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스치는 눈빛에 관심을 가지고, 짧은 대화나 작은 몸짓에서도 호감을 느끼며, 극심한 호기심의 기간을 거쳐, 은은한 애정의 고요한 기간을 맞이한다. 인연마다 그 과정은 제각각이지만 우리 모두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보며 주인공 주호진과 차무희가 사랑에 빠지는 결정적인 순간을 찾으려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사랑 이야기에 그 결정적인 순간이 없다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다.


나도 모르는 그 사이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용기 내어 두 발자국 앞으로 나서기도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조심스레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기를 반복한다. 열심히 발을 굴렸지만 결국 내려다보면 시작한 그 자리에서 몇 걸음 가지도 못했다.


가지고 싶어 다가가려는 ‘행동’과 거절의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언어’들이 뒤섞여 밀고 당기는 일들이 벌어진다. 용기 내어 마음을 전하는 ‘말’을 하다가도, 잃고 싶지 않아 어느 순간 그만두고 도망을 가버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과거들이, 불현듯 다가온 불안감들이 더해져 서로를 알아가는 연인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항상 말과 행동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초조하고 철없는 아이의 마음이 된다. 설레지만 불안하고, 만나고 싶지만 피하고 싶고, 꽉 쥐고 싶지만 손을 놓아 버리고 싶은.


그래서 언어가 아니라 사랑이 문제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보면 언어가 달라도 대화에 문제가 없는 장면은 숱하게 나온다. 바람피운 남자 친구가 만나는 일본인과 대화하는 차무희는, 일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지만 본인이 셋의 관계를 오해했음을 직감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인 배우 히로가 차무희의 표정과 몸짓만을 보고도 본인에게는 기회가 없음을 알게 된다. 심지어 중간에 튀어나온 도라미의 도발적인 말과 행동이 그를 헷갈리게 만들었지만.


문제는 언어가 아니라 사랑이다. 둘의 직업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주호진은 통역사다. 언어를 전달하는 것이 직업이고, 그 일을 매우 잘하는 사람이다. 차무희는 배우다. 비록 무명에서 시작했지만 감독과 작가의 이야기를 본인만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고, 결국 세계적인 배우가 된다.


하지만 그들 모두 숨기고 살아간다. 히로는 안경을 쓰고 알러지를 걱정하는 예민한 본인의 진짜 모습을 호텔 방안에 감췄다. 차무희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불안함을 도라미라는 이름으로 어릴 적 살던 집안에 꼭꼭 숨겼다. 주호진은 확실하고 정확한 것만 입 밖으로 꺼내는 망설임을 통역사라는 직업으로 감췄다. 우리도 모두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킬까 싶어 이런 마음을 감춘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언어들이 서로에게 흘러나온다. 원치 않을 때 갑자기 흘러버려, 숨고 싶게 만드는 차무희의 콧물처럼.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어린아이가 되어 그들만의 서툰 언어로 대화를 한다. 각자가 숨겨놓은 그것들 때문에, 마음과 다른 말과 행동들이 뒤섞이면서 벽을 만든다. 벽을 넘어 이야기를 하니 서로의 언어가 제대로 해석되지 못한다. 방어기제다. 가지고 싶지만 또 잃고 싶지는 않아서, 밀었다가 당겼다가를 반복하며,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오해를 만들어 낸다. 결국 또 사랑이 문제다.


차무희와 주호진은 쿨하지 않아서 좋았다. 서로의 마음과 다른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쉽게 뒤돌아서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들은 멋있으려고 하지 않아서 좋았다. 가끔 다가가고 가끔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지만, 어렴풋한 진심의 단서를 놓지 않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다가가서 기뻤다.


이들에게서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이 겹친다. 아침에 다퉜지만 점심 즈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즐겁게 함께 하기를 반복하는, 서로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이들의 모습. 쉽게 상상할 수 있듯 어린아이들은 언어가 달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가끔 다투고, 오해하고,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겠지만,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함께 하는 것을 기꺼이 그만두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들만의 순진한 시간이 만들어진다. 드라마 속 주호진과 차무희의 시간처럼.


이 드라마를 보고 생각했다. 젊은 연인들이 너무 쿨하거나 멋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의 ‘언어’가 아니라 그 너머의 각자가 숨겨놓은 것들을 들여다보면, '썸(띵)'이 아니라 더 깊은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당신들만의 순진한 시간을 기꺼이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