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에 다시 주목 받는 그 이름, 도교의 지존 노자 쌤이 주장하셨다는 “소국과민” (小國寡民).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을 적게 한다는 뜻으로, 통제가 목적이 아닌 각자가 자신의 욕망을 (본능이라기 보다는 진짜 내가 진짜 원하는 것)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생태계를 뜻하며 노자의 정치 사상이라고 한다.

이걸 현대 조직에 대입해 보면, 개인의 욕망과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작은 조직이 더 유연하고 강하며 여유를 잃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노자 쌤은 2천 5백년전에도 어쩜 이렇게 힙한 말씀을 하셨을까.

영험해 보이는 노자쌤
영험해 보이는 노자쌤

그런데 말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톤), 산업혁명 이후로 자본주의를 이끌어 오고 이름을 남기고 큰 부를 (aka 기업가치) 이룬 기업들은 다 큰 조직 아닌가. 아직도 워렌 버핏 옹의 원픽 중 하나인 코카콜라도 100년이 넘은 대기업 (정식 출시하지 않은 시장은 현재는 북한과 쿠바뿐) - 이런 예를 들면 너무 뻔하지만 뻔한 김에 조금만 더 나열하면 자동차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회사들도 대부분 19세기가 시초였고, 우리 나라 대기업들도 일제시대에 각종 방법으로 부를 일궈서 확장한 대기업이다.

인터넷 출현 이후에 나온 기업들도 창고에서 시작했어도 (왜 거의 다 창고일까..?) 지금은 기업 가치, 규모, 직원 숫자등 모든 면에서 대기업이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애플.. 말하면 입아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활동은 당연히 작게 시작해서 (스타트업 정신!) 크게 키워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비를 키워서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것이 당연한데 왜 갑자기 노자의 작은 조직 타령인가 하면.

자동차, 테크 gadget, 소비재 등 공산품이나 MS Office 같은 SaaS, 아마존 같은 플랫폼과 달리 컨텐츠나 음악 같은 엔터테인먼트를 잘 하는 곳은 큰 조직일까 작은 조직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음료, 화장품, 생활용품, 럭셔리 등의 소비재부터 음악 회사, PGC 플랫폼, UGC 플랫폼 등과 글로벌 IP 대기업까지 총 30년을 여러 산업을 거친 하이브리드 마케터로 지내다 보니 더더욱 이 질문에는 확실한 답이 서질 않는다.

사실, 공산품이나 SaaS 는 큰 조직이 작은 조직 대비한 장점이 ‘아직은’ 더 크다. 일단 ROI 측면에서, 제품 개발 연구 비용을 뽑을 수 있는 마켓 커버리지가 가능하고, 원료 (SaaS의 경우 초기 워크플로우 및 밸류 체인)를 한번에 구매 또는 투자해서 규모의 경제로 사용이 가능하고, 업무 프로세스 및 기업 문화, 그리고 인재 육성 등 공수가 많이 드는 이니셔티브들도 크게 돌리다 보면 각 하부 조직의 상황과 때에 맞게 자체 발전하기도 하고 그렇게 수립해 놓은 시스템과 인재들이 미래의 기업 가치와 성장에도 긍정 영향을 미치니 주가에도 도움이 되고 말이다. 이렇게 제품 생산과 브랜드 관리, 조직 관리 및 매출/이익 관리를 규모있게 진행하면 코로나나 전쟁 같은 천재지변이 없는 한 기업 또는 그 기업의 상품/서비스의 성패에 대한 예측도 어느 정도 가능하고 말이다. (그러니 큰 조직에서는 전략 기획실의 끗발이 좋은 것 아닐까)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그 중에서도 특히 요즘은 컨텐츠의 성공 여부는 정말 가늠하기 어렵다. 왕사남의 흥행 관련한 글에서 오직 흥행의 신만이 안다고도 했었지만, 잘된 컨텐츠의 성공 분석은 죄다 결과론적인 얘기 뿐이다. 왕사남 흥행 공식을 똑같이 (또는 더 잘) 적용해 봐야 성공할 수 없다는 건 명백하다. (그런데도 비슷한 작품들은 기획되겠지?)

왕사남이 남긴 자리에 돌사남
왕사남이 남긴 자리에 돌사남

넷플릭스 등장 후 콧대 높던 헐리웃 스튜디오들의 기세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이미 기정 사실이다. (헐리웃 스튜디오들의 인정과는 상관 없이). ‘DVD 나 파는 작은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했던 넷플릭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 등 헐리웃 스튜디오에서 나오기 어려운 오리지널을 만들기 시작하더니, 코로나를 기점으로 오징어 게임의 메가히트가 벌어지면서 헐리웃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인터내셔널 슬레이트 크리에이티비티”로 전세계 컨텐츠 소비 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그 여세를 몰아 워너 브라더스 인수전에까지 뛰어들었으나 앗뜨거 반발한 헐리웃 스튜디오들의 여러가지 액션으로 파라마운트로 넘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다시 헐리웃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지만, 이 인수전이 어떻게 되어갈지 팝콘각 관람하던 많은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영화와 스튜디오의 미래를 생각하면 워너 브라더스가 파라마운트에 인수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그 생각의 이유에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내 기준 가장 큰 ‘걱정’은 헐리웃 스튜디오에 오랫동안 팽배한 느린 의사 결정 속도일테다. 이해 관계자들 모두와의 ‘alignment’라는 미명하에 빙빙 돌려 자기 의견들만 얘기하지만 결정은 하세월인 구조. 하지만 성공할, 성공하는 작품의 경우에 내 크레딧은 확실히 들어가도록 해야 하니 거대 조직에서 이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도 크다.

모두가 동의할 아이디어, 그러면서도 누구의 질책도 받지 않을 안전한 아이디어로 깎고 깎고 깎으면 결국 남는건 이도 전도 아닌 무색무취의 아이디어만 남는다.

( 애플 티비 오리지널 “더 스튜디오”의 블랙 코미디가 과장이지만은 않다.)

반면 초기의 넷플릭스는 여러번의 테크 스타트업 운영 실패의 경험을 반면 교사 삼아, “Context, Not Control”이라는 하나의 룰 아래에서 실무자와 로컬 마켓에 크리에이티브 결정의 권한을 100퍼센트 일임했고 이것이 우리가 아는 No Rules Rules (규칙 없음)의 성과이다.

하지만, 이젠 넷플릭스마저도 초기의 테크 스타트업처럼 운영하기 어려운 큰 조직이 되었고, 컨텐츠 업계에서 여전히 헐리웃 스튜디오의 대항마이긴 하지만 규모와 속도는 예전만큼 가볍다고 하긴 어렵다. 지금 넷플릭스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예전 같은 '빠른 결정의 속도'와 '독창성'이 주는 가치를 여전히 우위에 두면서도, 큰 조직이 주는 규모의 경제를 드라이브해서 초기 넷플릭스처럼 혁신의 열매를 소비자들에게 계속 가져다 주는 것일테다.

꼭 반드시 머스트 보십시오
꼭 반드시 머스트 보십시오

큰 조직의 자본과 운영의 스케일은 가져가되, 작은 조직 (aka 소국)의 장점인 개개인의 목소리와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조직, 과연 가능할까?

결국 엔터테인먼트에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건 조직의 크기가 아니라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누구냐의 문제 아닐까?

당신이 일하는 조직은, 지금 '얼라인먼트'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창의성을 없애고 있진 않은가?

이상 오늘의 짧은 생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