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리쿠르트 TV광고 (2014)
2023-12-12

“내가 뛰고 싶은 방향으로 뛰면, 모두 1등을 할 수 있어요.”

2022년 초 세상을 떠난 이어령 선생이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 학자, 교육자, 언론인, 정치인 등 다양한 직업을 섭렵하며 한국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인문학적인 화두를 던지며  ‘시대의 지성인’이라는 찬사도 받았지만, 정치적 성향과 대중지향적 행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이 ‘모두 1등론’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 말이 담긴 인터뷰는 최근 유행하는 숏폼영상으로 재편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젊은 세대를 위한 동기부여 영상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모든 사람은 천재로 태어났고,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중략) 360명이 한 방향을 쫒아서 경주를 하면 아무리 잘 뛰어도 1등부터 360등까지 있죠. 그런데 남들 뛴다고 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뛰고 싶은 방향으로 각자가 뛰면 360명 모두가 1등을 할 수 있어요.”

출처: https://youtu.be/Q2BHEQpZAMs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모두가 1등이 될 필요는 없다고. Best One 이 아니라 Only One이 되라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면 성공할 수 있다고.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비유처럼, 직관적으로 눈앞에 그 이미지를 펼쳐 보여주지는 못했다.  360도 뻗은 각 방향을 향해 저마다의 길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향하는 사람들에게 옆 사람과의 경쟁은 무의미하다. 모두가 1등이다. 명쾌하다.


이어령 선생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영상으로 보여주는 광고가 있다. 2014년 온에어된 리쿠르트의 TV광고다. 그의 ‘모두가 1등론’이 이렇게 수준높은 크리에이티브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영상은 마라톤 시합의 출발장면에서 시작한다. 총소리와 함께 수많은 이들이 한 방향을 향해 달려 나간다. 사람들과의 경쟁 속에서 힘들게 달려 나가는 주인공의 독백이 이어진다.

오늘도 계속 달린다.
누구나 러너다.
시계는 멈출 수 없다.

(중략)

라이벌과 경쟁하면서
시간의 흐름이라는 외길을
우리는 계속 달린다.
더 빠르게.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그 앞에 미래가 있다고 믿으며.
반드시 목표가 있다고 믿으며.

인생은 마라톤이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던 광고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명제에 의문을 가진 주인공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런데…정말 그런가?

그는 외친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누가 정한 코스이며,
누가 정한 목표란 말인가?

이 광고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공중에서 본 풀샷이었다. 주인공이 먼저 자신만의 방향으로 달리며 물꼬를 트자, 한 방향을 향해 달리던 청년들도 저마다의 방향으로 흩어져 자신들의 길을 향하기 시작한다.

어느 청년은 궤도를 벗어나 골목길을 달리고, 누군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누군가는 숲을 달려 바다에 닿았고, 또 다른 선수는 하늘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한다. 설원을 달리는 선수, 파티를 즐기는 선수, 교실에서 공부하는 선수까지 모두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선택이다. 이것이 바로 360도 모든 방향으로 각자의 길을 달려 모두가 1등을 하는 모습 아닌가.

길은 하나가 아니다.
목표는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수만큼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던지는 마지막 한마디.

全ての人生が素晴らしい。
모든 인생이 훌륭하다.

사실 중요한 것은 ‘인생이 마라톤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모든 인생이 다 훌륭하다는 그 한마디이다. 인생은 마라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가끔은 몇십 킬로미터를 묵묵히 달려야 하는 구간도, 때로는 100m를 전력질주 해야 할 구간도 나오는 예측불가의 게임이다. 줄 지어 선 순서대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는 의미 그대로 가치가 있는 게임. 그 길을 거쳐가는 모든 인생과 모든 도전이 박수받아 마땅하다.


이 광고는 카피의 짜임새 콘티의 완결성, 그리고 영상의 표현까지 흠잡을 데 없는 수작이다. 무엇보다, 묵직한 메시지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시각화한 크리에이티브가 돋보인다. 그리고, 서비스의 우수성을 조급하게 외치기보다, 언제나 자신들의 철학을 긴 안목으로 형상화하는 리쿠르트의 클래스에 감탄하게 된다.

아래 영상을 꼭 보시길 권한다. 이것은 2분짜리 광고가 아니다. 한편의 인생론이다.

TV광고 보기: https://brunch.co.kr/@gounsun/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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