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수집(4) 사랑은 먼 옛날의 불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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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이롯트 기업 PR (2012)

名前は親が子供に送る、
初めての手紙なのかもしれない。

이름은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첫 편지 일지 모른다.

어쩌면 이 카피 한 줄 때문에 제 삶의 궤적이 바뀌게 됐습니다.  일본어를 다시 공부하던 초기에 우연히 발견한 광고입니다. 카피를 번역해 봤는데 뜻도 너무 좋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나서 페이스북에 이 광고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다듬어 쓰면서 저의 브런치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https://brunch.co.kr/@gounsun/13) 그렇게 시작한 일본카피 소개글이 이어져서, 여러 매체에 기고의뢰를 받게 됐고, 이 글들이 모여 2024년 봄에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광고인 외에 작가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 카피입니다. 이 카피를 쓴 분을 나중에라도 만나면 식사대접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연아, 재석, 효리, 태희, 동건, 호동, 효정, 미현, 흥민, 찬호… 이름마다 부모님의 마음과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건강해라, 빛나라, 나라를 지켜라, 똑똑해라, 예뻐라.

그 뜻이 거창하든, 소박하든, 그 이름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는 평생 부모님이 보낸 첫 편지를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2. 요코하마은행 TV광고(2016)

生まれただけで、
最高なのだ。

태어난 것만으로
최고인 거야

아이는 존재 자체로 정말 감사한 선물입니다. 광고의 카피 그대로 ‘태어난 것만으로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점점 잃어가는 건 아이가 변하기 때문일까요, 부모가 변하기 때문일까요.

요코하마 은행의 TV광고에는 부모들이 찍어 준 평범한 아이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영상은 아이의 존재 자체로 행복해했던 저의 과거, 그리고 바라는 게 많아지면서 아이와 조금씩 멀어지는 저의 지금을 생각하게 합니다. (https://brunch.co.kr/@gounsun/11)

동영상 보기:

3. 산토리 뉴올드 TV광고(1996)

恋は遠い日の
花火ではない。

사랑은 먼 옛날의
불꽃이 아니다

1994년부터 온에어된 산토리 위스키 뉴올드의 전설적인 캠페인 <Old is New> 시리즈의 광고 카피입니다. 늘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던 중년의 남녀에게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설레는 순간들이 광고에서 그려집니다. 당돌한 부하직원의 농담 아닌 농담. 연하의 단골 청년이 건넨 뜻밖의 고백… 뜨거운 청춘이 지나간 것 같은 이들에게도 다시 타오를 수 있는 불씨가 남겨져 있습니다. 산토리 뉴 올드는 바로 그런 세대를 위한 위스키라는 것이죠.

이 카피는 2011년에 발간된 “일본의 카피 베스트 500″이라는 책에서, 일본 광고인이 뽑은 ‘일본 광고 60년사의 베스트 카피’ 9위로 선정됐습니다.

부적절한 사랑을 연상시킬 수도 있는 소재인데, 아슬아슬하게 그 선을 넘지 않았고, 그래서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 영상에는 한글자막과 함께 여러 편의 시리즈들중 4편이 이어집니다. 

동영상 보기:

4. 홋카이도 식량사업연합회 신문광고(1977)

しょせん、エレベーター人間は
敗北する。

결국 엘리베이터 인간은
패배한다

‘엘리베이터 인간’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어서 오래전 메모해 두었던 카피입니다. 홋카이도 식량사업연합회가 판매하는 수정미(水晶米)라는 쌀 브랜드를 위한 광고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수정미가 ‘한 알 한 알 소중히 재배하여 만든 쌀’이라는 컨셉으로 오랫동안 광고를 해 온 것을 감안할 때, 단계마다 노력을 제대로 들이지 않고 무언가를 쉽게 얻으려고 하는 사람을 ‘엘리베이터 인간’이라고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바디카피를 읽어보면, 평소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과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 차이가 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밥 든든히 먹고, 계단을 이용해보라는 충고와 함께.

이 카피를 읽으면서, 오늘 하루라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올라가 볼까 생각이 들지만 한 번도 실천해보지 못했습니다. 아, 저는 결국 ‘엘리베이터 인간’인 건가요.

5. 나고야 철도 메이테츠 사쿠라 프로젝트  OOH (2019)

“暗記した言葉は、いつか忘れる。
応援された言葉は、 一生忘れない。

외운 말은 언젠가 잊는다.
응원 받은 말은 평생 잊지 않는다.

신기하죠. 그렇게 외우고 또 외웠던 영어단어, 제2외국어 문법, 수학공식은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십몇 년 전 누군가 해준 따뜻한 응원의 한마디는 오랫동안 기억이 납니다.

이 카피는 철도 회사가 수험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만든 광고의 문구입니다. 나고야철도가 덴츠메이테쓰커뮤니케이션즈와 함께 한 ‘메이테츠 사쿠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나고야 역내에 직소퍼즐로 만든 옥외광고를 설치한 것입니다. 각 퍼즐조각에는 수험생들을 격려하는 다른 문구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이미지에는 지하철에 안에서 잠깐 시간을 내 공부를 하는 수험생의 모습과 이 카피가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응원의 말 한마디를 건네 보고 싶어 지게 만드는 카피입니다.

인스타그램 계정 : https://www.instagram.com/qy.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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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영
글쓴이

정규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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