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과 여수는 서로 다른 이유로 함께 언급됐습니다. 부산 북항에는 길을 잃은 듯한 상어가 나타났고, 여수에서는 오랫동안 준비한 세계섬박람회가 시작됐습니다. 한쪽에는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보기 위해 모였고, 다른 한쪽에는 미리 약속한 경험을 만나기 위해 관람객을 기다리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상어와 박람회를 같은 저울에 올리는 비교는 금세 승패의 이야기처럼 번졌습니다. 하지만 두 도시는 애초에 같은 질문을 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여수에는 준비한 경험이 관람객에게 어떻게 닿았는지가, 부산에는 뜻밖의 관심을 도시가 어떻게 감당할지가 남았습니다.

관심은 빠르게 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심이 누구의 삶 위에 놓이는지 살피는 일에는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산, 바다가 찾아온 공원

수면 아래로 상어의 형체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환호합니다. 모습을 놓친 사람들은 다시 물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양산 아래서 기다립니다. 아이와 함께 온 한 아버지는 수족관에서 보던 상어를 야외에서 만나면 더 실감 날 것 같아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생물을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는 경험에는 다른 종류의 놀라움이 있습니다. 화면 속 소식이 눈앞의 움직임이 되는 순간, 평범한 산책로는 잠시 사건의 현장이 됩니다. 상어가 나타난 뒤 닷새 동안 약 4만 명이 찾았고, 추석 연휴 첫날에는 하루 약 10만 명이 북항 친수공원을 찾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부산도 준비하지 않은 도시만은 아니었습니다. 북항 친수공원은 오랜 시간과 예산을 들여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만든 공간입니다. 상어가 기존의 준비를 무의미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준비된 장소에 계획하지 않은 사건이 생긴 셈입니다.

다만 그 사건의 중심에는 야생동물이 있습니다. 상어가 왜 이곳에 들어왔고 스스로 빠져나갈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넓은 바다를 이동하던 생물이 좁은 인공 수로에 오래 머무는 모습은 도시의 구경거리가 되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일입니다.

그사이 상어는 빠르게 홍보의 언어로 옮겨 갔습니다. 기업들은 관련 콘텐츠를 내놓았고, 동구는 상어를 공식 마스코트로 삼고 이름·외형·이야기를 공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상어의 등장을 두고 수조 원을 들여도 할 수 없는 홍보라는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한편 상어를 자극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말도 함께 나왔습니다. 찾아온 관심을 반기는 마음과 그 관심의 대상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임은 동시에 존재합니다.

여수, 섬을 경험으로 옮기려는 도시

여수가 보여주려던 것은 섬의 풍경만이 아니었습니다. 전시와 공연, 금오도·개도에서의 캠핑과 트레킹, 섬 밥상을 맛보고 하룻밤 머무는 체험이 이어집니다. 섬을 멀리서 바라보는 여행에서 실제 섬에 머무는 경험으로 이어 보려는 기획입니다.

그러나 섬을 경험으로 옮기겠다는 약속은 전시관 안에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성인 입장료 1만 5천 원에 비해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반응이 이어졌지만, 기대 없이 찾았다가 생각보다 즐거웠다는 후기도 있습니다. 9월 19일 저녁까지 누적 관람객은 18만 5,202명이었습니다. 이날 방문객 증가에는 시민과 지역 근로자 가족에게 무료로 문을 연 행사가 함께 작용했습니다. 숫자는 사람의 규모를 보여주지만, 그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까지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섬박람회라는 이름과 실제 이동 사이의 간격도 남습니다. 주행사장에서 섬으로 가려면 다른 항구까지 이동한 뒤 다시 배를 타야 합니다. 여객선 운임을 절반으로 낮추고 야간 운항을 늘리는 지원도 마련됐지만, 전시관과 섬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관람객이 건너야 할 몫으로 남습니다. 섬에서의 체험이 행사의 중요한 약속이라면, 그곳에 닿는 과정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느껴질 때 그 약속이 완성됩니다.

거문도 뱃노래 공연은 이 간격을 드러낸 한 장면이었습니다. 트럭을 배처럼 꾸민 연출은 기대에 닿지 못했고, 무대에는 70세 이상의 거문도 지역민이 섰습니다. 지역민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완성도에 대한 질문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대가 아쉬웠다는 이유로 그들이 이어 온 노래의 가치까지 낮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여수에 필요한 것은 프로그램을 더 많이 나열하는 일만은 아닙니다. 관람객이 표를 산 뒤 전시와 식사, 섬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한 흐름으로 만날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노래가 논란의 이미지로만 남지 않도록, 충분한 설명과 완성도 있는 연출을 갖추는 일도 함께 필요합니다.

두 도시가 남긴 질문

여수와 부산의 숫자를 한 줄로 세워 순위를 매기기는 어렵습니다. 여수는 입장객을 집계하는 행사이고, 부산은 누구나 드나드는 공원의 방문객 추산입니다. 기간과 접근 조건도 다르고, 숫자 옆에 놓인 기준도 다릅니다. 두 도시에서 더 살펴볼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느냐보다, 그 관심이 향한 곳에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입니다.

수로 앞에서 휴대폰을 들었던 사람들을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낯선 생물을 보고 놀라는 일도, 가족과 그 순간을 나누는 일도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도시가 그 장면을 홍보의 언어로 옮기기 시작하면 다른 책임이 생깁니다. 사람들이 계속 상어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일과, 야생동물이 자극받지 않고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살피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박람회 역시 관람객을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섬의 삶을 경험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면, 누가 어떤 목소리와 방식으로 그 삶을 소개하는지도 행사의 일부가 됩니다.

수로 앞의 카메라는 상어를 담았지만, 상어가 그 시선 속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는 담지 못했습니다. 여수에서 트럭을 배처럼 꾸민 공연 영상은 빠르게 퍼졌지만, 그 노래가 거문도의 바다에서 어떻게 불려 왔는지까지 함께 퍼지지는 않았습니다.

관심은 가장 눈에 띄는 장면에 먼저 닿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도 상어가 머문 수로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섬은 남습니다.

부산에서 뜻밖의 관심은 야생동물을 어떻게 보호하며 몰려든 시선을 어떻게 감당할지의 문제로 이어졌고, 여수에서 오래 준비한 행사는 섬의 삶을 어떤 동선과 연출로 전달할 것인지의 과제를 안겼습니다.

결국 두 도시가 보여준 것은 관심의 크기보다 그다음의 태도였습니다. 상어가 수로를 떠나고 박람회가 막을 내린 뒤에도 남는 것은 방문객 숫자만이 아닙니다. 잠시 몰려든 시선을 도시가 어디로 돌렸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보호하고 무엇을 설명했는지가 함께 남습니다.

한 도시는 바다와 섬을 보여주기 위해 오래 준비했고, 다른 도시에는 바다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먼저 찾아왔습니다. 출발은 달랐지만 두 도시가 끝내 마주한 것은 같았습니다. 몰려든 시선 속에서도 바다와 그 곁의 삶이 구경거리로만 남지 않게 하는 것, 그 태도까지가 도시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 않을까요?

썸네일 및 본문 이미지: AI로 제작한 수채화 삽화. 실제 장소와 장면을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