 연결 소비가 되는 매장들 근처 담배 피는 곳에서 전단지를 붙이고 나눠 드렸어요. 그 과정 동안 한 달 동안 약 120분 정도가 잡혔습니다. 저희 매장은 16평 정도의 작은 매장이고 뒷골목에 위치해서, 계산할 때 어떻게 찾아오셨는지를 편하게 여쭤볼 수 있거든요.

전단지를 보고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고, 그중에 85%가 사실은 기혼여성, 동네에 사시는 기혼여성이었어요. 술집이랑은 아예 다른 프로파일이죠.

그래서 제가 했던 건 왜 이렇게 많이 오셨지를 보면서 다른 가게들 한 20곳 정도를 한 2개월 정도 리얼타임으로 저희 매장과 같이 놓고, 날씨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를 봤습니다. 우리 매장이 어떻게 맥락상에 존재하는가, 다른 매장에 없는 손님인데 우리 매장에 있는 손님, 우리 매장이 타 경쟁업장 대비 차별점은, 그리고 배후 주거에 존재하는데 현재 상권에는 포용되지 않는 수요가 뭐지, 이런 걸 알 수 있게 됐어요.

그중 하나가 시니어나 가족이 갈 만한 곳이 별로 없었고, 고깃집 외에는 8명 이상 회식이나 모임을 할 만한 곳이 없고, 다 어둡고 젊은 층이 가거나 노포에 소주 먹는 집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머님들 모임도 많이 오고 밝은 분위기의 매장인데 왜 그럴까 봤더니, 이게 오히려 덜 부담이 됐던 거예요. 브런치 가게 같은 매장은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었고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님들 비중도 제법 많은 술집입니다.

대관과 러닝크루, 콘텐츠가 결정을 대신해준 실험

그다음에 커뮤니티 행사를 하려고 대관이나 러닝크루 같은 행사를 주기적으로 해볼까라는 실험을 했었어요. 다른 가게들을 봤더니 대부분은 인스타 계정이나 네이버 플레이스에서 대관 문의인데, 사실 마케터가 아닌 분들 입장에서는 대관을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하고, 이게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의 추상적인 기준과 체크리스트를 콘텐츠로 만들어 의사결정을 좀 수월하게 해줄 수 있으면 결정이 쉽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러닝크루 콘텐츠를 만든 이후 약 1년 반 동안 총 8개의 러닝 커뮤니티와 협업했고, 이중 일부와는 2~3회 이상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대관은 이전에는 월 1회 이하였는데 콘텐츠 제작 이후 많을 때는 월 4회, 월 평균 8~9회의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최근에는 저희 매장을 거점으로 호스팅하는 이벤트 외에도 놈눅이라는 이름을 들고 다른 공간에서 콜라보를 진행하기도 하며, 다양한 커뮤니티와 브랜드에서 협업 제안이 들어옵니다.

지난 2년 동안 다시 발표를 준비하면서 약 50가지 이벤트를 매장에서 호스팅하고, 잠재 고객으로 이어질 수 있을 만한 커뮤니티와 플랫폼에서 약 150회 호스팅을 하면서 한 1만 명 정도의 분들을 만나 제 고객을 찾는 일들을 했어요. 놈눅이라는 이름을 한 번, 한 가지 경로를 통해서 듣게 되었을 때 방문 확률이 1% 미만이라면, 여러 경로로 알게 모르게 노출된다면 어쩌면 방문 확률이 10%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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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책은 반응하고, 도시계획 책은 그러지 못한 이유

매장에서 사람들이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 관찰했어요. 저는 감도가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요. 외식업 매장이면 술이나 식재료 관련 책들을 저도 처음엔 놨었습니다. 그런데 러닝 책을 놓으니 이게 너무 생소하니까 이걸 매개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몇 달 전에는 도시계획, 도시재생, 상업용 부동산 책들을 같은 위치에 비치했는데요. 이 경우는 직관적이지 않다 보니 한 분도 반응이 없었어요. 러닝 책의 경우 책을 봐도 되냐거나 저에 대한 러닝 관련 질문을 주시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제 전공 분야 책에 대해 반응하신 분은 0명이었습니다.

또 입간판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매출 효과가 궁금해서 몇 달째 입간판을 빼고 영업을 하고 있는데, 약 워크인 2팀 정도가 빠지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월 매출로 250~300만 원 정도인데요. 새로운 형태의 입간판 디자인을 못 정해서 간판 없는 집을 의도치 않게 유지 중입니다.

희소성 있는 술도 시도했어요. 보통은 유행하는 술을 갖다 놓는데, 저는 저평가됐지만 스토리가 있고 못 파는 술들 같은 걸 전체 매입해서 팔아보는 일을 했어요. 스토리에 어떻게 사람들이 반응하는지를 봤죠.

B2B로, 그리고 벨기에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미스매치가 난 아이템과 상권을 두고 고민하다 보니 조금은 B2B 영업 측면에서의 솔루션을 알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러너를 위한 맥주 '홉런'을 JH 브루잉과 함께 생산하면서 직접 거래처 영업, 이벤트 기획, 브랜딩을 맡아서 했어요. 불리한 위치의 업장을 운영하는 경험과 노력이 B2B 세일즈에서 더 생동감 있고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맥주라는 아이템에 갇히지 않고, 소비자가 어떤 상황에서 이 아이템을 선택할지에 집중한다면 거래처를 단순히 맥주를 주로 취급하는 업장에만 국한시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홉런의 경우 러닝 이벤트를 같이 기획하고 러닝 호스트로서의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홉런의 1배치는 이제 다 판매하고 2번째 배치 생산에 빠르게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고요.

올해 초 2~3월에는 벨기에 출장을 통해 약 50여 곳의 벨기에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과 미팅을 하고, 수입사와 그리고 작은 양조장과 브랜드를 위한 축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맥주 축제나 콜라보 맥주를 만드는 생각은 다 같은 맥락이에요. 국내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은 매우 영세하고 유통을 종합주류도매상에 의존하다 보니 불합리한 조건도 감수합니다. 수백 개 업체가 참가하는 박람회, 수십 개 양조장이 참가하는 축제에서 고객과의 접점을 만들고 브랜드 경험을 주기란 불가능에 가까워요. 그래서 참가 업체는 작지만 브랜드와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고객과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내가 운영하는 공간 안에 나를 가두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고, 잘못된 매장 덕분에 단골을 쌓을 수 있는 노하우와 경험을 얻었습니다. 벨기에 맥주 수입이 시작된다면 매력적인 맥주들을 다양하게 소개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놈눅은 활용될 예정이에요. 매장이 확장하기 위해서는— 어, 끝났네요. 감사합니다.


주력 아이템과 상권이 어긋난 매장에서 시작된 관찰이, 8개 러닝 커뮤니티 협업, 50여 개 벨기에 양조장 미팅, 두 편의 학술 논문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의 말처럼 "매장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매출 외에 어떤 경험과 인사이트로 다음 일을 할지" 준비하는 태도가, 결국 오프라인 공간이라는 좁은 무대를 훨씬 넓은 브랜드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 글은 위픽 인사이트서클 Vol.5(2026.07.10)에서 진행된 놈눅 김영준 대표의 「오프라인 공간 비지니스의 가능성과 새로운 스몰브랜드의 실험」행사 이후 진행한 서면 Q&A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발표 원본은 유튜브 영상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본문에 포함된 사례와 인사이트는 발표와 발표 자료 및 김영준님이 직접 전달한 서면 Q&A 답변을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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