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지옥의 방



1.1 - 회사에 맞지 않는 인간




신입사원 초인후


2010년 3월, 어느 대강당이었다.
JJ미디어 그룹 공채 채용설명회.


천장 조명이 밝았고,
의자에는 번호표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에 앉아 있었다.


무대 위 스크린에
커다란 글씨가 떴다.


<JJ미디어 그룹 2010년 상반기 공개채용〉


사람들이 노트북을 열고 펜을 꺼냈다.
설명회 특유의 공기가 흘렀다.
기대감과 긴장감이 섞인 공기.

인사팀 직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 기수 채용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 모집 직무 : 공통직무 ]


순간, 내 손이 멈췄다.


“공통.. 직무? 저게 뭐지…?”


설명회에 온 사람들은 술렁술렁했다.

설명은 계속됐다.


“공통직무로 입사 후,
확정된 부서로 배치될 예정입니다.”


요즘 순환근무, 인재 적성배치 같은 말들이 많이 나올 때였다.

내 노트에는 이미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마케터.’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입사하고 내가 오래 꿈꿔온, 마케터가 되는 거야!



*****



그리고 마침내 그 자리는 나의 것이 될 수 있었다.

한 달에 걸친 신입사원 입문 교육이 끝을 향한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같은 교육장에 앉아

같은 말을 들었다.


“JJ그룹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JJ그룹의 핵심 가치는요?”


강사는 질문을 던졌고,

우리는 동시에 대답했다.


“도전, 창의, 인재!”


누군가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였다.


점심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복도에서도

동기들끼리 입을 맞췄다.


“야, 비전이 뭐였지?”

“미션부터 말해야지.”


어느 날은

앞에 나가서 발표를 시켰다.


“신입사원 초인후.”


내 이름이 불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을 등지고 섰다.


“JJ그룹의 존재 이유는…”


나는 외운 문장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말했다.


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리고 웃으며 덧붙였다.

“이제 뼛속까지 진짜 우리 그룹 사람이네요.”


그 말에

강의실에서 웃음이 났다.

나도 같이 웃었다.


그 한 달 동안

회사의 비전과 미션, 핵심가치는

내 머리를 지나 몸까지 새겨졌다.


건드리기만 해도

자동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그렇게 한 달에 걸친 신입사원 입문 교육의 끝이 다가왔다.

내 피에서 JJ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입문 교육 마지막 날이었다.

모두가 고대하던, 부서 배정 발표의 시간.

이곳에서 발표하는 팀으로 모두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된다.


“이제 부서 배치 발표를 하겠습니다.”

교육팀 담당자가 말했다.


“호명되면 앞으로 나와서

확인하고 수료증 받아 가세요.”


첫 번째 이름이 불렸다.


“JJ제당 김진수, 식품연구팀입니다.”

“JJ푸드 최명희, 해외영업입니다.”


이름이 불리며 한 명씩 앞으로 나갔고,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다.


“오, 대박. 나 원하는 대로 됨!”

“난 2지망으로 됐네.”


나는 떨렸지만, 어떤 변수가 생겨도 괜찮다.

내가 적은 것들 모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으니까.


‘1순위 마케팅.’

아니면 2순위인 홍보,, 그리고 3순위인 기획까지도.


머릿속에서는

여러 번 떠올렸다.

호명되는 그 순간을.


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동기들에게 뭐라고 말할지까지도.


그리고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다.

“JJ엔터테인먼트, 초인후.”

"!"


“인사팀입니다.”

“???????”

순간,

강의실 안이

조금 조용해졌다.


박수가 아주 잠깐 늦게 나왔다.


나는 마케팅에 가게 될 거라고

동기들에게 한 달 동안 말 했었는데.

인사라..니.


나는 1지망 마케팅을 썼는데?

2지망은 홍보, 3순위는 기획이었다.


“미디어 그룹에서 올해

마케팅, 홍보, 기획 직무는
뽑지 않습니다.”


나의 얼굴은
시간이 멈춰 있었다.

나는 슬라이드의 글자를
한 번 더 읽었다.


인사팀 초인후


그해 JJ엔터테인먼트는
내가 원하는 자리를 뽑지 않았다.


내 노트에는
이미 다른 단어가 적혀 있었다.


‘마케터.’


하지만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아니, 선택처럼 보이는 하나뿐이었다.


발표가 끝나고
모두가 일어났다.

나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마케터가 되고 싶었다.
그 생각은 여전했다.


하지만 나의 시작은 그게 아니었다.

꿈은 그대로였고, 문은 하나였다.


그렇게 하나뿐인 문을 통과한 뒤,
나는 인사팀 신입사원이 되었다.

나의 첫 사회생활을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출근 - 신입의 아침은 이것으로 시작된다


출근 첫 날.


