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잘한다는 소리를 제법 듣는다. 전문 드라이버처럼 스킬이 뛰어나다는 게 아니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운전해서 동승하기 좋다는 이야기다. 신호도 비교적 잘 지킨다. 비결은 따로 없다. 소심한 성격이라 넉넉하게 시간 여유를 두고 출발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 보통 예상 시간보다 최소한 30분 정도 일찍 출발한다. 그러니 운전이 여유롭고 차선 양보도 잘 해주게 된다. 덕분에, 도로에서 크고 작은 마찰이나 갈등이 적은 편이다. 운전하며 얼굴 붉힐 일이 거의 없다. 그런 나지만, 가끔 운전을 하다가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불쾌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앞 차의 뒤 유리창에 붙은 아이 동승 스티커 때문이다.
이미지출처: https://v.daum.net/v/ij1lj5VsVv
“차 안에 소중한 내 새끼 있다!!” 잔뜩 인상을 쓴 캐릭터 이미지 옆에 ‘조심하숑!’ 이라고 덧붙여놓은 스티커가 오늘도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예전에는 “아기가 타고 있어요” 정도 수위의 스티커가 대부분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뒤차에 협박성 메시지를 전하는 스티커를 붙인 차량이 많아졌다. “까칠한 아기가 타고 있어요!” 정도는 그나마 귀여운 편이다. “빵빵금지” 등 차 안에서 아기가 자고 있으니, 경적을 울려 깨우지 말라고 요구를 하기도 하고, “지구 끝까지 쫓아가겠다”거나 “가만두지 않겠다”며 보복을 다짐하는 스티커도 보인다.
이미지 출처: https://m.joongdo.co.kr/view.php?key=20170309000019365
원래 아기가 타고 있다는 스티커는 타인들에게 조심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태우고 가니 조금 천천히 운전해도 이해해달라는 부탁의 의미로 붙인 경우가 많았다. 또는, 유사시 아이를 구해달라는 의미로 붙이기도 했다. 어느 경우든 타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지, 도로 한복판에서 내 아이와 이동 중이니 심기를 건들지 말라고 하는 의도가 아니었다.
자료에 따르면 아기 동승 표지판의 시초인 “BABY ON BOARD”는 1984년대에 유아용품 전문업체인 Safefy First가 자사의 아기용품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공익적 내용과 연결한 옥외광고였던 셈. 1985년에 미국에서 인기를 끌며 널리 퍼졌고, 실제 안전운전에도 도움을 주는 효과도 있었다고 알려졌다. (중앙일보 2017년 10월 6일 자)
그냥 아기가 차 안에 있다고 하면, 보통의 상식을 가진 운전자라면 배려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내 아이와 운전 중이니 알아서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메시지를 본다면 어떨까. 온라인상에는 “아이가 타고 있어요 극혐”이라는 제목의 사진과 게시물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런 표지를 보면 짜증 나서 양보도 더 안 해주고, 일부러 거칠게 대한다는 댓글들이 줄지어 달려있다. 단순한 재미로 붙였을 수도 있지만, 유머 감각보다는 까다로운 성격을 드러내며 가족과 자신을 더 위태롭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스티커는 또 어떤가. “미래의 판검사가 타고 있어요.” 최근에는 “미래의 의사 선생님이 타고 있어요”도 봤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자녀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라’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판매되고 있다. “애를 깨우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보다는 나아 보인다. 아이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 스티커를 보는 시선도 갸우뚱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미지 출처 : https://quasarzone.com/bbs/qb_humor/views/1737008
일단, 자식이 판검사나 의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차에 붙여 놓는 것이, 자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지 모르겠다. 차에 탈 때마다 자녀들이 “그래, 나는 판검사가 될 거야!”, 혹은 “난 미래의 의사야!”라며 힘을 낼 지 모르겠지만, 그 차 뒤에서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생판 남인 운전자들에게 부모의 바람을 알려주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판검사나 의사가 될 귀한 자식이 타고 있으니, 알아서 조심해서 다니라는 것일까? 그런 스티커를 볼 때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초엘리트가 될 사람들이 타고 있으니, 내가 혹시라도 불편을 끼치지 말아야겠군” 하며 조심스럽게 피해 갈 운전자는 얼마나 될까. 이 스티커도 단순히 재미로 붙였을지 모르겠지만, 부모의 미래지향적 사랑보다는 통속적인 욕망만 전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볼 일이다.
교통수단에 태운 사람에 대한 시선을 다르게 가져볼 수는 없는 것일까. 문득, 1990년대 초반에 온에된 JR큐슈의 TV 광고가 생각났다. 광고영상은 감성적인 음악과 함께 어스름한 새벽을 뚫고 지나가는 기차를 멀리서 원신원컷으로 보여준다. 광고영상이 끝날 무렵, 심플한 카피 한 줄이 정립된다.
愛とか、勇気とか、
見えないものを乗せている。사랑이라든가, 용기라든가,
보이지 않는 것을 태우고 있다.
기차에 실려 있는 것은 승객과 화물뿐이 아니다. 성공을 기약하며 먼 길을 떠나는 젊은이의 꿈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설레는 길을 나선 연인의 마음도 타고 있을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나선 어느 가장의 굳은 다짐도 함께 있을 것이다. 이 한마디가 붙는 순간, 열차는 더 이상 사람과 짐을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시키는 장치가 아니다. 사람들의 꿈과 미래를 중심에 둔 수많은 우주를 싣고 달리는 존재가 된다.
JR큐슈 인쇄광고 (출처: TCC카피연감 1993)
이 카피를 쓴 사람은 나카하타 다카시(仲畑貴志 1947~ )이다. 일본 광고계에서는 카피라이터의 신(コピーライターの神様)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원로 광고인이다. 도쿄카피라이터스 클럽의 카피연감 데이터베이스에는 그가 1970년부터 쓴 카피 834편이 등재되어 있다. 평생 쓴 개수가 아니라, 우수 광고 카피로 선정된 것만 800편이 넘는다는 뜻이다. 카피라이터의 신이라는 별명이 과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일본의 카피 베스트 500(日本のコピーベスト500)이라는 책은 이 카피를 전후 60년 일본의 100대 광고카피 중 하나로 꼽았다.
이 카피를 소개한 자료들을 찾아보니, 그가 쓴 카피는 그저 기업이미지를 위해 소비자에게만 발신한 메시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JR큐슈의 직원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의미도 있었다. 기차에 태우는 것이 일정한 운임을 낸 승객과 화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직원들의 마음가짐과 행동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JR큐슈의 직원들은 승객들마다의 마음을 소중히 생각하며 기차를 운행했을 것이다.
과하게 해석해 보긴 했으나, 스티커를 붙인 각자의 차량에도 분명 저마다의 사연은 있을 것이다. 쉽게 ‘자기중심적이다’, ‘통속적인 욕망을 드러냈다’고 비난할 수 없는 스토리와 마음이 운전대마다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니, ‘차 안에 내 새끼가 있다’라거나 ‘미래의 판검사가 타고 있다’는 스티커 대신 다른 문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이 보고 ‘우리 엄마와 아빠는 날 위해 타인을 위협할 수 있다’거나, ‘내가 출세하기를 원한다고 길거리에 떠벌리고 다니는구나’라고 오해하지 않을 수 있는 문구면 좋겠다. ‘사랑이라든가, 용기라든가’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자녀들과 다른 운전자에게 심어줄 수 있는 것이면 더욱 좋으리라.
* 이 글은 AD-Z (광고계 동향) 7/8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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