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이 좋아도 팔리지 않는 일(기업 입장), 제품을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는 일(고객 입장)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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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을 지나다가 마음에 드는 코디를 봤다. 구매하고 싶어서 들어갔다. 츄리닝 세트였고, 아내와 같이 커플로 구매해 입으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브랜드에게는 기회였다. 웬 호구가 알아서 매장으로 들어왔다. 이미 구매 결심을 끝냈고, 높은 값의 지불용의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코디를 사지 못했다. 매장은 오픈되어 있었지만 사장도 직원도 없었다. 심지어 어디 다녀 온다는 안내 문구도 없었다. 자리를 비운 이유와 자리를 비울 시간이라도 안내 해놨다면 기다렸을 거다. 나는 호구였기에 아무런 안내도 없었지만, 한 1~2분 정도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기다렸다. 그 1~2분은 돈을 쓰고 싶어 안달난 사람이었다.
4~5년 전 경험인데, 마케터로서 이 순간은 나에게 특별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마케팅과 사업을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는 거다.
찾아보니 <구맹주산>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더라. 직역하면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는 의미다.
맛있게 술을 빚는 장사꾼이 있었다. 솜씨가 좋았다. 맛이 아주 좋았지만 술이 안 팔렸다. 장사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지혜로운 동네 어른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마침내 이유를 알았다. 장사꾼의 집에서 키우는 개가 너무 사나웠던 거다. 사람들은 개가 무서워서 술을 사러 들어올 수가 없었다. 팔리지 않는 술이 쌓여 다 시어버리고 말았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원래의 고사적 의미는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군주가 인재를 모으고 어질게 정치를 하려고 해도, 간신들이 주위에서 으르렁 거리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원래의 고사적 의미는 제쳐두자. 쫌 짜치지만 이걸 마케팅으로 이해해도 재미있겠다. (Gemini 에게 이걸 마케팅에 대입해서 적용해보라고 해도 나랑 비슷하게 대답하더라.)
아무리 좋은 제품을 준비해 놓아도, 고객이 진입하는 단계를 막아 놓거나, 불편하게 설계 해놓으면 팔 수가 없다. 고객은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예전에 누군가 고객을 모객하는 단계와, 제품을 이용하는 단계를 나눠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주장의 핵심은, 제품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업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거다.
자비의 원리에 입각해 이해하긴 했지만, 사실 모순이 있는 말이다. 애초에 유입 단계에서의 고객 수가 적다면, 뒷단에서 생기는 영향도 적지 않겠는가? 이 명제는 유입된 고객이 많을 수록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둘은 명확하게 구분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의존관계라고 봐야 한다.
고객이 유입되고 제품에서 맞이하는 과정까지 설계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마케팅 조직도 마케팅과 제품을 선 가르듯 나누고, 제품 조직도 마케팅과 제품을 선 가르듯 나눈다.
아니다.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마케팅도 제품이고, 제품도 마케팅이다. 제품도 고객을 바라보고, 마케팅도 고객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정말 고객을 생각한다면 분리와 갈등이 아니라, 조율과 시너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게 안되면, 입에서는 "고객"을 말하지만 "현장"은 정치와 라인과 서열과 위계와 편가르기의 모습을 띄게 된다. 오? 그러고 보니, 구맹주산의 원래적 의미와도 맞는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