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6일, 20세기 스튜디오가 30초짜리 클립을 하나 띄웠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1편 이후 20년 만의 시퀄. 앤 해서웨이는 여전하고, 메릴 스트립은 스트립이다. 나는 한국에서만 일해 본 쩌리 임원이라 잘 모르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면, 아마도 헐리웃 고위 임원들은 시퀄이니까 잘 될 것이다, 특히 패션에 관심 많은 한중일 등 아시아권에서는 더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근데 그 클립이 25M views를 넘어가는 동안, 누구도 "아 됐다, 흥행 가나" 하고 안도하기 어려운 분위기로 흘러가지 않았나 싶다. 2천5백만 명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겼을 테니까.
문제의 시작은 한 캐릭터였다. Jin Chao(진차오). 앤디의 새 어시스턴트,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설정. 클립에서 그녀는 보스 앞에서 자기 의심하고, 학력을 줄줄이 읊는다 — 명문대 어디, GPA 얼마, 인턴 어디. 입은 옷은 우스꽝스러운 드레스, 큰 안경. 그리고 이름이 Jin Chao. 영어권에서 "Ching Chong"이라고 들리는 — 그 ching chong.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면 검색해 보시라. 그게 어떤 단어인지.

물론 변호도 있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 Joseph Kahn은 "She's a caricature, but it's about Gen Z, not about Asians"라고 했다. Gen Z 캐릭터화이지 아시아 비하가 아니라고. 1편 앤디도 처음엔 패션 무지에 어색했지 않냐고 — 캐릭터 서사의 일부일 뿐이라고.
Joseph Kahn 감독의 의견에도 일리는 있다. 근데 1편의 앤디는 Northwestern 졸업한 백인 저널리스트였고, 그녀의 패션 무지가 코미디 장치였지 그녀의 인종이 코미디 장치는 아니었다 — 이게 다른 결의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진차오 한 명이 아닐 거다. 진짜 문제는 — 헐리웃이 분석을 안 한 게 아닐까 싶다는 점. 아니, 어쩌면 분석을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지도 모른다. 문화적 감수성 분석이 예전 경험에서는 흥패를 좌지우지하는 변수가 아니었으니까. (PC에 그렇게 집중해 놓고서는 와이 왜 때문에?)
2025년. 케데헌. 〈K-pop Demon Hunters〉. 미국 어린이부터 중년까지, 일본·중국·동남아·유럽·중남미 — 안 사로잡힌 시장이 없었다. 헐리웃 스튜디오 어디라도 한 번쯤 진지하게 물었어야 했지 않나 싶다. "왜 이게 됐을까. 이 문법은 뭘까. 유니버설 공감대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근데 케데헌 분석은 본격적으로 안 한 것 아닐까. 1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후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글로벌 소비자의 축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트렌드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퍼져 나가며 어떻게 영향력을 키우는지 — 그런 연구보다는, 배우 패키지와 전작의 페디그리에 더 의존한 것 아닐까 싶다. 시퀄은 안전한 카드니까. 거기에 비주류 캐릭터 하나 끼워 넣으면 다양성도 챙긴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2026년에. 케데헌 1년 뒤에.
그리고 또 하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같은 영화의 한국 홍보에 IVE 장원영을 전면에 세웠다. 영화 속 진차오와는 너무나 다른, 명명백백 아시안 글로벌 셀럽이다. 중국 상하이 홍보엔 인플루언서들이 동원됐다. 아시아 시장 —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근데 영화 속 아시아 캐릭터는 우스꽝스러운 드레스에 큰 안경에 학력 자랑하는 진차오. 어떻게 봐도 결이 잘 맞지 않는 그림이다.
이게 한 작품의 사고라기보다 헐리웃 자체의 OS 문제로 보이는 건 나만일까 싶다. 헐리웃을 아이폰에 빗대어 보자면, 하드웨어는 어쩌면 아이폰 5쯤 되는데 거기에 iOS 업데이트마저 한참 미뤄진 상태로 옛날 앱들이 그대로 돌고 있는 느낌이랄까. 시퀄에 스타 패키지에 전작 페디그리 같은, 한때는 잘 깔리던 앱들이 있고, 1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시절엔 그게 곧 흥행 공식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근데 그 사이 새 OS가 깔린 폰들이 빠르게 늘어났고, 케데헌 같은 작품은 바로 그 새 OS 위에서 돌아가는 새로운 앱이다. 사람들 손가락이 점점 그쪽으로 옮겨가는 동안, 옛날 앱은 깔리지 않거나, 깔려도 한 번 켜 보고는 그대로 닫혀 버린다.
하드웨어를 최신 기종으로 바꾸기 어렵다면 — 그러니까 세대교체 자체가 부담스럽다면 — 적어도 iOS 업데이트라도 부지런히 해 줘야 저잣거리 얘기에 낄 수라도 있을 텐데, 그것마저 잘 안 되고 있는 모양이다. 새로운 글로벌 소비자가 어디서 무엇에 반응하는지, 그 신호가 본사 회의실까지 가닿지 못하는 동안에는 OS는 업데이트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머물고 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 시점엔 결국 하드웨어 자체를 바꿔야 하는 순간이 오는데, iOS가 더 이상 새 앱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시작하면 — 그땐 사실 꽤 늦은 거다.

이 와중에 가장 고생하고 있는 건 어쩌면 아시아 각국의 로컬 직원들 아닐까. 본사가 만들어 놓은 작품 — 자기들이 만들지도 않았고, 사전 검토 권한도 없었던 — 을 각 시장에서 흥행시켜야 한다. 진차오를 변호하면서. 장원영을 동원하면서. 댓글창을 살피면서. 이번 분기 KPI를 채우면서. 나도 그 자리 비슷한 데 있어 봤기에, 그분들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충무로든 헐리웃이든 OTT든, 결국 같은 얘기다. 부지런히 소비자의 감수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들이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에 감동하고, 그리고 — 이게 점점 더 중요해진다 — 무엇에 불편해하는지. 그 분석과 공부가 치열하게 지속되지 않는 한, 비슷한 소동은 계속될 것 같다. 다음 작품, 그다음 작품, 그다음 작품에서.
헐리웃의 세대교체가 절실하다는 — 누구에게 가닿을지 모르겠지만 — 뼈아픈 짐작.
이상 오늘의 주절거림 끝.

