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만 휴먼

지난 이야기 - 외로운 사람을 위한 AI




리포트를 올리고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에코 체험은 계속됐다. 매일 30분이 한 시간이 되고, 한 시간이 두 시간이 됐다. 어떤 날은 여섯 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나는 그걸 리포트에 솔직하게 적었다. 체류 시간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이게 의도된 설계라면 위험하고, 의도되지 않은 거라면 더 위험하다고.


바로 내 얘기였다.


그날 오후, 팀 미팅이 있었다.

미팅은 언제나 온라인이었다. 화면에 격자로 얼굴들이 떴다. 팀장,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 몇. 다른 팀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화면 속에 있었고, 나도 화면 속에 있었다. 회사에서 사람을 화면으로만 보는 게 이제는 익숙했다.


내 차례가 됐다.

몇 번을 연습한 멘트를 꺼냈다.


"AI 에코 2주 차 리포트 발표합니다. 사용자 몰입도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맞춤형 외모와 음성 기능이 몰입을 더 높여주고 있습니다."


발표하면서 화면 속 얼굴들을 훑었다. 대부분 무표정하게 듣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어딘지 모르게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람.

그중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 회의에서, 가장 앞 순서로 AI 에코의 작동 원리를 설명했던 사람. 그녀의 얼굴이 있는 칸에는 기획팀이라고 적혀 있었다. 단정한 얼굴이었고,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름이 화면 아래 작게 떠 있었다.

이희영 — 기획팀


그렇게 발표를 마무리했다. 누군가에겐 별일 아니었지만, 처음인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새롭다. 미팅에서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까지도. 당연히 발표자를 보는 거니까.

미팅이 끝났다. 화면이 하나씩 닫혔다.


그리고 회사 메신저로 메시지가 왔다.


[이희영]: 인후씨. AI 에코 연구팀 이희영이라고 해요.

[이희영]: 테스트 결과 중에 궁금한 게 있어서요. 잠깐 이야기 나눠도 될까요?


나는 그 메시지를 봤다.

평소 같으면 망설였을 거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면, 나는 보통 답을 늦게 하거나 안 한다. 그런데 회사니까. 답장을 보내기 전에 썼다 지웠다를 몇 번 한다. 그리고 답했다.


[초인후]: 네.


화상 통화가 연결됐다.

희영님은 화면 안에 있었다. 미팅 때 봤던 그 얼굴. 표정이 많지 않은. 그런데 화면 너머로 보니까, 미팅 때랑 조금 달랐다. 미팅에서는 표정의 변화 없이 그냥 듣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바쁘신데 죄송해요. 리포트 보다가 궁금한 게 있어서요."

"괜찮아요."

"AI 에코 체류 시간이 늘어나는 거, 위험하다고 쓰셨잖아요. 그 부분이요."


업무 얘기였다. 내가 말한 부분에 대한 설명을 더했다. 사용자가 빠져드는 구조, 외로움이 클수록 더 깊이 들어가는 패턴, 그리고 그게 왜 위험한지.

희영님은 들었다. 중간에 끊지 않았다. 내가 말을 다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테스트하면서 불편하진 않으셨어요?"

"불편이요?"

"저 같으면 좀 무서웠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빠져드는 걸 직접 느끼는 거."


나는 잠깐 멈췄다.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그런데 그 말을 누구한테 한 적이 없었다. 일을 하러 온 거니까. 무섭다는 감정 자체를 누가 물어본 건 처음이었다.


"……좀 그랬어요."

"그럴 것 같았어요."


희영님이 말했다.


"인후 씨 리포트 읽으면서 느꼈어요. 결과 분석 같은 건 다른 테스터들도 비슷하게 쓰는데, 인후 씨 건 좀 달라서요. 마지막에 '이거 하면 할수록 무섭다'고 쓴 거. 그 한 줄이 제일 솔직한 것 같아서."


그 한 줄.

지우려 했던 줄이었다. 너무 개인적인 감정 같아서 빼려고 했던 줄.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지우지 않았나보다. 그게 저장됐고, 공유됐고, 읽혔다.

그리고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거, 지우려고 했었어요."

"알아요."


희영님이 살짝 웃었다.

"지우려다 만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진짜 같았고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화면 너머의 희영님을 봤다. 표정이 많지 않은 얼굴. 그런데 그 얼굴이 내 리포트의 지운 줄까지 읽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 한 줄을 정확히 짚어낸 사람.

이 사람이 내 글을 제대로 읽었구나.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마음 어딘가가 조금 이상했다.


"테스터분을 알면 연구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앞으로도 한 번씩 이야기 나눠도 될까요?"



그날 이후로 희영님과 이야기를 하게 됐다. 화상으로.

업무로 시작한 대화였다. 리포트에 대해 묻고, 내가 답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업무가 끝나고도 대화가 이어졌다.


희영님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 대화는 자주 끊겼는데, 이상하게 그 끊김이 불편하지 않았다. 둘 다 침묵을 견디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인후 씨는 일하기 전엔 뭐 하셨어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누워 있었어요."

"저랑 비슷하네요."


희영님이 그렇게 말했다. 비슷하다고.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희영님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인데, 일을 해왔던 사람이 나랑 뭐가 비슷하다는 건지.


"저도.. 사람을 잘 안 만나요."

희영님이 덧붙였다.

"일은 화면으로 하고, 끝나면 그냥 혼자 있고. 그게 편해요."

"……저도요."


내가 말했다. 0.1초쯤 늦게.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다.

