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A/X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AI Transformation, 즉 AI 전환을 의미하는데요. 디지털 전환을 D/X라 부르는 것처럼 A/X라고 줄여 부릅니다. 최근 몇 년간 IT 업계와 경영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죠.
그런데 A/X 사례를 검색해 보면 어떤가요? A사가 전사 업무에 자체 AI를 도입했다는 뉴스, B가 생산 라인에 AI 품질검사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기사, C가 고객센터에 AI 상담 시스템을 전면 적용했다는 발표... 모두 대기업들의 이야기입니다.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 전사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IT 부서와 SI 업체가 몇 개월, 몇 년에 걸쳐 완성한 프로젝트들이죠.
이런 기사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A/X는 대기업이나 하는 거구나." "우리 같은 작은 회사는 그냥 ChatGPT 좀 쓰는 정도면 되겠지."
하지만 정작 A/X가 절실한 곳은 따로 있습니다. 직원 10명짜리 마케팅 대행사, 5명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대표 포함 3명인 콘텐츠 제작사... 이런 작은 회사들이야말로 A/X가 가장 필요한 곳입니다.
작은 회사일수록 A/X가 꼭 필요합니다.
제가 여러 강의와 모임을 진행하는 동안 꽤 많은 회사의 대표 분들이 다녀가셨는데요.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전체 고정비 중 인건비의 비중이 높으니 AI가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저는 좀 다른 측면을 보고 싶습니다.
작은 회사들의 진짜 문제는 인건비가 아닙니다. 본질은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아주 큰 회사 말고 대략 50명인 회사와 5명인 회사를 비교해 보죠. 50명 회사에는 마케팅팀 5명, 디자인팀 3명, 개발팀 10명, 영업팀 8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각자 전문 분야에서 일하죠. 하지만 5명 회사는 어떤가요?
대표는 경영, 영업, 전략 기획을 겸합니다
직원 A는 마케팅 전공인데 CS와 회계까지 맡고 있습니다
직원 B는 디자인도 하고 콘텐츠 제작도 하고 SNS 관리도 합니다
직원 C는 개발자인데 서버 관리, 데이터 분석, 심지어 사무실 IT 관리까지 합니다
필요한 인력이 결원인 경우도 많고,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일을 맡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케팅 경험이 없는데 마케팅을 해야 하고, 법률 지식이 없는데 계약서를 검토해야 하고, 디자인을 배워본 적 없는데 상세페이지를 만들어야 하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표나 팀장급에선 (사정 알지만) 그 아래 주니어들이 일하는 게 영 탐탁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아마추어 같죠. 그렇다고 대놓고 뭐라 하면 그만둔다고 할까 봐 눈치를 봅니다. 주니어는 또 전문성을 발휘하기 힘들고 일만 많은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뭔가 돌아가는 게 매끄럽지 않게 됩니다.
바로 여기서 A/X의 진짜 가치가 드러납니다. 큰 회사의 AI는 생산성을 20-30% 높여주는 도구일 수 있지만 못하던 일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작은 회사에서 AI는 새로운 일들에 도전할 수 있게 만들죠.
우리 회사 A/X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알겠는데,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걸까? 작은 회사의 A/X는 훨씬 실용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첫 번째로 해야 하는 일은 반복적인 업무를 효율화하는 것이죠. 그래야 한정된 자원을 진짜 집중해야 하는 일에 온전히 투입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반복적인 업무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문서 작성이죠.
시간은 꽤 들어가는데 결과물은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다고 이걸 개선하는 데 집중하자니 더 중요한 일들을 미룰 수는 없고.. 그래서 문서 작성과 관련된 AI 교육의 수요도 엄청나게 많은 편입니다. AI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아마도 회의록 작성이나 PPT 작업 자동화하려고 한 번쯤 시도해 봤을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고 포기하죠. 왜 그럴까요? 이럴 때 '프롬프트'가 만능 치트키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결국 AI가 만든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드는 이유는 품질 때문입니다. 같은 영화를 봐도 재미있다는 사람과 지루했다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문서 아웃풋에도 각자의 기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의록을 만든다고 해볼까요? 그냥 "회의록 작성해 줘"라고 하면 AI는 자기 나름대로 회의록을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각 발언자의 발언을 그대로 줄여준다든가, 뭔가 핵심을 놓치고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죠. 이걸 다시 검수하느니 그냥 사람이 하는 게 낫다 싶습니다.
