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이 스며든 화성의 옛 양조장, 닫혀 있던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 오래된 벽돌은 기억을 토해내고, 술 향기는 시간을 불러옵니다. 그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세월이 쌓아 만든 이야기의 저장소였습니다. 많은 브랜드가 ‘콘텐츠’를 외칠 때, 국순당은 ‘공간’을 선택했습니다. 복제가 쉬운 시대에 브랜드가 지닐 수 있는 유일한 원본은 바로 지나온 시간과 그 시간이 스며든 공간입니다. 국순당이 18년간 술을 빚던 양조장을 다시 연 ‘박봉담’은 술이 아니라 기억을 빚어낸 성지입니다. 우리를 초대하는 것은 제품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입니다.

⏳ 시간을 짓는 건축
지난 10월 2일, 국순당은 경기도 화성의 옛 양조장을 복합문화공간 '박봉담'으로 재탄생시키며 ‘헤리티지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1986년부터 2004년까지 백세주 신화를 만들어낸 심장 같은 공간입니다.
투어는 산책처럼 시작됩니다. 곳곳의 QR코드를 스캔하면 전문 성우가 아닌 국순당 임직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꾸며내지 않은 진짜 목소리로 듣는 옛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브랜드의 시간과 마주합니다. 다섯 구역에서 스탬프를 모아 ‘누룩이’ 캐릭터를 완성하는 경험은, 흩어진 역사의 조각을 직접 이어 붙이는 행위입니다. 소비자는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공저자가 됩니다.

🔑 기억의 문을 여는 힘
그렇다면 왜 브랜드는 공간에 집착하는 걸까요? 단순한 레트로의 변주일까요? 아닙니다. 광고가 힘을 잃은 시대, 브랜드가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진짜 이야기’가 담긴 공간입니다. 애플의 플래그십 스토어, 현대카드의 라이브러리가 그렇듯, 브랜드는 이제 ‘기억의 독점권’을 노립니다. 박봉담은 국순당이 내놓은 가장 진솔한 자기소개서이자, 민족 고유의 술 문화를 되살리려는 신념을 증명하는 공간입니다.

🌏 지역과 함께 숨 쉬는 성지
일본은 이미 양조장 투어를 지역 문화와 관광의 동력으로 키워냈습니다. 지역의 자원과 전통을 브랜드 경험으로 연결하는 방식은 단순 체험을 넘어, 지역 경제를 순환시키는 전략 자산이 됩니다. 국순당의 박봉담 역시 과거를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로컬과 손잡아 새로운 이야기를 빚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박봉담에서 경험하는 것은 단순한 투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18년의 시간을 버텨낸 철학과 자부심입니다. 소비자는 어느새 방문객을 넘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순례자가 됩니다. 브랜드가 성지를 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기억을 공유하고, 시간을 함께 버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시대의 성지는 어디에서 열릴까요?
<이미지 출처: 국순당 공식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