나는 회사에 누구보다 일찍 도착했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몸에 밴 습관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신문을 보는 것.


신문 안에는
그날의 세계가 들어 있었다.
정치, 경제, 산업, 문화.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세상의 무엇이 흔들리고 있는지.

나는 그것이 세상을 아는 ‘힘’이라고 믿었다.


출근 후 내 자리에 왔다.
아직 사람들이 출근하지 않은 시간.
나는 종이신문을 펼치고
조용히 앉아 세상을 읽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만이 함께했다.


“신입이 벌써 왔네?”

고개를 들자
팀장님이 서 있었다.


남팀장님.

내가 온 인사부서의 팀장님.


출근 시간보다 훨씬 이른데도
정장을 단정히 입은 모습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급하게 일어나 인사했다.
신문을 반으로 접은 채였다.

남팀장이 신문을 한 번 훑어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요즘은 다들 지하철에서 보지 않나?”

“아, 저는…
예전부터 신문 보는 습관이 있어서요.”


잠깐의 침묵.
남팀장이 웃었다.


“그런데,

신입이 다 보이게 신문 보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그리고 아주 작게, 혀를 찼다.

쯧.


그 말에는
화도, 웃음도 없었다.
그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만 있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


그 자리에서 신문을 재빠르게 접었다.

그리고 남팀장님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조용히 빈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펼쳐서 남은 신문을 빠르게 마저 봤다.

다만,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게.


맨 끝 회의실,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공간

신문을 펼쳐도 보이지 않을 자리.

그것이 내가 첫 회사생활에서의 대화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첫 번째 시그널이었다는 걸.





입사 첫날, 점심 식사 - 그날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불이 모두 켜지고,

사람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한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사무실.


사무실은 새 가구 냄새와

프린터 토너 냄새가 섞여 있었다.
신입 명찰은 아직 목에 어색했고,

와이셔츠 깃은 조금 빳빳했다.


나는 마주치는 분들마다

“인사팀 신입 초인후입니다”라고

인사하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떨린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첫날의 점심.

남팀장님, 조대리님 그리고 나.
셋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였다.
조대리님은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이다.

사수? 윗사람? 윗분?

남들이 물어보면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식당은 회사 근처의 퓨전 중국집이었다.
메뉴판에 사진이 붙어 있었고,

철판 스테이크 사진이 새것처럼 유독 크게 박혀 있었다.

그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점심에는 오래 걸릴 수 있어 양해부탁드립니다.'


(남팀장)

“이 집에서 특이한 메뉴가 생겼네?”

(조대리)

“오, 신기하네요. 여기 가끔 새로운 거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인후는 뭐 먹을래?”


나는 메뉴판을 보며 생각했다.

‘첫날인데… 잘 보여야지.’
‘신입이면 밝게, 당당하게.’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저! 철판 스테이크로 할게요.”


그 순간, 메뉴를 보던 조대리님의 손이 잠깐 멈췄다.
남팀장님은 메뉴판을 보며

고개를 들지도 않고 나지막이

“철판 스테이크, 하나” 하고 짧게 말을 했다.

조대리님은 살짝 웃었다.

반 박자 늦게.

그 웃음이 묘했다.

무언가를 확인한 뒤에 나오는 웃음 같았다.

그리고 두 분의 메뉴는 다음과 같았다.


남팀장은 볶음밥.
조대리는 짜장면.


두 분의 식사보다 한.참. 후에

지글지글 소리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을 때 분위기가 조금 차가웠다.


오늘따라 철판 스테이크가 묘하다.

두 분의 식사는 이미 절반이나 드신 타이밍이었다.


뭔가 이상한 선택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첫날의 긴장 탓인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국룰 질문



스테이크를 써는 소리, 볶음밥 숟가락 소리.
그 사이에 남팀장이 툭 던지듯 물었다.


“맛있나?”

“네. 맛있네요!”

“그런데 자네, 꿈이 뭔가?”


나는 순간 포크를 멈췄다.
‘아… 이거구나.’


신입 연수 때 들었다.
“세상 모든 팀장님들은 신입에게 묻는 것이 있다.

바로 꿈을 묻는 것. 그것은 국룰(국가룰 같은 필수적인)이다.”


다들 웃으며 지나갔던 말,

그것이 나에게 일어나고야 말았다.


나의 주저함을 느끼셨는지

남팀장님이 다시 말했다.


“그냥 편하게 말해봐.

난 솔직한 사람을 좋아해.”


나는 잠깐 망설였다.
'솔직해도 되나?'
'솔직하라면서 사실은 솔직하지 말라는 의미 아닌가?'

'처음부터 솔직한 사람이 되면 차라리 괜찮지 않을까?'


아직 이런 건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다.

이번 순간은 정면돌파다.