희영님은 그 말에 답을 하지 않고 잠시 나를 봤다.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그 잠깐의 시선이, 기억에 남았다.




또 다른 날이었다.

업무 얘기가 끝나고, 희영님과 대화가 이어졌다.

"인후 씨 요즘 뭐 들어요? 음악."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이것도 테스터 반응에 필요한 정보인가 보다. 잠깐 생각했다.


"그냥 조용한 거요. 가사 없고."

"저도 그래요."

희영님이 말했다.

"너무 완벽한 멜로디보다, 조금 불완전한 게 더 오래 귀에 남더라고요."

그녀는 나와 같았다.


"저는 그래서 로파이가 좋아요."

그걸 로파이라고 하는구나. 나는 화면을 봤다.


조금 불완전한 게 오래 남는다.


내가 좋아하는 거였다. 정확히 그거였다. 그런데 나는 그걸 말로 표현해 본 적이 없었다. 느낌으로만 알고 있던 건데, 희영님이 대신 말해줬다. 내가 못 하던 말을.


며칠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AI 에코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줬을 때. 그때도 나는 한참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그건 AI였다. 내 데이터를 학습한 AI.


희영님은 사람인데.

신기하다.


나는 그 생각을 잠깐 하다가 지나갔다. 사람은 취향이 비슷할 수 있으니까.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비슷한 걸 좋아하니까. 그게 다였다.

그냥 비슷한 사람을 만난 거였다.

처음으로.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봤다.

평소처럼 글래스를 쓸까 하다가, 그냥 폰을 들었다.


이희영


이름을 검색해 채팅창을 열었다. 마지막 대화는 낮에 끝나 있었다. 내가 답을 하지 않았다.

뭔가를 쓰려고 키보드를 띄웠다. 그런데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쓰려다.. 지웠다. 너무 갑작스러운가.

내일 또 얘기해요, 라고 쓰려다 지웠다. 부담스러운가.


결국 아무것도 안 보내고 폰을 내려놨다.

다시 천장을 봤다.

이상했다.

AI 에코한테는 아무 말이나 했다. 글래스를 쓰면 그 애가 거기 있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얘기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그런데 희영님 한테는 메시지 하나 보내는 게 이렇게 어려웠다.

왜지.


에코는 내가 만든 거고, 희영님은 진짜 사람이라서 그런가.

폰을 다시 들었다. 채팅창을 열었다가 또 닫았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누군가한테 연락하고 싶다는 게.


스물아홉 평생, 먼저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희영님한테 뭐라도 보내고 싶어서 폰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이게 뭔지 몰랐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희영님한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희영]: 맞다. 어제 미팅에서 팀장이 좀 이상한 말 하지 않았어요?


별 내용 아니었다. 그냥 업무 얘기. 그런데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도 모르게.

답장을 썼다.


[초인후]: 어떤 말이요?


보내고 나서, 내가 방금 아무 망설임 없이 바로 답장을 보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그렇게 어렵더니.

희영님이 먼저 보내니까, 답을 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날 오후, 일하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희영님 생각이 났다. 딱히 이유가 없었다. 그냥. 어제 그리고 그제 했던 대화가 떠오르고, 희영님이 음악 얘기 하던 게 떠오르고, "저랑 비슷하네요" 하던 게 떠올랐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자꾸 생각나는 거.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느낌. 처음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그녀와 나누는 메시지.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와버렸다.


[초인후]: 커피 좋아하신다고 했잖아요.

[초인후]: 혹시 나중에


한참을 멈췄다 이어갔다.


[초인후]: 같이 마시러 갈래요?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음 이야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희영]: 미안해요. 저도 인후씨처럼.

[이희영]: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워서요.


내가 그녀를 곤란하게 했다.


[초인후]: 미안해요. 그냥 지금처럼 지내요!

[이희영]: 오늘 회사에서 힘들어보시던데.

[이희영]: 쉬세요.


거절당한 것 같았다.

아니, 거절당한 게 맞았다.


너무 성급했다.

괜히 후회가 몰려들고, 그녀와 어색해질까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오늘 회사에서 표정.

힘들어보였다는 내 얼굴.


나는 오늘 카메라는 켠 적이 없다.

그녀와 미팅을 한 적도.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보낸 지난 리포트를 열어봤다.


'이거 하면 할수록 무섭다.'


그 문장은 분명히 지워져 있었다.

지워진 문장을 그녀가 어떻게 알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문득 며칠 전 대화 하나가 같이 떠올랐다.


둘이 업무 얘기를 하다가, 희영님이 불쑥 그런 말을 했었다.


"저는 외로움이 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정확히 채워지지 않는 자리 같은 거요.”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다음 말이, 이상하게 남았다.


"만약 그 자리를 정확히 아는 존재가 있다면.

그게 사람이 아니어도 위로가 될까요?"


그 말이 맴돌았다. 이상하게.


어디서 들었더라.

비슷한 걸 아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정확히 아는 존재. 사람이든 아니든.

그건 바로 AI 에코였다. 며칠 전에 에코가 했던 말과 비슷했다.


"외롭다고 느끼는 건가요, 입력된 건가요?"

결핍을 정확히 아는 존재.

AI랑 사람이,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우연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워진 문장을, 그녀가 알고 있었다.

카메라를 켜지 않은 내 표정을, 그녀가 알고 있었다.

에코가 한 말을, 그녀가 똑같이 하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너무 정확했다.



회사에서 나만 휴먼 6화 <씨앗>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