"너는 회의록 작성 전문가로서.."라고 역할(#Role)을 제시하든, "이런 맥락(#Context)에서 필요해.."라고 하든.. 큰 차이는 없습니다. 프롬프트에 꼭 들어가야 할 '가치'에 대한 기준이 빠졌기 때문이죠.
그럼 어떤 것들이 들어가야 할까요?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발언 개별적인 내용을 요약하지 말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핵심적 주제를 파악한 뒤 주요 발언 요약
(발언자는 함께 명기)
A4 1장 이내로 작성할 수 있도록 요약 내용은 1,000자 이내로 정리
논의 주제별로 분류하고 관련 의견은 - 표시로 표시할 것
"~하기로 결정" 형식의 명확한 문장
이런 내용은 회사마다 팀마다 다 다를 겁니다. 정답은 없는 거죠. 하지만 또 이런 정의를 명확히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디렉션을 명확히 준다는 게 그냥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때가 많거든요.
이럴 때 활용할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기존의 잘 만들어진 문서, 즉 레퍼런스를 예시로 주고 분석하라고 하는 거죠. 회사 내부든, 외부 문서든 상관없습니다.
문서와 함께 입력할 프롬프트는 간단합니다.
회의록을 자동화하려고 한다
제공된 샘플을 토대로 향후 회의 녹취를 제공하면 이와 같은 형태로 재현할 수 있도록 분석할 것
핵심적인 분석은 분량, 문체, 요약 방식 등임. 그 외에 이 문서의 특장점이 있다면 반영할 것
비유를 하자면, 마치 씨간장을 토대로 전통의 맛을 계속 이어가는 것과 비슷한데요. 수십 년 된 노포에서 처음 만든 간장에 새 간장을 계속 보태고, 오래된 국물에 새 재료를 넣어 맛을 이어갑니다. 매번 완전히 새로 만들지 않아도 일정한 맛을 유지할 수 있는 거죠.
AI를 활용한 문서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잘 만들어진 가이드를 AI에게 학습시키면, 그게 우리 회사의 '씨간장'이 됩니다. 다음번 회의록을 만들 때 AI는 씨간장의 맛을 재현합니다. 보도자료든, PPT 문서든, 상세페이지든, 제안서든 마찬가지죠.
이 방식의 진짜 가치는 '품질의 일관성'입니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신입사원이 작성해도, 대표가 직접 만들어도 비슷한 수준의 결과물이 나옵니다. 우리만의 핵심 가치가 들어가 있으니까요. 회사마다 다른 문서 스타일, 우리만의 톤 앤 매너, 축적된 노하우... 이 모든 게 AI라는 '통' 안에 담겨 계속 이어집니다.
처음 씨간장을 만드는 데 당연히 시간이 걸립니다. 좋은 샘플 문서를 찾고, AI에게 분석시키고, 몇 번 테스트해 보고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정확히 찾아내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번 만들어두면? 앞으로 수백 번, 수천 번 그 맛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만들 수 없다면, 이해한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보시고, 뭐가 이리 복잡할까.. 요즘 딸깍하면 나오는 '미친' AI 많다던데.. 맞습니다. '딸깍'하면 나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AI를 완전히 내 것으로 커스터마이징 해놔야 하죠. 기본 세팅으로 그런 기대를 한다면, 흔히 이야기하는 'AI가 대체할 사람' 중 한 명이 될 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습니다.
누구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쉽게 비판할 수는 있죠. 하지만 막상 만들어 보라고 하면 어렵습니다. 망작을 만든 이유가 기술이 부족해서 일까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프롬프트만으로 영화나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해도 그게 좋은 작품으로 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리처드 파인만이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완벽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죠. 반복된 문서 작업을 AI를 통해서 자동화할 수 있다면 일단 어느 정도 생성의 메커니즘을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단계로는 단순업무 자동화가 아닌 내재화하지 못했던 업무까지 자동화하는 것으로 서서히 실력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게 바로 진짜 A/X라고 할 수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