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00억 심사하며 느낀 '정부 입찰'의 치명적 낭비.

저는 매년 수십 차례의 심사와 평가에 참여합니다.
그중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사업이 약 80%를 차지하며,
제가 연간 평가하는 금액만 백억 대가 넘습니다.
저 혼자만 이 정도이니 정부 사업의 큰 규모를 가늠할 수 있죠.

그런데 현장에서 매번 안타까운 점을 목격합니다.
경쟁입찰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회적 에너지'가
허무하게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 하나에
보통 5~8개 회사가 경쟁입찰에 참여합니다.
PPT를 보면 최소 3~5명이 2주 동안 꼬박 밤을 새운
노력의 결과물임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곳만 선정되고
나머지 회사들은 빈손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물론 경쟁이니 당연한 결과이고,
그 과정에서 제안사들이 성장도 하겠지만
그에 비해 인풋은 너무 과하고,
AI 시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막대한 리소스가
어디에도 활용되지 못한 채 버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 입찰 프로세스의 효율을 위한
3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1️⃣ 단일 프레젠테이션 템플릿 제공

👉 제안서 PT를 보면 내용보다 화려한 디자인으로
과대평가받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합니다.
모든 평가위원이 합리적인 검증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 공공포털에 표준 템플릿을 열어두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드래그 앤 드롭 방식으로
작성하게 한다면 기업의 재원을 크게 아낄 수 있습니다.
어차피 PT는 과정일 뿐, 본질은 최종 결과물입니다.

2️⃣ 모든 평가 점수의 누적 관리 시스템

👉 탈락한 회사의 노력도 기록으로 남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안사들이 90점, 80점, 70점을 받았다면,
80점과 70점을 받은 제안사도 그 기록을 누적해 주는 것입니다.
(90점으로 선정된 회사는 사업권을 얻고 점수는 미부여)

👉 이렇게 입찰에 참여해 쌓은 누적 점수가
500점 이상이 되면 산업 클러스터 저가 장기 입주나
사업 운영비 저리 대출 등의 보상을 주는 방식입니다.
단, 60점 미만 자격 미달 점수는 누적에서 제외하여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3️⃣ 탈락한 PT 자료의 아카이빙

👉 미국에는 선택 받지 못한 시나리오를 모아두는
'블랙리스트(blcklst)'라는 플랫폼이 있습니다.

👉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곳에서 한 시나리오를 발견해
세계적인 명작 <쉰들러 리스트>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소셜 네트워크>, <보헤미안 랩소디>, <위플래쉬>,
<슬럼독 밀리어네어> 역시 블랙리스트 작품입니다.

👉 심사 현장에는 아이디어는 훌륭하지만
전달력 부족이나 시기, 장소, 행사의 취지와 맞지 않아
저평가된 후 하루 만에 폐기되는 자료가 너무 많습니다.

👉 '공공데이터 포털' 등에서 소정의 자료비를 지불하고
제안사가 선정되지 못한 자료를 등록할 선택권을 준다면,
다른 기관이나 행사에서 유용하게 재활용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경쟁입찰 평가 프로세스는
너무나 많은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이 급격히 효율성을 추구하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먼저 앞장서서 변화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