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브랜딩, 어떤 역량이 중요해졌나? (1)

“Markets shift. Technology moves fast. Culture keeps rewriting the rules. So we design brands as living systems: resilient, adaptive, built to remain iconic.”


- BASE DESIGN, A COMPANY OF CULTURES.






01.

디자이너의 근본적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AI의 결과물이 상향 평준화되는 변화 속에서 어떤 답을 준비할 것인가?



Model Mathilda Gvarliani and her digital twin. ©H&M


최근 국내 최대 규모의 광고 대행사에서 캠페인을 총괄하는 캠페인 디렉터(CD)를 만나 협업을 논의할 기회가 있었다. 화두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급변하는 광고업계의 현황으로 이어졌다. 그는 실무에서 AI를 활발히 활용하면서, 대행사 고유의 매출 구조와 수익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와의 이야기 중 내 머리를 강하게 때린 질문이 하나 있다. "만약 AI가 만든 브랜딩 결과물이 전문가의 80% 수준까지 올라온다면, 그때도 업계 전문가의 역할이 남아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나는 2024년 4월에 적었던 AI 시대의 디자이너, 대체되거나 리드하거나라는 글을 떠올렸다. 그 글을 쓸 당시만해도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따라올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본 미래는 달랐다. 100여 년 전 마차가 지배하던 도로를 자동차가 대체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전환이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던 시기에는 마부가 운전자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의 AI는 인간 여럿의 자리를 점차 줄이며 결국 대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는 몇몇 기업 내부의 현황이 아니라 시장 전반의 흐름이다. 빅테크들이 AI에 투자한 막대한 비용을 회수하는 핵심 수익원으로 생성형 AI을 채택한 만큼 그 흐름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당시 내가 적었던 글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AI의 창조성은 개별 디자이너의 역량을 압도하게 될 것. 둘째, 디자인이라는 업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내가 겪어온 현상은 하나의 사실로 귀결된다. 머지 않아 AI의 발전으로 인해 지금의 역할에만 머무는 디자이너들은 자연히 사멸될 것이다. 기존의 실행 및 제작 영역에 머무른다면 말이다. 실제로 우리와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하고 있다. 브랜드 내부 마케팅 팀에서 영상과 이미지를 생성하고, 브랜딩 및 디자인에 주력하는 전문 에이전시 외주 비용은 대폭 감축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디자인 업계의 전체 파이가 줄어드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예견했던 대로, 시장은 이제 ‘디자이너라는 직무 자체가 왜 필요한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AI가 도출하는 콘텐츠의 퀄리티가 상향 평준화되면서, 브랜드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마케터가 웬만한 디자이너보다 ‘더 브랜드다운 결과물’을 생성해 내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디자이너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BMW's iX3 Generative AI Campaign. ©BMW



베테랑 캠페인 디렉터와 대화 속에서, 그와 일치했던 하나의 뷰가 있다. AI의 실행력이 발전할수록, 브랜딩에서 중요한 것은 시각적 디자인 결과물이 아니라, 브랜드의 근간이 되는 철학과 인문학적 가치를 정의하고 제시하는 능력이라는 견해이다. 일반인 누구나 간편하게 비주얼 제작을 수행하고, AI의 결과물이 상향 평준화되는 시점에 디자이너의 역할 변화는 존속과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브랜딩이라는 거대 영역에서 일부분을 차지하는 '디자인'의 영역을 과감히 넘어서야 한다. 하나의 이미지와 영상, 단편적인 콘텐츠을 만드는데 주력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브랜드의 현재와 미래 가치를 연결하는 고유한 맥락과 철학을 설계하고 비즈니스 전반에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는 역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카카오의 전 공동대표이자 JOH의 수장이었던 조수용은 비주얼을 고민하기 전에 ‘이 브랜드가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정의에 몰두했다. 그가 진행한 브랜딩 프로젝트는 단순히 디자인의 결과물이 아니라, 브랜드의 존재 이유와 인문학적 주제를 고유한 맥락으로 설계하는 과정이었고, 그 목적지는 언제나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무인양품(MUJI)의 아트디렉터 하라 켄야(Hara Kenya)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화려한 그래픽을 걷어내고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비움(Emptiness)의 미학을 제시했다. 이는 서구식 대량 소비주의에 던지는 인문학적 메시지이자 브랜드를 지속하게 만드는 고유한 철학이었다. 하라 켄야는 디자인을 통해 시대에 필요한 라이프스타일을 규정하고, 무인양품이라는 고유한 생태계를 직접 만들었다.


이들이 보여준 디자인은 기술이나 툴의 영역이 아니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관찰, 즉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브랜드의 본질을 남다르게 정의하고 이를 고유한 맥락으로 전개하는 가치 설계였다. 이런 역량이야말로 AI가 발전하고 보편화될수록 더욱 희소한 역량이 된다. 이제 “AI 시대에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