나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럼.”


조대리님은 그때도 웃었다.
반 박자 늦게.

그날, 나는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선언



“제 꿈은요…”

나는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사실, 질문을 받자마자 떠오른 답이 있었다.
“좋은 인사 담당자가 되겠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답.
하지만 솔직하라는 말에 용기를 내어

속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회사에서 제 이름으로 된 일을
하나 제대로 해보는 겁니다.”


남팀장님이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바뀌었다.
호기심인지, 경계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게 어떤 일을 말하는 거지?”


나는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이거 누구 거야?’ 물으면
‘아, 그거 초인후가 한 거예요.’
그렇게 불리는 마케터요.”


식탁 위가 조용해졌다.
지글지글 스테이크 소리만 살아 있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조대리님의 젓가락이 잠깐 멈췄다.
남팀장이, 아주 짧게 숨을 내쉬었다.


“조대리 …우리 인사팀 맞지?”

“마… 맞죠.”


맞은편의 두 분은 짜장면과 볶음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몰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용기 있는 신입’이 아닌
‘위험한 신입’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위험한 신입


며칠 뒤, 대표님과의 첫 미팅이 있었다.
왕정아 대표님.


이 씬에서 유명한 여성 대표님이시다.

이분에 대해 인터뷰도 봤고, 얼굴도 익혀두었다.


그날은 인사팀과 재무팀, 경영기획팀까지

경영지원실 전체가 대표님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회의실 공기가 달랐다.
사람들이 앉는 순서, 물컵 놓는 위치,

노트북 켜는 타이밍까지 다 계산된 것처럼 느껴졌다.


왕정아 대표님은 눈빛이 강렬했다.

그런데 웃는 얼굴 속에 감춰진 포스가 느껴졌다.
웃으면서도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그날은 이제까지의 업무현황을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부서별로 보고와 대화가 오간 후에 인사팀 차례가 되었다.

대표님이 말씀을 꺼냈다.
“그래서 인사팀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모두가 침묵했다.

침묵은 준비된 침묵이었다.
이런 질문엔 누가 답할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했다.

남팀장님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려고 했다.


“제가 말씀드리면,”

"잠깐만요."

대표님이 남팀장을 가볍게 끊었다.
그리고 내 쪽을 봤다.


“신입분 오늘 처음이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괜찮으니까 말해봐요.”


공기가 바뀌었다.
그 무거운 공기 속에 던져졌다.


‘여기서 뭐라고 말해야 하지?’
‘말 안 하면 무능해 보이잖아.’

내 머릿속에서 계산이 돌아갔다.

어제 그 ‘쯧’소리와 함께 남팀장님의 멘트도 다시금 떠올랐다.

“난 솔직한 사람이 좋아.”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입을 열었다.


“저는 인사팀이 회사에서
제일 솔직해야 하는 부서라고 생각합니다.”


어색한 웃음이 아주 작게 흘렀다.
누군가의 목이 ‘크흠’ 하며 말을 꺼냈다.

남팀장님이었다.


“저희 부서는 앞으로는,”

“남팀장 말고 신입분 말을 계속 들어볼까요?”

왕대표님의 눈길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불편한 이야기라도 제일 먼저 해야 하고요.
회사가 잘못 가는 걸 알면
누구보다 먼저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말 없이 그냥 끄덕였다.
그게 더 무서웠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남팀장님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조대리님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좋아요. 신입, 이름이?"

"초인후 입니다."

"이야기 잘 들었어요. 기억할게요.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할까요?”


대표의 말은 따뜻했지만
회의실 공기는 왠지 모르게 차가웠다.


그때는 몰랐다.
나는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안에서

조금씩 ‘위험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걸.


평가의 시작


미팅이 끝나고 복도도 하나 둘 빠져나간다.

나는 회의에서 있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사람들을 뒤따라 나갔다.

그때 조대리님이 내 옆에 다가왔다.
조대리는 특이하게도 걸을 때 소리가 잘 안 난다.
어느 순간 옆에 와 있다.


조대리님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번에. 우리 팀에. 높으신 분이 들어왔네.”


나는 웃어야 하나,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망설였다.
그 반응을 보고 조대리님은 웃었다.
반 박자 늦게.

“아까 그 말. 좋은 뜻인 건 알겠는데…
회사에서 솔직한 말은 조심해야 돼.”

“…네.”

“티 나게 하지 말라고.

특히 신입은 튀면, 안 돼요.”


그 자리에서 나는 그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알게 됐다.
이 회사에서 ‘틀린 말’보다
‘불편한 말’이 더 위험하다는 걸.


그리고 내가 가진 가장 큰 티가 무엇인지도.

나는 아직,

내 생각을 숨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찾아온 나의 회사생활 시작은

충격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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