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금융이라서 콘텐츠를 세게 못 씁니다." 핀테크 마케팅 담당자를 만나면 거의 예외 없이 듣는 말입니다. 광고 심의가 있고 컴플라이언스 결재가 며칠씩 걸리니, 남는 문장은 결국 '업계 최고 수준', '간편한 가입', '빠른 심사' 같은 무해한 표현들입니다. 그런데 AI 검색이 보편화되면서 이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AI는 우리 브랜드를 왜 언급하지 않을까요?
인용할 만한 문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ChatGPT나 퍼플렉시티가 답변을 만들 때 무엇을 가져가는지 보면 기준이 분명합니다. '업계 최고 수준의 금리'는 어떤 모델도 옮겨 적지 않습니다. 검증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연 4.9%부터, 사업자등록 6개월 이상, 소득증빙 서류 불필요'는 거의 그대로 인용됩니다. 조건이 명시돼 있고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콘텐츠가 부족한 게 아니라, 심의를 피하려고 표현을 뭉개는 과정에서 AI가 쓸 재료가 전부 증발한 겁니다.
그럼 규제 때문에 방법이 없는 건가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요구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이자율 구간을 밝혀라, 부대비용을 밝혀라, 불이익 조건을 밝혀라. 규제기관이 시키는 대로 쓰면 결과적으로 AI가 선호하는 형태가 됩니다. 심의 통과를 위해 이미 만들어 둔 상품설명서와 약관이야말로 경쟁사가 쉽게 베낄 수 없는 검증된 사실의 창고인 셈입니다. AI 답변엔진의 인용 행태를 분석한 연구들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결론을 먼저 제시하는 서술, 항목이 분리된 표, 출처가 붙은 수치처럼 구조 품질이 높은 페이지일수록 여러 엔진에서 인용될 확률이 올라갔습니다.
문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나요?
치환 규칙은 단순합니다. '업계 최저 금리'는 '연 4.9%부터, 신용등급별 차등'으로 바꿉니다. '누구나 승인'은 '사업자등록 6개월 이상 시 신청 가능'으로, '즉시 입금'은 '서류 완비 기준 영업일 1일 이내'로, '수수료 없음'은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3년 경과 시'로 바꿉니다. 오른쪽이 마케팅적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AI 답변에서는 훨씬 자주 살아남습니다. 모델 입장에서 왼쪽은 근거 없는 주장이고 오른쪽은 인용 가능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덤으로 확정적 단정을 피하게 되니 심의 통과도 수월해집니다.
실제로 해보면 결과가 달라지나요?
지오랭크가 중소형 대출 중개 플랫폼과 3개월 진행한 기록을 공유합니다. 첫 달은 완전한 헛발질이었습니다. 교과서대로 '사업자 대출이란', '신용점수 올리는 법' 같은 교육형 콘텐츠를 12편 발행했는데 조회수만 올랐고 AI 답변 인용은 0건이었습니다. 돌아보면 당연합니다. 그 주제는 이미 은행과 대형 포털이 훨씬 두껍게 다루고 있어 작은 회사가 이길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달에 방향을 틀어 새 글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이미 심의를 통과한 문서를 열어 대출 한도 산정 기준,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조건, 부결 사유 상위 5가지를 조건표로 정리해 9편을 만들었습니다. 심사역이 매일 전화로 답하던 내용들입니다.
숫자로는 어떻게 나왔나요?
3개월 뒤 주요 상품 질문 34개 중 19개에서 AI 답변에 브랜드가 등장했고, 해당 페이지를 거친 상담 신청은 월 41건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같은 기간 전체 세션이 오히려 9% 줄었다는 점입니다. 트래픽은 빠졌는데 문의는 늘어난 형태입니다. 교육형 콘텐츠가 데려오던 아직 살 생각 없는 방문자가 사라진 자리를, 이미 조건을 따져보는 사람들이 채운 겁니다. 예상 못 한 부수 효과도 있었습니다. 문장을 창작한 게 아니라 승인된 문구를 재배치한 것이라 컴플라이언스 검토 기간이 평균 4일에서 1일로 줄었습니다.
실패한 부분은 없었나요?
있었습니다. 금리 비교 페이지에 경쟁사 수치를 넣었다가 법무팀에서 전면 반려를 받아 발행이 2주 밀렸습니다. 결국 타사 숫자를 전부 빼고 '어떤 조건일 때 어느 유형이 유리한가'로 축을 바꿔 통과시켰고, 지금은 핀테크 프로젝트에서 타사 수치 인용을 아예 규칙으로 배제합니다. 또 보험 비교 서비스에 같은 방식을 적용했을 때는 6개월 만에 브랜드 언급률이 8%에서 27%로 올랐지만, 상품 개정이 잦아 조건표 갱신이 밀리면 인용이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한 번 만들고 끝나는 자산이 아니라는 뜻이고, 이건 아직 완전히 풀지 못한 숙제입니다.
무엇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다음 주에 새 글을 기획하기 전에 해볼 일이 있습니다. 최근 6개월치 상담 로그에서 가장 많이 반복된 질문 20개를 뽑고, 이미 심의를 통과한 문서에서 그 답을 찾는 겁니다. 대부분의 경우 답은 이미 회사 안에 다 있습니다. 다만 약관 12페이지에 묻혀 있어서 고객도 AI도 찾지 못할 뿐입니다. 우선순위는 부결 사유 정리와 자격 요건 조건표부터입니다. 둘 다 상담 로그에 답이 쌓여 있어 제작 비용이 낮고 구매 직전 단계의 질문이라 전환 기여가 높습니다. 반대로 브랜드 스토리와 일반 금융 용어 설명은 만들기 가장 쉽지만 인용 지속성도 전환 기여도 가장 낮았습니다. 많은 팀이 정확히 그 반대 순서로 예산을 쓰고 있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다만 인용됐다고 바로 매출이 되지는 않습니다. 금융 상품은 비교와 상담 과정이 길어서, 인용을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으로 두고 상담 동선까지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